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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개 Jul 11. 2020

두려우면 지고 설레면 이긴다


치과위생사의 길을 걷게 된지 올 해로 7년. 이 정도면 웬만한 일엔 지겨워질 법도 한데 아직도 나는 하루하루가 새로울 때가 더 많다. 처음부터 이 길을 걸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별다른 방법이 없어 선택했을 뿐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면허번호를 부여받은 첫해에는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었다면, 그다음 해에는 달리 도망갈 길이 없어 버티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보면 다른 길이 보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기에 막다른 골목에서 만난 드높은 담벼락은 손과 발에 상처를 내어야만 뛰어넘어갈 수 있었다. 그래야만 새로운 길이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떠났던 여행지에서도 나는 그랬던 것 같다. 여행을 떠난 지 3일째가 되던 날이었다. 홀로 떠났던 길이었기에 그 언제보다도  많은 준비와 신중을 기울여 준비했다고 생각했었다. 5일의 일정 중에서 3일은 홍콩에서 지내고 하루는 마카오를 여행하다 마지막 5일째에 다시 홍콩으로 와서 디즈니랜드의 야간 불꽃놀이를 관람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간단한 일정이었다. 홍콩과 마카오는 중화인민공화국(줄여서 중국)에 속하는 특별행정자치구로서 일국양제의 시스템을 취하는 별개의 국가이다. 그래서 언어는 비슷하지만 다르며 화폐도 달러의 가치만 동일할 뿐 사용해야 하는 화폐는 각 국에 맞게 따로 환전해야만 사용이 가능했다. 또한, 각국에 입국할 때에는 심사도 개별적으로 거쳐야 했으며, 유심칩도 홍콩과 마카오로 분리하여 따로 구매해서 사용해야만 인터넷 기능을 가진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었다. 긴장할 때면 평소에 하지 않던 실수들이 잦아지는 탓에 유심칩을 사는 내내 절대 분실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 보관장소를 따로 마련해두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홀로 떠나온 이 여행이 정체되어있는 나의 치과위생사 길의 새로운 돌파구가 되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나쁜 일은 꼭 한순간에 몰려온다고 했던가. 홍콩을 여행하는 이틀은 처음 와 본 나라답지 않게 한순간도 길을 잃지 않고 명소들을 곧잘 찾아내어 일정에 차질이 없었다. 이 정도면 나도 이제는 길치에서 벗어나 길 눈이 꽤 밝아졌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마카오로 떠나는 날에는 이상하게 아침부터 일이 계속 꼬였다. 한국에서 예약해두었던 마카오행 페리 승선권이 숙소 안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페리를 타러 가는 길은 버스와 지하철을 모두 반대 방향으로 타고 이동하는 바람에 길을 헤매느라 예정되어있던 페리호는 놓칠 수밖에 없었다. 급하게 창구를 찾아 다시 예매한 페리호의 출발 시간은 이미 정오를 지난 시간이라 대부분의 일정이 어긋난 채로 도착하게 되었다. 내가 유심칩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도착하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의 다음 장소로 이동하던 거리 한복판이었다. 처음에는 인터넷이 불안정하게 연결되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사실, 어느 외국을 가도 한국에서만큼 인터넷 연결이 안정적이라던가,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기대하기가 어려웠기에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만일을 위해 수첩에 가득 적어온 메모 덕분에 꼭 인터넷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정보를 찾을 수 있어 필요한 순간이 그리 많지도 않았다. 그런데, 길을 찾으려고 핸드폰을 켰을 때는 이미 모든 기능을 상실한 채였고, 혹시나 배터리가 부족하여 방전된 것이 아닐까 싶은 마음에 준비 해 온 보조 배터리 여러 개를 꽂아봐도 시계를 보는 것 외에는 핸드폰의 별다른 기능은 기대할 수가 없었다. 당시 내 수중에는 한화로 환전했을 때 겨우 10만 원 정도가 되는 홍콩 지폐 몇 장과 (페리호를 놓치느라 마카오 달러로 환전을 하지 못해 홍콩 지폐만 있었다) 여행 책 맨 뒷 장에 부록으로 있던 A4용지 크기의 마카오 지도 한 장이 전부였다. 시간은 오후 3시를 넘기고 있었고, 내가 홍콩으로 돌아갈 페리호의 예정된 시간은 밤 10시였다. 한 개의 일정조차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상태의 나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겨우 7시간 정도였다. 많은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눈앞에 놓인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내는 현지인들 뿐이었고, 도움을 요청할 만한 곳은 그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이사를 하고 나면 족히 한 달 정도는 집 근처 길을 지나다녀 봐야 헤매지 않고 집으로 곧장 도착할 수 있을 만큼 길치인 나였다. 화살표와 실시간 gps로 나의 현재 위치를 알려주어도 내가 걷는 방향이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워 동서남북으로 여러 번 돌며 방향을 확인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달리 없었다. 그렇다고 이 여행을 이대로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홀로 떠나온 첫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싶다는 이유가 있기도 했지만, 버티기만으로 경력을 채운 나의 지난 치과위생사의 시절이 한계점에 달아 이를 더 지속하기 위한 특별한 계기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다. 거리에 멈춰 서서 일정표와 지도를 번갈아 가며 보고 있으니, 한 줄로 축 늘어진 모양의 마카오 반도가 마치 나의 지난날들인 것만 같았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겨우 오늘 하루 일정을 망쳤을 뿐, 여행 그 자체가 망가진 것은 아닌데도 그런 모양새로 보였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내가 처음 면허를 취득하고 일을 시작했던 때를 떠올리며 그때처럼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나니 두려웠던 마음이 조금씩 사그라들었고, 나를 가로막은 담벼락이 아무리 높다 할지라도 나는 분명 넘어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여행을 준비하던 때처럼 설레었다. 막막함으로 온통 둘러싸인 나였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지도가 있었고, 홀로 떠나온 탓에 얼마든지 여행 일정을 수정할 수 있었으며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아는 나를 위해 적어온 글자들이 수첩에 빼곡히 들어있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아무 상점이나 들어가서 펜과 생수 2병을 사서 가방에 넣고 내가 걷고 있는 길의 방향을 지도에 표시하며 걸어가 보기로 했다. 수중에 있는 것은 검은색 펜 한 가지뿐이었지만, 화살표를 통해 내가 걷고 있는 방향을 지도 길목마다 표시할 수 있었고, 지도에 표기되지 못한 상점의 이름이나 눈에 뜨이는 건물은 나중에도 알아볼 수 있게끔 특징을 그림으로 그려 두기로 했다. 그렇게 나만의 규칙을 세웠다. 지도에 밑줄을 그어가며 길을 따라가다 보니, 참고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거리의 표지판 정도였던 탓에 마카오의 거리와 풍경은 줄곧 나의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뜨거운 햇빛을 바라보며 걷던 거리는 어느새 어두워졌고, 손에 들고 있던 지도는 까만 줄을 가득 품은 채 나와 함께였다.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았던 시간을 뒤로하고 제법 많은 관광지를 다니며 예정된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마카오에 다녀온 지 몇 해가 지났지만, 지금도 나는 이 날의 기억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할 때에는 어김없이 나를 지켜주었던 새까만 지도를 꺼내어 본다. 물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금의 상태를 호전되게 도와줄 방법이 갑자기 생겨나거나 무마시켜지지는 않지만 또 어떻게든 이 고비를 넘어갈 수 있게는 해준다. 나를 또 다른 담벼락으로 넘겨준다. 나를 가로막은 모든 순간들은 언제나 두렵지만, 그래도 넘어가 보면 또다른 설렘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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