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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Emilio Jan 15. 2024

진정성? 사람보다 '영수증'을 믿어라

몇 년 전 중견기업 CEO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회사 경영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는데요. 자랑처럼 몇 가지를 늘어놨는데 그중 하나는 '직원의 역량 개발'을 매우 중시한다는 거였습니다.



"대표님 말씀이 매우 인상 깊습니다. 그런데 몇 년 새 직원 수는 늘고 있는데, 손익계산서상 '교육 훈련비'는 줄고 있더군요. 이 부분에 관해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CEO의 안색은 금방 어두워졌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채 다른 주제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실은 해당 기업에 자문 관련 상담 자리였는데, 미팅 전에 몇 가지 이상한 징후를 발견해서 수임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터였지요. 소개해 준 사람 면을 봐서 참석했을 뿐,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진정성은 안 보인다


"제가 얼마나 진심을 갖고 대했는지 모릅니다."


"다 잘되라고, 일 잘하는 직원 되라고 했죠. 제 마음을 왜 몰라주는지 답답합니다."


리더십 서베이, 다면 평가를 통해 직원에게 좋지 않은 피드백을 받은 리더의 항변입니다. 본의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이해는 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본질은 누구의 진심은 그 누구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리더가 아무리 좋은 마음을 갖고 있어도 상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말과 태도를 통해 그 마음을 유추할 뿐입니다. 따라서 잘못된 방식으로 소통하면 당연히 진의를 의심받게 됩니다. 물론 적절한 말과 태도만으로 충분치는 않습니다.



'진심을 담은 말', '진정성 있는 태도'...



소통과 관련해서 자주 얘기하는 문구입니다. 한두 번은 그렇게 보일 수는 있습니다. 수완이 좋다면 꽤 오랫동안 위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의 정직을 판단하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그(녀)가 쓰는 돈의 궤적을 믿어라

영수증을 믿는 게 가장 확실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하에서 '돈'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사망 사고의 보상도 '돈'으로 치루는 세상입니다. 수십 년 살다 이혼한 부부에게 남는 것은 재산 분할 뿐입니다. 그만큼 돈이 중요합니다. 좋든 싫든 우리는 돈을 쓰며 흔적을 남깁니다.



최근 영수증 관련 흥미로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검찰은 수사 상황에서 기밀을 유지한 채 증빙에 철저하지 않은 돈을 쓸 수 있습니다. 이른바 특별활동비(특활비)입니다. 특별한 상황에서만 사용돼야 합니다. 당연 세금으로 충당되는 돈이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특활비 사용 명세  공개를 거부하다 법원의 판결을 받은 후에야 공개했습니다. 그것도 용도, 내역, 용처 등에 먹칠로 가린 채 말이죠. 자료를 받은 시민단체에서 불빛에 그 부분을 비춰보니 이런 내역이 보였습니다.



'국정감사 우수검사 격려'

@뉴스타파


국정감사 대응을 잘한 검사에게 격려금으로 특활비 일부를 지출했다는 겁니다. 국정감사는 모든 국가기관이 수감 대상이 됩니다. 전혀 '특별한' 사안이 아닌데 지출된 것입니다. 실로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돈 쓰는 계획으로 판단하라

내년 국가 예산으로 시끌시끌합니다. 삭감된 예산으로 R&D, 청년(여성), 취약계층(노인, 아동, 장애인), 지방 예산 등이 있습니다. 공롭게도 대통령이 평소 강조했던 소재라는 데 아이러니를 일으킵니다. 특히 R&D 예산은 삭감이 된 것이 전례가 없던 사항입니다. 말과 행동이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러면 정책의 신뢰도는 추락하게 됩니다. 벌써 '대통령이 언급하면 예산이 깎인다'는 비아냥이 돌고 있습니다.



지금 대부분 기업은 내년 사업 계획을 수립 중입다. 돈을 쓰는 예산이 포함됩니다. 우선 내년의 의미를 규정하고 세부 전략 과제를 수립합니다. 문제는 전략 과제와 예산 산정이 제대로 정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략은 거창하지만, 실행을 위해 예산을 수립하기보다 인력 계획과 투자 계획 정도만 반영해서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방식입니다. 연말이라는 시기적 한계가 있긴 하지만 실행 아이템별로 예산 검토가 없다 보니 정확한 ROI(투입 대비 산출) 평가가 어렵게 됩니다. 경영진이 내세우는 핵심 이슈에 대해서는 예산 계획이 집중돼야 합니다. 그래야 구성원의 믿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진정성이란 단어가 유행하는 만큼 진정성이 부족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울 겁니다. 그런 경우마다 말이나 태도보다 확실한 '영수증'을 살피길 추천합니다. 대개 사람은 살아온 궤도를 크게 이탈하지 않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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