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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날다 haninalda Apr 24. 2020

향수만드는 사람의 기억 매개체


Covid-19이전에 저의 작업실입니다.
최근의 제 작업실입니다.



향수를 만들고 있습니다.


"향수는 타임머신과 같아요."


저는 종종 말하고는 합니다. 제가 만드는 향수가, 또는 저와 만나게 된 향수가 먼 훗날 지금 이순간으로 데려다줄 타임머신과 같다고요. 우리의 기억과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 그것이 향수니까요. 그리고 그 기억과 감정이 바로 내가 나라는 것을 만들어주는. 나를 구성하는, 나를 나로 정의해줍니다. 그런데 왠 음악이냐고요? 어디에선가 들었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에게 남는 감각이 청각이라고요. 나와 내가 아님의 경계를 명확하게 깨닫게 해주는 우리의 감각기관 중에서 '듣는다는 것'이 삶의 끝까지 나와 바깥을 구분해준다는 말에 제 음악 리스트를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음악에는 신경을 크게 쓰는 사람이 아니었고, 지금도 관여도가 아주 큰 편은 아닙니다. 제가 능동적으로 음악을 찾아나서기보다는 수동적으로 제게 찾아온 음악을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어릴적부터 TV를 잘 보지 않은 덕분에 인기 가수나 가요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TV나 라디오보다 친구들이 노래방에서 불러주는 노래가, 오빠들이 틀어주던 오디오 전축의 LP판 노래가, 만화영화, 영화, 뮤지컬 작품 속 노래들이 저의 음악이 되어주었습니다.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세요?"


창작작업을 할 때 영감을 주는 다양한 것들이 존재합니다. 여행, 사람, 그 때의 이야기. 그리고 그 때를 기억나게 하는 존재인 향과 음악. 요즘처럼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때에 제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는 것은 향과 함께 음악입니다. 제가 크게 관여하지 않던 존재이기 때문에, 새롭게 낯설게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만 음악에서 영감을 얻는 것은 아닌듯합니다. 실리콘밸리의 큰손인 벤 호로위츠가 쓴 책 <하드씽> (원제: The Hard Thing About Hard Things)를 보면 그는 힙합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합니다. 물론 그가 저처럼 힙합이 낯설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요. 2차 세계대전을 피해 뉴욕으로 건너 온 네덜란드 출신의 작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브로드웨이 부기 우기, Broadway Boogie Woogie. 1942–43>작품은 부기 우기 재즈 음악과 사랑에 빠진 작가에게 비친 뉴욕의 거리, 도시 풍경을 표현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당시 전쟁의 소용돌이였던 유럽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낯선 부기 우기 재즈 음악은 지독히 낯선 나라, 낯선 도시와 함께 큰 영감이 되어주었을  싶습니다.




 Piet Mondrian. Broadway Boogie Woogie. 1942–43 / Public domain



새로운 향수를 만나는 것처럼 제게 음악은 마치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알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사람과 함께 하지 않을 때 남는 잔상처럼, 잔향처럼 공기 중에 그 사람과의 시간을 채운 음표들이 음악이 자리잡습니다. 제가 이 글을 적는 것은 어쩌면 제가 그 동안 신경을 쓰지 못했던 나의 음악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낯선 음악을, 어쩌면 음악에 낯선 내 자신에 대해서 알아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게 좋은 음악을 저로 하여금


잠을 잘 자게

밥을 잘 먹게

일을 잘 하게

책을 잘 읽게

춤을 잘 추게

글을 잘 쓰게

생각을 잘 하게

기억을 잘 떠올리게


그리고 향수를 창작하게 헤줍니다.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줍니다. 상처받은 마음에 연고를 발라주기도 하고, 거칠고 건조해진 감정에 보습크림을 발라주어 보송보송하고 매끄러운 감정상태를 가지게도 합니다. 지쳐있을 때 힘을 주기도 하고, 자존감이 낮아질 때 올려주기도 합니다.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생활하던 제게 팬데믹이라는, 동시대 인류가 함께 맞이하는 세계적인 현상은 막아둔 귀를 열게 해주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원두 커피를 내려 마시고 향수를 창작하며 코로는 그리던 향의 길을, 눈으로는 상상하던 향의 심상을, 손으로는 향기 물질을 담은 스포이드를 만지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소란스러운 세상의 소음 자리에 음악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 때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고는 했습니다. "그 음악은 뭔가요?" 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고 글을 적어내려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프랑스 그라스의 퍼퓨머리 갈리마드의 조향사 오르간이랍니다. 단일 조합 향료를 계열별로 나누어 배치해둔 모습이 오르간같다고 해서 조향사 오르간이라고 부르지요.



향수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노트'라는 단어는 음악의 음표를 뜻하는 그 노트와 같은 단어입니다.


향수의 도시인 프랑스 그라스를 방문했을 때 향수의 역사를 이야기해주었던 그라스 출신의 도미닉(Dominique)은 조향사들의 작업 책상인 퍼퓸 오일 오르간을 만든 사람이 바로 자신의 친구네 집의 선조였다고 했습니다. 조향사의 책상은 정말 오르간처럼 생겼습니다.


음악에 고음, 중음, 저음이 있듯이

향수에는 탑 노트, 미들 노트, 베이스 노트가 있습니다.  


음악의 음도

향수의 향도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이지만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물론 향수의 탑 노트, 미들 노트, 베이스 노트는 음악의 고음, 중음, 저음과는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어느 정도는 향의 높이를 표현하는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향수는 음의 높낮이보다는 시간의 개념입니다. 누군가를 처음 보자마자 갖게 되는 첫인상, 그와 같은 향이 향수가 향수병에서 뛰어나오자마자, 우리들 앞에 등장하자마자 우리가 갖는 향수의 첫인상 탑노트입니다. 첫인상이 지나고 대화, 제스처를 보면서 함께 보내는 삼십분여 남짓한 시간을 우리는 미들 노트라고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보통 사십여분 정도면 충분히 만날 수 있는, 첫인상 때에는 등장하지 않기도 하는 베이스 노트를 만나게 됩니다. 이야기로 치면 서론이 탑 노트, 본문이 미들 노트, 결론이 베이스 노트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동안 만들어진 향수들이 바이올린 음색처럼 하늘로 높이 올라가는 듯한 시트러스 노트들이 첫인상 탑노트등장하는 경우와 땅으로 낮게 깔리듯이 짙고 무거운 샌달우드, 패츌리 등의 우디 노트들이 베이스 노트들이 마치 콘트라 베이스의 묵직한 저음처럼 등장하는 경우들이 많았다보니 높낮이로 여기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수평적인 시간의 흐름에 각각의 향들이 지닌 높이를 오고 가는 역동성이 더해지는 건 또 그 나름대로 향기롭습니다.


청각을 통해 정보가 전달되는 음악의 경우 자폐아나 사회 부적응자들을 치료하는 음악치료, 심리치료의 하나로 사용되는 심상유도음악(GIM, Guilded Imagery and Music)는 물론 요즘에는 수술할 때, 분만할 때 음악을 틀고 하는 사례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후각기관을 통해서 접하게 되는 향은 우리의 감정을 좋게 만들어주고, 기억을 오랫동안 잘 남게 도와준다는 연구 사례들을 살펴볼 수 있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음악 리스트를 보면 성격을 알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음악은 모르겠지만, 누군가 좋아하는 향수를 이야기하면 아주 희미하게 그 사람의 성격을 유추해보게 됩니다. 음악을 잘 아시는 분들이라면 저의 음악 리스트를 보면서 저의 성격을 살펴보실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이야기가 주절주절 길어졌습니다. 대단하게 쓰는 건 아닙니다. 그저 제가 듣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가보려합니다. 그럼, 다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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