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장편소설 <이토록 고고한 연예>를 읽고.
명절 기간에 6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을 완독했습니다. 몰입감이 있는 소설입니다. 소설의 주인공, 달문(達文)은 조선 영조 시대의 실존 인물로 거지 광대였습니다. 크게 세 가지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감히 필적할 경쟁자가 없을 정도의 절대 추남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당대 최고의 광대라는 것입니다. 광대로서의 실력이 어느 정도로 좋았냐면 당대 최고의 연예인들이 모두 달문을 따르고 달문과 함께 공연을 하고 싶어할 정도로 실력이 탁월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일생을 무소유로 일관하며 오로지 남을 돕기 위해 살았던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소유할 능력이 없어서 거지가 된 것이 아니라 소유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거지로 살아가는 캐릭터입니다. 못 생겨도 끼가 있고 실력만 있으면 연예인으로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이해가 되지만 소설을 재미나게 읽고도 머리가 복잡한 까닭은 세 번째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보기 어려운 캐릭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달문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폭행을 당하고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하는데도 가해자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도와야겠다는 사람을 그냥 도울 뿐입니다. 남 좋은 일만 하고 자신은 늘상 당하고만 사는, 보통 '순진한 놈'이라 불리는 캐릭터가 종종 있기는 한데 이 분들은 대부분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정말 순진해서 그런 것이고 달문처럼 알면서도 남 좋은 일만 하는 인간형은 극히 드물 겁니다. 특히나 남 좋은 일 좋아하는 '기버(Giver)'들도 결국 어느 시점이 되면 방전이 되어버리기 마련인데 달문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히 외계인급 캐릭터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애덤 그랜트의 명저 <기브앤테이크>가 생각났습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세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베풀기를 좋아하는 착한 사람들인 기버(Giver), 주는 것보다 받는 걸 바라는 테이커(Taker), 하나 주면 하나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매처(Matcher)가 그것입니다. 애덤 그랜트의 연구 결과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성공 사다리의 최하위를 차지한 것도 기버지만 최상단을 차지한 것도 기버라는 것입니다. 성공 사다리의 최상단에 위치한 기버들은 소위 호구가 되지 않는 방법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기버의 자세를 유지하면서 테이커를 가려내는 전략적 판단이 가능한 사람들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달문은 그런 구분 자체를 무력화시켜버리는 캐릭터입니다. 성공 자체를 바라지 않고, 테이커라 해도 자신을 이용하도록 기꺼이 내어줘버리니 말입니다. 이토록 고고한 사람이 과연 있겠습니까. 타인을 위한 삶으로 인류 역사를 밝혔던 수많은 성인들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삶으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달문은 주목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슬로우(A. W. Maslow)가 정리한 인간 욕구의 위계 역시 깡그리 무너뜨리는 캐릭터입니다. 대부분의 성인들은 최상위 단계 욕구인 자아실현 욕구가 발달하면서 자신이 아닌 인류를 위한 봉사라는 대의를 가져가는데 달문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생존의 욕구만 유지한 채 그는 안전 욕구, 소속감의 욕구, 명예 욕구, 자아실현 욕구, 어느 것도 가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을 살리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풀어내기 정말 쉽지 않은 캐릭터인데 작가는 주인공의 캐릭터를 잘 발라냈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를 구현하면서도 평범한 우리 모두가 달문일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달문을 움직인 동기는 다른 사람에 대한 '긍휼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사람, 불쌍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무언가를 베풀려는 긍휼의 마음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불속으로 뛰어들어가는 의인 수준은 아니더라도 평범한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조금씩은 있기 때문이고 그 마음들이 발현되어야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의 클라이막스에서 작가는 세상을 살리는 두 개의 방법을 의도적으로 대비시킵니다. 백성을 자식처럼 불쌍히 여긴다는 왕의 방법과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불쌍하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거지의 방법. 꿇어 엎드린 달문에게 영조가 묻습니다. "굶주린 백성을 구하는 게 어찌하여 달문 너의 일이더냐? 그건 나라에서 할 일이다.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과인의 일이다." 달문이 대답합니다. "나라에서 할 일, 제가 할 일이 따로 있습니까? 당장 구할 방법이 있는 쪽이 먼저 하는 게 중요합니다. 시일이 늦어 사람들이 굶어 죽고 나면 모든 게 헛될 뿐입니다." 이 장면이 이해가 되는 것이, 저도 가끔 '왜 나라가 해야 할 일을 네가 하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창업생태계를 만드는 일에 관련된 것인데 그런 질문을 받을 때 저의 답도 달문과 비슷했습니다. 나라가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은 내가 하자는 게 저의 생각이었으니까요.
또 하나, 작가는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을 의도적으로 설정에 넣었습니다. 첫 번째 산대놀이에서 꿈 속의 주인공 양소유만을 다뤘다면 두 번째이자 마지막 산대놀이에서는 꿈을 깨고 현실로 돌아온 인물 성진을 등장시켜 끝을 맺습니다. 인간계를 초월해서 사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어쩌면 현실을 부정하던 것에서 이제는 꿈을 꾸되 현실 속에서 살아내야 한다는 성숙함이 아니었을까요. 현실의 삶이 고단하고 팍팍하면 상상과 환상의 세계로 도피하고 싶기 마련이지만 결국은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서서 현실에 굴하지 않고 이상을 추구하는 자세가 지금까지 인류를 발전시킨 동력이었으니까요.
작가는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가 전통예술 전문가였던 故 사진실 교수의 추천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보면서 대한민국 창업생태계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벤처투자 주형철 대표님에 대해 듣고 본 얘기들이 생각났습니다. 아내의 병 간호를 위해 직장도 그만 두고 아내 곁을 지켰던 순애보와 아내의 연구 결과물들을 모아 유작을 출판하셨던 일들. 사진실 교수님은 주 대표님의 아내셨습니다. 두 분이 다 훌륭한 인생을 사시는군요.
저에게 책을 선물해주신 걸스로봇 이진주 대표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거기다 작가님의 친필 싸인까지. "길과 빛과 아름다움!" 이렇게 써 주셨습니다. 길을 내고 빛을 비춰줌으로써 아름다워지는 삶을 말씀하신 게 아닌가 싶은데 깜냥은 안 되지만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