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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윤 Feb 15. 2021

나의 소확행

책표지를 처음 보았을  감탄의 함성이 절로 나왔다. 어느덧 일흔에 가까운 나이가  하루키에게도 이토록 풋풋하고 촌스러운 시절이 있었구나. 너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책은 당장 구입해야 한다.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지갑을 열었다.
평소 나는 책을 구입하면 서가 어디쯤에 묵혀 두었다가 한참 후에 꺼내 읽곤 한다. 그렇게 묵혀둔 하루키의 책만 해도 여러 권이었다. 그런데  책은 구입하자마자 바로 읽어야 했다. 견디지 못할 만큼 표지가 촌스러웠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 나는 '오래된 ' 열광하는 경향이 있는데, 겹겹의 시간이 응축된 사물이라면 대부분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하루키가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케임브리지에서 살던 시절에 대해  에세이다. 달리기를 좋아해서 여러  참가한 보스턴 마라톤 이야기를 시작으로, 하루키 자신에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자체인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 자동차를 도난당한 , 미국 곳곳을 여행하며 겪은 에피소드, 소설가의  등등 사소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결코 사소하게 느껴지지 않는 자신의 일상을 위트 넘치게  내려갔다.
고양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표지로 했을 만큼 하루키는 자타 공인 애묘가다. 그는 고양이가 나오는 그림책을 자주 사고, 고양이 그림책을 번역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뼛속까지 고양이 집사라고  만하다.
하루키, 고양이는 운명이다라는 책을  문예평론가 스즈무라 가즈나리는 "하루키 소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둥글게 말고 자는 소용돌이 고양이의 형상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사실  책의 원제 또한 직역하면 '소용돌이 고양이가 발견하는 방법'이다.
물론 고양이가 발견하는 것은 '행복' 것이다.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면 고양이처럼 세상 느긋하고 자유로운 영혼은 없다. 특히 따사로운 햇살 아래 몸을 돌돌 말고 낮잠을 즐기는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까지 기지개를  펴고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싶어진다. 어쩌면 하루키는 '작지만 확실한 자신만의 행복' 당당히 누리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책의 매력  하나는 중간중간 삽입된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이다. 단호하면서 인간미 넘치는 하루키의 얼굴 표정을 대충 특징만 잡아 색연필로 휙휙 그려놓았는데,  모습이 누가 봐도 하루키다. 전체적으로 따스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그림들이었다.
하루키의 아내 요코가 찍었다는 컬러풀한 사진들 또한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특히 나는 '오리와 '라는 제목의 사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하루키와 집오리의 대담'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여주고 싶어진다.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있어 '작지만 확실한 행복'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수많은 소확행이 떠올랐지만, 일단 현재는 하루키의 책을 읽고 소소한 감상을 적고 있는  순간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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