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지윤 Feb 15. 2021

Maman、엄마

이따금 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마음을 졸인다. 이를테면, 천장과 가까운   침대에 누워 잠이 들기 , 만약 이대로 아파트가 무너져 내린다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상상 말이다. 그러한 상상 속에서  고민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 아파트가 무너져내리는 순간에 운이 좋아서 탈출이 가능하다면,    안에서 무엇을 들고 가야 할까.  수많은 책들은  어떡하나.     권에는, 구입 당시에 나를 매혹시켰던 기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시간을 들여 하나하나 모아서,  성냥갑 같은 방안을 가득 채운  사물들은  어떻고. 도저히 마땅한  가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새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잠이 들기 전에 자연스레 시작되는 이러한 몽상들은, 내가  어느 때보다 마음 편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고 이런 나날들이 이어질 것이라며  편하게 생각하고 마는, 방심 상태. 이를 든든하게 지탱해주는 것은,  너머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존재, maman, 바르트의 마멍, 바로 엄마라는 존재가 아닐까.
바르트는 마멍이 죽은 다음 날부터 ‘애도라는 이름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마멍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나날들,  속에서 슬픔과 망각을 반복하며 느끼는, 때로는 쏟아지는 감정들을 잉크로, 연필로 끄적거리듯 써 내려갔다. 
 그곳에 있어주리라 믿었던 사람이, 어느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는 . 집안은 변함없이 따뜻하고 포근하고 깨끗하다. 마치  사람이 처음부터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공간의 사물들이 시치미를 떼는 모습에, 여전히 존재하는 이는 서러워지고 만다. 언제나 무의식 속의 의식 속에서 떠올려보곤 하는 장면들이다. 사실 내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 스스로 느끼기에  미래일 것만 같은 일들이다. 이렇듯 내가 추상적으로 떠올리거나 떠올리길 회피하거나 했던 순간과 감정들이, 바르트의 애도일기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바르트는 마멍을 잃은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슬픔의 정체를 이렇게 정의한다.


나의 슬픔이 놓여 있는 , 그곳은 다른 곳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라는 사랑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진 바로  지점이다.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


솔직히 두렵다. 사랑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질,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두렵다. 그래서 자주 망각하고 방심하고 회피하려 든다.
사랑하는 사람을 애도하는 마음은 세월이 흐를수록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다. 켜켜이 가슴속에 쌓이며 그리움이라는 또 다른 슬픔을 만들어낼 뿐이다. 때로는 망각의 순간이 찾아오지만 이는 일시적이어서, 결국 자신의 삶이 끝날 때까지 견뎌내야 하는 마음의 무게로 남는다.
마멍이 죽은  3년도  되지 않아 바르트 역시 세상을 떠났다. 죽음의 순간에 바르트는,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마멍을 떠올렸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소확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