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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아 Nov 22. 2017

누구보다 네가,
네 자신을 돌봐줘야 해.

'감정'에 대하여

같이 보면 좋은 글,



저번에 말했듯이, 나는 자신의 감정을 잘 관리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 '어른의 조건' 중 하나라고 생각해.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니? '하루 3번은 감사해야지'하고 다짐을 몇 번이고 했던 것도,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자고 생각하는 것도 다 그 때문 아니야? 무의식적으로 분노하는 것이 싫어서, 좀 더 예쁜 표현을 하고 싶어서.

오늘은 그래서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해.




'감정을 느낀다'고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지.

하지만 과연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모두 '제대로' 알고 있을까?


 당신은 하루에 몇 가지의 감정을 알아차리는가? 의식하지 않고 그대로 쏟아내는 습관적인 감정은 무엇인가? 서운함과 당황스러움을 어떻게 구분하고 느끼는가? 짜증과 불안의 감정을 명확히 다르게 인식하는가?

 위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감정에 관심을 가지고 이름표를 달아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낯설겠지만 가까이 지내고 싶은 친구의 이름도 모르면서 친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 김윤나, <말그릇> 중.


최근 나는 김윤나 씨의 <말그릇>이라는 책을 보았어. 그러면서 아차, 싶더라고. 

내가 나의 감정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그걸 세련된 방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불가능한 것일지도 몰라. 분노가 치밀어오른다고 느낄 때, 그것이 진짜 분노인지, 혹은 속이 상한 것인지, 아니면 상대에 대해 실망감이 큰 것인지 알아야지. 조각할 대상이 찰흙인지, 대리석인지 알아야 방법을 정하듯이 말이야.

예를 들어, 나는 내 동생에게 아무 생각 없이 분노를 표출할 때가 많았어. 방에 돌아와서 '왜 그런 말을 했지?' 하고 후회할 정도로 험한 말을 하기도 했었지. 그런데 사실은 나는 동생이 내가 기대하는 정도에 비해 나를 배려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혹은 분명히 이만큼의 능력이 있는데 그걸 모두 발휘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실망감이 들었던 것에 가까웠을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분노하고 소리지를 필요가 없었을지도 몰라.

또, 뭔가 나름대로 내 일을 열심히 했는데, 결과물이 마음만큼 나오지 않았을 때 나는 자주 분노하거나 우울해지기도 하는데, 사실 그건 분노나 슬픔이 아니라 속상한 거거든. 나는 술을 마시고 함께 욕해줄 친구나 눈물을 쏙 뺄 영화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로해줄 시간이 필요했던 거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 김춘수, <꽃> 중


감정을 느낄 적에, 그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그 누구도 알려줄 수 없어. 

아무리 너를 잘 아는 가족이나 친구들마저도 너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오롯이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거든. 네 습관과, 표정과, 몸짓을 통해서 짐작할 뿐이지.

감정이 스쳐지나갈 때, 그 아이를 잘 잡아서 이름이 무엇인지 꼭 물어봐줘. 질투인지, 분노인지, 기쁨인지, 감사함인지, 슬픔인지, 서운함인지, 실망감인지.




그렇게 이름을 붙여나가다보면, 이상하게도 내 의식을 벗어나서 그냥 쏟아지게 되는 감정들이 존재하더라고.

마치 뭔가 고민이나 생각에 빠질 때 무의식 중에 아랫 입술을 만지는 나의 버릇처럼 말이야. 어쩌면 감정에도 습관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이 생각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록 깊어지는 것 같아. 모두 크게는 긍정의 감정과 부정의 감정, 그리고 자잘하게는 신뢰, 감사, 분노, 자괴감 등까지, 다양한 감정의 '습관'이 존재하는 것 같아. 감사하며 살자, 라고 하는 말은 언제나 듣지만 한편으로 '그게 그렇게 쉽니?' 하는 말이 함께 나오는 것은 우리에게 감사라는 감정의 습관이 잘 안들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의 영감님 중 한 분이 말하길, 우리에게는 계속해서 손과 마음이 가는 감정이 존재한다고 해. 그리고 그 아래에는 흉터와 같이, 감정적인 어떤 경험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고. 아주 작게는 동생이 태어난 경험부터, 크게는 어떤 거대한 경험이 될 수도 있고.

피부에 여드름 흉터가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다른 것보다도 피부 관리에 신경을 쓰게 되잖아. 여러 색조 화장품을 보는 것도 좋지만, 화장품 쇼핑을 할 때 다른 문구보다 '꿀광 피부!'라는 광고 문구에 더 많이 눈을 보내게 되듯, 감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런 흉터를 돌아볼 시간들이 필요해.

나는 영감님이 알려준 방법대로, 그리 길지는 않지만 나의 일대기를 한 번 적어보았어. 감정의 습관을 만들어낸 사건들을 적어가면서 말이야.

피부 관리는 하나도 신경쓰지 않고 화장으로 덮기만 하면 결국은 또 다른 트러블이 만들어지듯, 지금까지 만들어진 감정의 습관은 대체 어떤 흉터에서 온 것인지 살펴볼 줄 알아야 진짜로 감정을 관리하고, 제대로 표현하게 될 수 있을 거야. 온전히 치료하지 못해도 괜찮아. 다만 어떻게 난 상처인지 알아야 적절한 처방을 할 수 있지 않겠어?




그래, 누구보다 네가, 네 자신의 감정을 돌봐줘야 해.

네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의 이름을 정확히 붙일 줄 알아야 하고,

또 네 감정의 습관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도 알아볼 수 있어야 하지.


'긍정적인 생각을 하자!' 하고 너를 괴롭히기만 하지 말고, 너의 감정들이 스쳐갈 때 모두 잘 담아둘 수 있게 준비하는 과정을 꼭 거치렴.

특히 흉터를 들춰보는 일은 고통스럽고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지만, 그렇게 내 감정을 내가 잘 알고 컨트롤 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감정을 세련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을 때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



점점, 스스로 생각해야 할 일들이 늘어가는 것 같지?

하지만 잊지 마,

나는 언제나 너보다 더 많은 흉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언제나 네 편이라는 사실을.



From. 언제나 네 편일 수 밖에 없는 1년 뒤의 네가,

To. 감사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고 싶어하는 1년 전의 나에게.


Cover Photo by Yeshi Kangra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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