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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록 Feb 01. 2019

<SKY캐슬>, 우리 시대의 파우스트

'김주영'이라는 이름의 메피스토펠레스

그것은 어떤 욕망의 지옥도 같은 것이었다. ‘교육열’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지는 무간의 지옥.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입시 코디네이터'의 모습으로 나타난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나게 된다. 아니 그것은 어떤 악마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우리 안의 욕망이 기형화 되어 형상화된 것 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란 우리를 항상 어떤  선택의 기로 앞에 던져놓는다. 그리고 그 선택지들을 앞에 두고서 우리는 스스로가 옳다고 여기는 가치 기준을 끊임없이 돌이켜 보게 된다. 그 선택의 지층들이 하나둘 쌓여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삶을 만들어간다.

허나 그 모든 선택이 단 하나의 기준에 의해 좌우될 때, '어떤 하나의 목표를 이루는데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에 의해 좌우될 때 그것은 하나의 맹목이 된다. 그 맹목에 발을 들이는 순간 우리는 종종 잘못된 길에 빠져들고, 점점 더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기에 급급해지기도 한다. 때론 파멸은 손톱 밑의 가시처럼 시작하였으나 종국에는 우리의 팔을 썩어 들어가게 만든다.   


그리고 한서진(염정아)에게 그 판단의 준거는 딱 하나였다.  


우리 예서를 서울 의대에 보내는데 도움이 될까 아닐까?


그 하나의 목표에 매몰된 그녀의 시야는 스스로 자신의 선택을 좁히고 스스로를 옭아매는 트리거가 된다.


사실 한서진에게도 선택의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처음은 태블릿 속에 있는  영재의 일기를 보고서 그 집안의 파멸이 입시 코디인 김주영(김서형)으로 인한 것이었음을 알았을 때, 그래서 김주영을 해고했을 때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말들로 그 진실들을 덮는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나의 사건들도 때론 해석의 관점은 다양할 수 있으니까. 다만 그 해석의 관점 중에서 자신이 택하고 싶은 것만을 선별해서 택할 때, 그것은 일종의 인지적 편향이 되고 현실 왜곡이 된다.  


“가정 불화는 제 능력 밖의 일입니다. 영재 가족의 불행은 전적으로 그 가족들 때문이지 입시전문가의 책임은 아닙니다.”라는 김주영의 말에. “내가 영재 오빠야? 박영재가 찐따 되었다고 나까지 그럴 거라는 게 말이 돼?”라는 예서의 반박에. 그리고 그 끝에 다시 한번의 합리화를 한다. '나는 명주 언니와 다르니까...'


그녀는 결국 김주영을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빈다. “저 우리 예서 꼭 서울의대 보내야 해요. 꼭 의사 만들어야 해요. 꼭 우리 예서 좀 다시 맡아주세요.”라며.

다 감수하시겠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어머니

그리고 우리 시대의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녀의 다짐을 받아낸다.

“저한테 물으셨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예서도 영재처럼 만들 생각이냐고. 저를 살인교사범이라고 몰아세우셨는데…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겨도 다 감수하시겠다는 뜻입니까? 혹 영재네 같은 비극이 생겨도 받아들이시겠다는 뜻입니까? 다 감수하시겠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어머니.”


우리 시대의 파우스트는 그렇게 대답한다.

“네…. 그럴게요. 감수할게요. 감수하고 말구요.”

악마와의 약속을 한 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악마와의 약속에는 언제나 함정이 있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는 4화의 말미에 펼쳐지는 이 장면이  이 드라마의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뒤에도 그녀가 그 함정에서 벗어날 기회는 두어 번 더  있었다. 혜나(김보라)가 남편의 혼외자식인 걸 알고도 김주영이 집에 들이라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김주영이 남편을 죽인 사건으로 찍은 머그샷을 보게 되었을 때. 그러나 그녀는 다시 한번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그래, 그 여자는 돈 주고 사용하다 버리는 참고서나 마찬가지야...' 라며


심지어 혜나(김보라)의 죽음 앞에서도, 사실을 숨기면 또 다른 아이가 희생이 될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자기 딸의 입시만을 고민한다. 그리고 우리의 메피스토펠레스는 그 약점을 너무나 잘 안다.  


"예서가 죽였든 안 죽였든, 중요한 것은 예서가 지금 고3이라는 사실입니다. 제가 맡은 이상 예서는 결코  범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 그러자면 희생양이 필요할 텐데.... 우주가 다칠 겁니다. 어머니, 어떻게 할까요? 이제 마지막 3학년 1학기 내시만 퍼펙트하면.. 서울의대는 문제가 없습니다... 자... 어떻게 할까요, 어머니?"


그녀는 말한다.

"우리 예서, 살려주세요. 선생님"


다행히도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깨닫는다. 그것이 어떤 허무의 삶인지, 그러한 선택들이 정작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딸을 어떻게 파멸시켜가고 있는지를. 해서 그녀는 마지막 순간, 메피스토펠레스와의 약속을 끊어낸다.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과도한 입시 사교육이라는 우리 시대의 문제점을 소재로 다루었기에 이 드라마가 큰 화제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화제의 근원에는 이 드라마가 보다 근원적으로 우리 내면의 욕망을 건드리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어머니,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냐고 물었습니다. 어머니."

“무슨 일이 생겨도 다 감수하시겠단 뜻입니까? 다 감수하시겠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어머니”

저 질문들은 끊임없이 우리의 근원을 흔든다. 그것들을 후회하지 않고, 그것들을 감수한다면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겠다'는 유혹들 앞에서 우리는 때론 흔들린다. 조금 부당할 수도 있고, 때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겠다는 그 유혹들 앞에서, 우리의 욕망은 부추겨진다.  그것은 자식의 명문대 입학이 아니라, 때론 부나 명예, 혹은 어떤 권력이 될 수도 있을 테다.  


해서 김주영의 말은 어떤 식으로든 변용이 가능하다.

“박 과장님,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냐고 물었습니다, 박 과장님"

"김 차장님, 무슨 일이 있어도 감수하시겠습니까? 감수하시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김 차장님."


5분 후면 시작하는 마지막 회를 앞두고, 어떤 이의 기도를 떠올린다.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소서.(by 제니 홀저)


때론 우리는, 그렇게 우리가 갈망하는 것으로 인해 괴물이 된다.
그러니 부디 우리를 우리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보호해주소서.



이미지 출처 : JTBC드라마 <SKY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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