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60부터, 등반은 100세 까지!
2018년 10월 14일.
내가 소속된 산울림 산악회에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이다.
바로 1958년에 태어난 산악회 소속 형님들의 회갑 축하연이 인수봉 정상에서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 등산도 아닌, 암벽등반으로 인수봉 정상에 올라가 이런 행사를 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미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명예로운 행사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에는 회갑연은 기본이고 칠순, 팔순 잔치를 하는 산악인들도 종종 볼 수 있다.)
소속 산악회에 형님들 중 이번에 회갑을 맞이하신 분들은 총 5분.
2~30대부터 산악회에서 만나 서로 자일 파트너로서 3~40여 년 동안 큰 사고 없이 등반을 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약 한 달 전부터 이번 행사를 준비했고, 살짝 추워진 날씨에 걱정도 했지만 하늘이 도왔는지 살짝 더울 정도로 등반하기에는 최고의 가을 날씨였다.
평소 일요일마다 진행된 정기 등반에는 3~7명 정도였으나, 이 날은 약 16명의 산악회 회원들이 함께했다. 떡과 케이크를 배낭에 나눠 매고 오늘의 주인공인 58년 개띠 형님들 5명은 비둘기길로, 나머지 청년부는 2개 조로 나누어 인수A길을 올랐다.
평소와 달리 새로운 길에서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그런 등반이 아니었기에 출발점에서 장비를 챙기는 모습을 보니 모두들 즐겁고 밝은 표정이다.
청년부의 첫 등반자가 인수 대슬랩을 오른다.
오늘의 등반코스인 인수A길은 저렇게 대슬랩에서 시작되는데 약 2피치 정도만 오르면 편하게 쉴 수 있는 오아시스를 만나게 된다.
난 이날 청년부 A조에서 3번째로 등반을 시작했다.
떡 1박스와 케이크를 넣어 평소에 비해 2배가량 무거운 배낭으로 인해 쉽지 않은 등반이었지만, 일종의 훈련이라는 생각으로 이를 악 물고 오르기 시작했다.
오아시스를 지나 크랙 구간이 나타난다.
2/3 지점에서부터는 바위 양쪽으로 발을 힘껏 밀면서 올라가야 하는데 문제는 내가 짊어진 배낭의 무게로 인해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선등자 형님이 내가 등반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보통 등반 시 사진을 많이 찍는 이유는 기념하기 위함도 있지만, 내가 어떤 자세로 등반을 하는지 확인해서 잘못된 자세를 보정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딱 보기에도 배낭 때문에 몸이 뒤로 많이 쏠려있는 것 같은데, 좋지 않은 모습이다.
약 3피치 정도의 크랙 및 오버행 구간을 지나 인수봉 귀바위 아래의 영자크랙에 도착했다. 이제 이 영자크랙을 넘고 유독 미끄러워서 붙여진 이름인 참기름 바위를 지나면 정상이다.
영자크랙은 고독길와 취나드B와도 연결되는 구간이라 여러 차례 등반을 경험한 터라 큰 부담이 없이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정상에 먼저 도착한 청년부가 슬슬 회갑잔치를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현수막과 떡, 케이크 그리고 술 약간. (술은 사진 촬영용으로 정상에서는 마시지 않고 하산 후 뒤풀이 장소에서 마셨다. 산에서 음주는 정말 위험한 짓이다.)
이건 비둘기길로 올라온 형님들의 모습이다.
이날 한국등산학교, 코오롱등산학교, 서울등산학교 재학생들의 인수봉 등반 교육으로 인해 비둘기길이 있는 서쪽 하강길이 인산인해라 등반하는데 무척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40년 배테랑 형님들이라 노련하게 정상에 도착하셨다.
정상 아래 테라스 구간에 막 비둘기길로 올라온 오늘의 주인공인 58년 개띠 형님들이 보인다. 청년부 대표가 형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테라스로 내려갔고 나머지는 위에서 박수를 보낸다.
오늘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수제 케이크.
일반 제과점에서 판매하는 케이크는 자칫 잘못하면 등반하는 동안 흔들리고 바위에 쓸리고 해서 배낭 속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케이크는 그런 사태를 방지하고자 좀 단단한 브라우니 케이크로 특수 제작하였더니 원래 모습 그대로의 자태를 뽐낸다.
오늘의 주인공인 형님들.
서로 3~40년 지기 친구들로 서로의 이름보다는 애칭(수팔, 광팔....)이 더 익숙한 분들이라 현수막에도 애칭을 넣어드렸다.
올해 5월 말에 산악회에 들어온 이래 가장 많은 선배님들을 만난 자리다.
이 중에는 1년 이상 등반을 하지 못한 선배들도 있었지만, 역시 특유의 노련미로 쉽게 등반을 하는 모습을 보니 마냥 부러웠다.
등반자가 많으니 하강도 3군데 포인트로 나누었다.
하강 포인트에 이렇게 많은 산악회 회원들이 서 있는 모습도 상당히 오랜만이라고 한다.
모두 무사히 하산하여 뒤풀이 장소로 이동했다.
오늘의 주인공 중에 한 명이자 전임 부회장님이었던 형님께 공로의 의미로 동계 암벽장비를 증정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회갑을 맞은 형님께서 감사의 의미로 멋있게 대금도 불어주신다.
이렇게 산울림 산악회 58 개띠 형님들 회갑기념 인수봉 등반은 많은 회원들의 성원으로 인해 안전하게 끝나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안전하게 등반을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선배님들이 산악회에서 오랜 기간 열심히 활동해 주시고 이끌어 주신 덕분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70, 80..... 100세까지 건강하게 등반할 수 있길 응원하며, 나 역시... 항상 좋은 사람들과 오래오래 안전하게 등반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