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첫 행동이 바뀌기 시작했다. 물 한 잔, 세면, TV, 신문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집은 스마트폰을 아이에게서 떼어놓느라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20세기 컴퓨터혁명으로 시작된 인류 문명이 21세기 스마트폰을 시작으로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연결된 정보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산업혁명 이후 200년간 지속되어온 인간의 사고행동패턴의 심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프랑스 네텍스플로 연구소는 유네스코(UNESCO)와 공동으로 인공지능(AI) 기술이 인간의 의사결정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과연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일반 시민들의 의사결정의 주체성과 객관성은 증가했을까 아니면 퇴보했을까.
정보를 입력 받아, 처리해서, 출력하는 이른바 ‘정보처리기관’인 뇌 차원에서 IT(정보기술)에 바탕을 둔 정보화 사회로의 진입은 정보 자체가 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시대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뇌가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 자체가 과거에 비해 수백 배 증가했고, 정보 전달 속도와 확산이 지구 전체에 거의 동시간대에 이뤄지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쓰나미가 지구촌을 하나로 연결 짓고, 그에 따라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이 요동치는 현실을 지금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인류는 모든 것이 연결된 정보화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지난 세기가 반도체, 조선, 자동차, 비행기 등 눈에 보이는 ‘상품’이 문명 발전을 주도한 물질문명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보이지 않는 ‘정보’가 새로운 문명의 열쇠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정보는 결과적으로 뇌의 활동에 의해 축적되고 활용되어 진다. 정보의 양이 많고 커질수록, 반복되고 지속될수록, 사람들은 정보에 종속되고 영향력을 받을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뇌 속에 담긴 정보의 질과 양이 그 사람의 행동과 사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의식의 내용과 방향성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미래교육혁신모델인 ‘OECD Learning Framework 2030’를 보면 불확실한 미래 사회에서 20세기 교육의 틀은 더 이상 학생들이 미래에 직면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학습자의 능동적 참여와 자기 주도성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적인 석학과 CEO들의 위기감도 적지 않다. 다보스포럼에 참가했던 알리바바 마윈 회장은 “우리는 아이들에게 기계와는 다른, 인간에게 고유한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으며, 유발 하라리 교수는 “문제는 아무도 정서 지능이나 정신적 회복 탄력성, 학습 능력과 같은 역량을 대규모로 교육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라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산업혁명 이후 본격화된 공교육의 전환기, ‘인공지능과 공존할 인류 첫 세대’라는 지구촌 첫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역량을 이끌어내야 하는가. 지금 인류사회는 ‘인간의 가치를 높이는 과정 혹은 방법’이라는 ‘교육(Education)’이란 기제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지고 있는 시점이다.
초등학교 시절 IQ 검사를 했을 때, 서로의 IQ를 놓고 친구들끼리 많은 얘기들이 오고갔던 기억이 난다. 또래 사이에 비밀보장(?) 규칙은 지켜지지 않아 IQ가 높게 나온 친구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반대로 낮은 친구들은 쑥스러워 얘기조차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할까. 오늘날 초등학교에서 전국 단위의 IQ 검사를 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는가. 변화의 핵심은 단순하다. 지난 1세기동안 인간의 두뇌능력을 설명하는 단일개념으로 적용되어온 IQ 하나로 인간의 무한하고도 다양한 능력을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IQ 세대를 거친 부모들은 여전히 공부를 잘 하면 ‘머리’가 좋다고 말하고, 체육, 음악, 미술 등 분야에 돋보이면 ‘재능’이 높다고 표현한다. 뇌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이 고착화 되는 순간 인공지능과 공존할 인류 첫 세대와의 소통에 장애가 생긴다.
두뇌가 한창 발달할 나이에 가장 우려할 만한 것은 한계를 짓는 것 그리고 사고의 틀을 국한하는 것이다. “너는 여기까지야”, “해봐야 소용없어”라는 말을 아이에게 심어주는 행위들은 무의식 기제에 트라우마를 남긴다. 어릴 적 형성된 부정적 사고체계는 어른이 되어도 극복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기성세대와는 달리 태어날 때부터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특정 국가와 민족, 종교, 인종에 관한 편협한 사고체계를 의식적 틀로 형성시키는 것 역시 두뇌발달에 위협적이다.
얼마 전, ‘2021 한국인이 한국인답게’ 홍익문화축제 일환으로 홍익을 실천한 개인과 단체에게 주는 ‘홍익문화상’ 시상식이 열렸다. 국학원이 개최한 홍익문화축제는 단군탄신일인 6월11일(음력 5월2일)부터 10월 3일 개천절까지 진행되는 뜻깊은 행사이다.
홍익문화상 청년인재상을 수상한 홍다경
특히, 홍익문화상 청년인재상 수상자에 필자가 교수로 있는 대학의 청년 학우가 수상했는데, 20대 초반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한 배움이 있는 곳’이란 뜻의 ‘지지배’ 환경단체 활동을 해오고 있는 홍다경 학생이다.
쓰레기산 뮤직비디오로 화제가 된 'Enlighten'을 만들게 된 과정 역시 생각하고 고민하기 보다 실천을 먼저 하는 마인드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홍익의 가치를 전하는 지구환경운동가 되고 싶어요.”라고 외치는 24세 한국의 한 청년의 당찬 포부를 듣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20대와 비교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어느 날 세상이 멈췄어 아무런 예고도 하나 없이 봄은 기다림을 몰라서 눈치 없이 와 버렸어 발자국이 지워진 거리 여기 넘어져 있는 나 혼자 가네 시간이 미안해 말도 없이“
방탄소년단(BTS) 노래 ‘Life Goes On’에 나오는 가사인데 눈길이 많이 가서 자주 듣는다. 기존의 틀에 머물렀다면, 지구에 감성 충격을 주고 있는 방탄소년단이 한국에서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지구상 가장 유명한 보이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7명 중 6명은 50대 이상 세대가 상상하기 어려운 형태의 사이버대학을 졸업했다.
한국은 20년 역사의 21개 사이버대학을 가진 원격학습의 강국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은 결국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란 차원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것은 인류 물질문명의 방향에 변화가 있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바이러스의 침공은 계속될 것이고 그것이 일상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 인류 문명은 인간 뇌의 창조성이 만든 결과이며, 당면한 인류의 위기 역시 결국 인간 뇌의 올바른 활용과 계발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미래교육의 방향에 있어 인간 뇌에 주목해야하는 이유이다.
미래교육의 흐름은 분명하다. 20세기 ‘똑똑한 뇌’를 만들고자 했던 교육의 방향이 21세기 ‘좋은 뇌’를 위한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전 지구적 위기 속에서 국제사회가 한국의 역량을 넘어 보이지 않는 영역에까지 주목하고 있는 이때, 지구와 인류사회에 공헌할 한국적 자산은 과연 무엇인가.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시민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끼기도 하고, 지구촌에 함께 살아가는 세계시민이라는 확장된 경험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이것은 새로운 경험이라기보다 이미 우리 안에 있었던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이 표출되어진 것이다.
한국은 지구촌의 새로운 문화강국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구상 가장 유명한 보이밴드가 된 BTS는 한글로 노래를 부르고, 수천 년 이어온 전통가락을 춤사위로 표현한다.
영화 기생충은 유럽의 칸 영화제에 이어, 92년 미국 아카데미의 역사를 바꾸었으며, 배우 윤여정은 올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영국 BBC가 21세기 떠오르는 문화강국으로 제시했던 그 뿌리는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던가.
한민족의 건국이념이자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은 위대한 창조성을 가진 인간 뇌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하늘•땅•사람이 하나라는 ‘천지인(天地人)’ 정신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의 철학이 본래 우리에게 있었음을 의미한다. 계발이 아닌 회복하면 되는 것이다.
20세기 한국은 누군가를 따라가는 나라였지만, 21세기 한국은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혁신을 이루어가야 하는 나라이다.
미래교육에 대한 혜안은 멀리 있지 않고, 새로운 것도 아니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을 인간의 가치, 자연의 가치에 대한 회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