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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인드박 Dec 25. 2022

인턴사원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콘돌이자 라이스를 아시나요?

"콘돌이자 라이스 아시죠? 동문 선배에요. 아이비-리그 대학이라고요."

 

가고 싶었던 미국 예일대학교 (출처-픽사베이)

50반, 팀장과는 띠동갑 정도 보이는 여성 항변하듯 말했다.

이팀장 옆 인사팀 X대리 비스듬히 돌리고 드폰으로  대학교 위키피디아 있었다.


"팀장님. 빨리 로비로 오. 큰일 났어요."

어느 날과 같은 오전다. 사팀 X대리  카톡을 받고 이팀방은 곧바로 로비로 뛰어다.


마주 앉은  분은 이팀장 팀에서 4주간 인턴으로 근무했던 J양 어머니였다. 인턴 후, 정규직 전환 면접에서 러진 J양이 집에서 힘들어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녀의 어머니회사에 온 것이었다.


"따님이 우수한 인재인  맞습니만, 저희는 회사와 핏이 맞지를 판단해야 하거든요. 그 안 맞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을 해야할 것 같 이팀장이 입을 열었지만 어머니는 미동도 없었다. 납득할 만 더 큰 이유를 듣기 전에는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그럼 그 핏인지 뭔지가 뭐예요. 도대체 우리 얘가 뭐가 부족한 건데요?"

위키피디아를 다 읽었는지 인사팀 X대리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어머님, 면접에 관한 사항은 대외비 알려드릴 수 없다."


 시험에서 떨어진 것 이번이 처음이에요. 인정할 수 없어요.
부하직원이 눈물을 흘리면 정말 나는 당황했다. (출처-픽사베이)

J양은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더니 결국 울고 았다.

"J님, 인턴 전환율이 갈수록 떨어져서 그래. 이제 40% 정도 밖에 안된다더라고."

멘토를 맡은 K대리가 위로라고 한 말은  황을 더 악화시켰다.


"가 그럼 40% 에도 못 들었다는 말인 거예요!아아악..."

대성통곡을 하는 J양, 그 덕에 모처럼 팀이 회사에서 주목을 받았 순간이었다.


미국 명문대, 은 학력을 가진 J 양이지만, 솔직히 팀장, K대리에게는 평범했다. 인턴과제도, 업무능력도, 그나마 정규직이 되겠다는 열정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히 되겠지 하는 안도감였다.


"근데 팀장님은 어느 대학을 나오셨죠?"

어머니가 갑자기 물었다.

이팀장은 어딘가 깊은 곳, 담즙액이 다량으로 분출되는 듯한 편함을 느꼈다.


인사팀 X대리 오히려 흥분했다.

"어. 머. 님, 저희도 나름 규정과 원칙을 통해서 업무 처리를 하고 있어요. 이렇게 회사까지 찾아오시는 건 아니죠."


손을 저으며, 이팀장이 말했다.

"어머, 저도 스카이 졸업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대학이름까지 거론하는  자존심이 락하지 않았다.

거기까지 했다.

"스카이. S대 그리고 나머지 아니에요. 오벌로 인정하나요. 계 랭킹 50위도 못 들잖아."


강대강, 이렇게 전면전은 안 되겠다 싶었

이팀인사팀 X대리에게 명찰을 쥐어쥐며 손을 대고 속삭였다. 명찰을 대고 결재하는 사내카페에서 주문을 하라는 것이었다.


"아메리카노 3잔, 얼음 하나씩 넣고"

눈치를 챘는지 그는 끄덕이며 문을 조용히 열고 자리를 나갔다.

어머님, 아버님께 설명하기 너무 힘드시죠, 어떻게 우리 딸이 그깟 회사 면접에서 떨어져서 이렇게 하루종일 울고, 분하고 속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팀장이 태세를 전환하자 어머도 표정도 갑자기 바뀌었다.

"사실 J양이 저희 입장에서는 고스펙입니다. 저희가 S전자도 아니고 국내에서 1등이지 해외에서 알아주나요? 아니거든요."

어머니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글로벌 기업으로 이제 도약하려고 해외 인턴쉽을 몇 번 해봤는데 인력들을 채용하면 반년도 안 돼서 대부 그만둡니다."

아니 왜 그런지 궁금해하는 표정인 어머니.


"일단, 저희가 연봉이 박한 건 아시죠. 유학 가서 졸업할때까지 들인 돈에 비하면 한숨 나오는 게 월급입니다.그런가 하면 신입사원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현장 실습을 나가야 되거든요. 마트에서 박스 까대기도 해야 하고요. 상품판촉해야 돼요. 실적으로 쪼임 받고요. 저도 해봤지만 내가 이러려고 대학을 나왔나 싶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기 따뜻한 커피 나왔습니다. 얼음 하나 넣어서 너무 뜨겁지 않게요.
사내 커피는 너므 뜨거워 얼음 하는 필수였어요.(출처-픽사베이)

인사팀 X대리도 갑자기 상냥해졌다.

커피 향 때문인가 갑자기 테이블 분위기가 온화해졌다.


"저희 부부가 J 유학시키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세요? 진짜 외동딸 뒷바라지 힘들었어요."

갑자기 우리는 인간극장, 다큐멘터리 3일을 보듯 어머니 얘기에 빠져들다.


인쇄업을 하던 J양 아버지 사업이 시소를 오르락내리락했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구원투수 등판하듯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며 외동딸을 유학 보내고, 가정을 건사했다고 했다.


늦게 나은 딸이라  애지중지 키웠다고 했다. 련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 아이가 2층에서 낙상 곳이었다. 어머니는 교습 중이라 보지 못했고, 4시간 큰 수술을 받고 재활을 6개월 했다. 그 뒤로 미국 유학을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사고 뒤로 키가 많이 크지 않은 J양을 볼 때마다 어머니는 가슴이 타들어갔다고 했다.

'아이고', '어떻게'우리는 같이 탄식 했다. 


오죽했으면 찾아오셨겠냐. 엄마들 마음이 다 그런 거지.

이팀장은 돌아가시는 어머니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게이트문에 사원증을 대며  X과장에게 말했다.

"근데 어떻게 그렇게 잘하세요? 응대를"

X과장이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이게 다 M카 하다가 그런 거 아냐"


이팀장 계열사 이동 전, 엔터일을 하던 까마득한 시절었다. 그가 맡은 일은 케이블 음악 TV프로그램 좌석 배부였다. 매주 목요일, 회사 앞 광장에는 착순 표를 받기위해 아침부터 중, 고등학생들이 줄을 서있었다. 그리고  실겡이가 나곤 했다.


팬클럽들 간에 경쟁했다. 주로 티켓 배부, 자리배치 때문에 싸움이 났다. 그리고 그 불꽃이 스텝들에게도 튀곤 했는데, 이팀장이 그랬다.


흥분한 10대들에 둘러싸이는 두려움, 공포는 아는 사람만 안다고 이팀장는 늘 얘기했다.

"중학생들이 제일 무서워. 건들면 안돼"

오직 우리 오빠들,누나들에 경도된 맹신도들 눈에 보이는 것은 없는 법이었다.


그날은 운이 억수로 없는 날이었다. 폭설이 내렸고, 줄이 무너졌다. 최고 인기 그룹 H와 Z가 방송 복귀하는 날이었다.

표배부로 농성이 고, 이팀장은 강성 회원들에게 순식간에 둘러쌓고, 급기야 팬클럽 회장에게 멱살이 잡힌 날이었다.

보안요원 덕에 가까스로 풀려낳지만, 이팀장은 그때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죽는다면 억울해서라도 매달 21일 귀천 노자돈을 받으러 회사에 와야할 판이었다. 


 이팀장이 체득한 생존, 살기 위한 방법이었다.

먼저 들어주고, 공감해주기 말이다.

무조건 같이 싸우지 말고 들어주면 거기서 해답이, 아니면 살길이 보이고, 아니면 최소한 시간을 벌 수 있는 거다.

미국 전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님 (출처-연합뉴스)

"근데 팀장님, 콘돌이자 라이스는 J양 대학이 아닌데요. 그리고 이름이 콘돌이자가 니라 콘돌리자인데..."

X과장이 고개를 갸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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