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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기획사 면접을 보았다.

내 이상형이 예민하고 병약한 인상인 이유.

by 데인드박
삼촌, 나 전생이 노비였나 봐. 나 이 일 너무 잘하는데. 하하하

"미친놈, 말조심해라, 니 아버지가 들으시면 뺨따구 날아갈 소리다."

첫 벌초였다.

삼촌이 마음먹고 장만 했다는 최신 벌초기 부드럽고 강했다.

안전모에 안경까지, 중무장한 나는 미친 듯 잡초를 깎아내려갔다.

투투투투.

스트레스 해소에는 벌초!(출처-텐바이텐)

기어를 한 단계 올리자 터보모터가 작동되며 잡초들이 더 날아다녔다.

튜튜투튜.

'이렇게 재밌는 줄 알았다면 진작에 낸 벌초비를 아꼈을 텐데..'


집안에 벌초 불참은 10만 원 벌금이었다.

불참 2회는 가중벌로 배로 20만 원이었다.

회사일 귀찮음으로 나는 매번 벌초에 불참했고 낸 벌금이 백만 원을 넘었다.


이제 벌금이 부담되자 벌초에 참석했다. 그렇게 참석한 첫 벌초는 기대이상이었다.

아이언맨이 된처럼 무덤들을 종횡무진하는 나를 보며 삼촌은 혀 끌끌 찼다.

"내일이면 끙끙 앓을 것이다."


벌초를 마치고, 는 밭에 일손 거들러 다.

호미를 쥔 손.

그립이 딱 맞았다.

두텁고 짧은 손가락.

나의 콤플렉스였다.

근데 농사일에는 최적화된 나의 손.

이것이 천직인가 나는 또 열심히 일했다.

"우직한 소 같구먼"

삼촌은 만족한 듯 내가 자주 내려오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가늘고 긴 손가락, 하얀 피부를 지닌 예민하고 병약한 인상이 좋아요.


좀 복잡하지만 이게 내 이상형이었다.

핏기 없으면서 가늘고 고우면서 긴 손가락 (출처-인사이트)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더 빠져든다고 했던가.

키 크고 덩치가 있는 나는 늘 그랬다. 우리 종족이 없는 걸 가진 다른 종족에 호기심이 간 것이었다.

지금은 와이프가 된 여자친구도 물론 그 종족이었다.


C과장님,

회사에도 딱 맞는 인물이 있었다.

"네가 전략팀 신참이냐, 거기에 두고 오-갓."

다리 꼬고 거만하게 앉은 C과장님, 회사 뮤직팀에 실세인 그 갓 대리를 단 나는 그저 귀찮은 존재 뿐이었다.

그는 를 향해 손을 저었다.

'더는 귀찮게 하지 말라는 뜻이겠지'


그가 있는 직팀은 자유분방다. 내가 근무하는 전략팀과는 차원이 달랐다.

파티션마다 나뭇잎 차양이 있고, 중앙에는 LP 플레이어가 돌아가며 드미컬한 R&B 음악 생산했다.


그런데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그의 손이었다. 테이블에 올려진 서류를 집는 하얗고 긴 손가락. 그리고, 슬로모션처럼는 손목 려진 해골 문신!


180센티가 넘는 키와 바짝 마른 몸, 혈관이 보일 듯한 하얀 피부, 귀를 가린 긴 머리에, 뾰족한 콧대, 그리고 거기 걸쳐진 검은 뿔테 안경까지.


'았다! 병약미 예민상 현실 끝판왕'


락밴드 리드보컬처럼 생긴 이 사내, 그는

그때부터 나의 아이돌이 되었다.

'팬이라 함은 뒤를 캐는 것이지.'

사생팬처럼 나는 되뇌며 사내에 의 정보를 모두 긁어모았다. 물론 인스타그램과 링크드인도 팔로우는 기본이었다.


C과장

S대 교학과 출신, 영어와 불어 가능며, 잡지 에디터 절 외국인 모델과 한 달 교제한 뒤 결혼했, 한 달 뒤에 이혼했다. 오토바이를 아하며, 직장인 밴드 기타리스트 주로 홍대에서 활동 중이다.


캐면 캘수록 나오는 그의 연반인(연예인 같은 일반인)적 행보에 나의 팬심으로 강해졌다. 시간 날 때마다 는 잡지에 기고했던 전 글들까지 아 읽었다.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박학다식할 수가! 쩜 글도 이렇게 유려하게 쓸 수 있는가!

나는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살리에르가 되어 그를 감탄면서도 질투했다.


하지만, 나의 팬질은 그리 오래가지 .

1년 뒤 C과장이 회사를 그만두었 때문이다.

"그래 회사가 품기에 그는 너무 큰 인물이었지.'

음악 스타트업을 한다는 그를 멀리서 응원할 뿐이었다.


그 후, C과장님이 궁금했지만 당시 내 앞가림 하기도 바쁜 상황이었기에 금방 잊었다. 그렇게 1년, 2년, 3년 연차가 쌓면서 나는 어느새 과장 1년 차가 되었다. 장이 업고 간다는 IT업계 저연차 과장 된 나는 이제 이직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열정도 넘치고 체력도 받쳐주는 시기였기에 나는 매일 인광고에 지원고, 퇴근 후, 인터뷰를 두 탕이나 날도 있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면접전화가 오면 내가 거기 지원했었나 할 정도 바쁜 날들이었다.


SX기획 인사팀입니다. 2차 면접을 합격하셨고, 최종으로 대표이사님 면접이 있을 예정입니다.


모르는 번호는 안 받는데 그날은 왠지 예감이 았다.

국내 최고 연예 기획사, SX기획라니. 솔직히 믿기지가 않았다.

물론 업종을 바꾸는 큰 도전이었고, 좋아하는 연예인이 일로 바뀌 순간 얼마나 헬(Hell)이 되는지는 매니저들에게 귀가 닳게 들었. 그래도 나는 세계, 미지의 세계 안으로 좀 더 들어가고 싶었다.




면접장소인 SX 신사옥은 야말로 휘황찬란해했다.

초행인 나는 입구를 찾기 힘들는데, 비분에게 물어 겨우 1층 입구를 찾다. 늦을까 봐 헐래 벌떡 뛰더니 면접 20분 전, 나는 겨우 도착 숨을 고르며 앉다.

그런데 멀리서 주 낯이 익은 실루엣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 들렸다.


신참, 잘 있었어?


3년 만에 C과장을 만 것이었다. 그것도 SX기획 면접장에서 말이다.

C과장님은 내 옆에 자를 끌어다 앉았다.

나도 반가웠다. 처음엔

근데, 조금 뒤, 생각이 뀌었다.

'이 면접 망.했.다'

C과장님을 내가 면접에서 이는 건 불가능했다.

경력, 실력, 둘 다 내게는 불리했다.


"어, 스타트업? 그거 완전히 말아먹었지"

C과장님이 퇴사 후, 시작했던 스타트업은 초기엔 여기저기 큰 투자를 받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결국 2년 만에 사업은 실패했다고 했다. 그 후, 그는 계속 프리랜서일을 하고 있고 했다. 종종 잡지 기고도 하면서 말이다.


어쩐지 나에게 C과장님이 조금 달라져 보였다. 등이 조금 굽은 것도 같, 예전에 보았던 당당함도 사라진 것 같았다.

그와 앉아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


면접시간, 더 오는 사람이 없었다.

나와 C과장님, 그날, 우리 둘이 최종면접자였다.

인사팀장이 시간을 절감하기 위해 둘이 같이 면접을 본다고 설명했다.

비서분 안내 우리 둘은 그렇게 대표이사실로 들어갔다.

호화로웠던 대표이사실 (출처-픽사베이)

강남 전체가 보이는 통유리창,

영화에서 보던 엔틱한 카펫과 그 위에 화려한 테이블, 의자가 치되어 있었다.

벽장 안 황금색 트로피들 가득 차있었다.


대표는 뉴스와 똑같았다. 의 좌측에는 말끔한 인상을 가진 인사팀장이, 우측에는 흑인들이 주로 하는 아프로 머리를 딴 남자가 있었다.

"프로듀서 XXX입니다."


눈빛이 또렷한 그, 그와 악수를 하서 나는 디어 실감했다.

'K팝 신화, SX기획에 내가 와있구나'

세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나와 C과장님은 중앙 의자에 앉았다.


면접 내내 표는 우리 둘 중에 누구를 뽑을지 고민하는 듯 보다. 로듀서는 말없이 우리를 응시했다.

시간이 꽤 지나 대표이사가 물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하세요."


저는 여기 C과장님을 추천합니다.

"국내 최고 기획사이지만, 앞으로 글로벌 탑 기획사로 발전하려면 여기 있는 C과장님을 뽑으셔야 합니다. 안 뽑으면 후회하실 겁니다."


인사팀장이 황당한 듯 나를 쳐다았다.

문을 닫고 나와보니 나도 C과장님도 볼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왜 그랬어? 황당하게...


C과장님이 물었다.

"왜 그랬을까요? 하하하."

그렇게 답을 고 나는 줄행랑을 치듯 건물을 져나왔다.


와이셔츠가 땀에 젖어 잠시 느껴졌다. 지하철을 어떻게 탔는지억이 나지 않았다. 번쩍 띄어 속터미널역에 내렸는데 그 순간 선반에 올려 둔 류가방 올랐다. 지만, 인파에 몰려 하철 문이 닫히고 말았다.


6호선 분실물이시면 태능입구역까지 직접 오셔야 해요.


지하철 분실물 센터에 직원분이 말했다. 나는 또 30분 남짓 지하철을 타고 가야 했다. 태능으로 가는 지하철에 앉아 나는 생각했다.

'오늘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터벅터벅

그렇게 지하철분실물 센터로 올라갔다.


"아까 전화드렸던, 갈색 서류 가방 놓고 내린 사람인데요."

젊은 여직원분이 나를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이나, 소지품을 증명하실 수 있는 걸 보여주세요."

나는 주민등록을 건넸다.


"기 확인차원에서 봐야 하니까, 기분 나빠하지는 마세요. 제가 가방 안을 좀 봤어요. 근데 SX기획에 지원하신 지원서가 있더라고요. 그걸로 본인 확인께요."


면접 때 혹시나해서 여분으로 이력서를 넣어 둔게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근데요. 제가 궁금한 게 있어요. 혹시 거기 SX기획에 지원하신 건가요?"

"네 오늘 면접을 봤어요."

내가 대답하자 여직원분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어머머, 그러시구나. 근데요. 거기는 어떻게, 아니 어떤 사람이 들어가는 거예요?"

직원 표정이 해맑았다. 아마도 그곳에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는 모양이었다.


"멋진 사람이 들어갑니다. 아주 멋진 사람요."

가볍게 인사를 한 뒤, 는 분실물센터를 나왔다. 서류가방을 어깨에 메고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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