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특별한 여행기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을 때 유난히 시선이 가는 대상이 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노인들이다. 나는 여행 책자에 소개되는 명소, 희대의 건축물이나 유적지보다 생면부지한 그들의 얼굴을 찍는 것이 좋다. 나무테가 나무가 지나온 세월을 증명하듯, 노인의 주름은 그(녀)만의 삶의 궤적을 담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을 담은 사진 한 장엔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 모두가 공존한다. 가장 자연스러운 세월의 공존을 담는 일. 어찌 특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이 특별한 취미를 갖게 된 것은 센텐드레라는 헝가리의 작은 마을에서부터 시작됐다. 내 나이 스물 셋. 몇년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동유럽으로 홀로 떠난 첫 여행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귀한 시간은 모든 것이 처음인 때가 아닐까. 첫사랑처럼 여행 또한 처음일 때 가장 순수하게 설렐 수 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모든 순간들이 생생한 것은 처음의 그 감정들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느 노부부를 사진에 담은 그 날 또한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센텐드레 골목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끝까지 손깍지를 놓지 않던 부부. 세월은 그들을 주름지고 수척하게 만들었지만 그들의 사랑은 세월이 쌓여 더욱 고유해 보였다. 그들 또한 나와 같이 파릇한 젊은 날들을 지나며 둘만의 역사를 만들어갔을 터. 사랑한다면 그들처럼 되고픈 꿈이 처음 생긴 순간이었다.
해질녘 두브로니크 구시가지에서 우연히 성 한켠에 홀로 앉아계신 할머니를 보았다. 4월 초봄 아직 가시지 않은 서늘한 기운을 피해 볕이 내려앉은 공간에 양손을 포개고 앉아계셨다. 오래된 양장점에서나 볼 법한 수수한 검정 투피스에 새하얀 머플러를 두른 백발의 노인. 그런 그녀만의 기품에 매료되어 몰래 한참을 지켜보았다. 자세히 보니 차가운 바닥에는 방석 대신 종이 박스를 깔고 계신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녀는 누군가를 기다리시고 계신걸까, 아니면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쉬고 계셨던 걸까. 주변은 관광객들로 넘치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가운데 그녀가 앉아있던 공간만은 시간이 멈춘 듯 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사람은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은 삶의 충만을 이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둔 그녀와 나는 그런 필수불가결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를 마주친 건 캐나다 벤쿠버 아트 갤러리 입구였다. 화가 모네의 전시를 보고 나오던 중이었는데 좁은 난간에 중절모를 쓰고 이어폰을 낀 할아버지가 앉아계셨다. 한여름이 바짝 다가온 더위를 피할 요량이신가 했는데 놀랍게도 그의 양손엔 드로잉북과 그림도구가 있었다. 그는 어떤 피사체를 주의깊게 응시하며 오랜 시간 스케치를 하고 계셨다. 호기심이 일어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는데 안경 너머 보이는 그의 눈빛에 일종의 경외감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을지라도 무언가를 꾸준히 창조하는 일에는 부단하고 고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의 삶은 후반부에 접어들었음에도 창조하고자 하는 열망을 쉬이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오랜 시간 붓을 놓지 않는 그를 바라보며 젊은 시절의 나는 무엇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지 자문할 수 밖에 없었다.
흐바르섬은 크로아티아의 스플리트라는 도시에서 몇시간 남짓 배를 타고 닿을 수 있는 작은 섬이다. 배에서 내려 잠시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들렀다.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기다리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한 할아버지가 눈에 띄었다. 상아색 니트와 아이보리 면바지가 잘 어울리는 말끔한 노신사. 그는 커피를 마시다 거리로 나서더니 캠코더로 주변을 찍기 시작했다. 캠코더를 실물로 보는 것은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다. 아마도 스마트폰이 익숙지 않기에 여행 때마다 캠코더를 챙겨 다니시는게 아닐까. 그리고 그가 간직하고 싶은 풍경과 장면들을 모두 담아 가시리라. 그는 아주 신중히 이곳 저곳의 장면들을 촬영했다. 나중에 그 영상들을 보며 추억들을 떠올릴 그를 상상하니 나 또한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그를 사진으로 추억의 한 컷으로 담아 본 순간이었다.
나의 카메라에 담긴 이들은 그저 스처가는 사람일지언정 수많은 감정과 상상을 불어넣어주었다. 나는 사람이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살아가냐에 따라 그 행적이 몸과 얼굴에 퇴적되어 간다고 믿는다. 노인의 모습은 결국은 과거가 될 수많은 오늘날들의 반영이다. 그렇기에 젊은 사람에겐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기필코 중요하다. 내가 사진으로 간직한 그들은 혹, 내 자신이 되고픈 미래의 얼굴일지 모른다. 그들로부터 내 자신을 깨우치고 자극받고자 그들을 특별한 피사체로 만든 것이다. 오늘과 같은 날들이 쌓여 나는 과연 어떠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까. 내가 그들의 나이가 되었을때 나는 과연 누군가의 특별한 피사체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염원을 담고서 나는 오늘도 '노인을 위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