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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dianjina Apr 08. 2018

킨포크가 태어난 도시 포틀랜드

#3. 미국 서부 로드 트립


푸드 트럭의 성지

여행 4일차, 드디어 워싱턴 주를 벗어나 오레건주 최대 도시 포틀랜드로 향했다. 시애틀로부터 3~4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후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도심 한 가운데 모여 있는 푸드 트럭을 찾았다. 여행자들이 꼭 한 번 들른다는 포틀랜드 푸드 트럭은 미국 뿐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음식을 부담없는 가격에 즐길 수 있다. 내가 미국에 살고부터 느낀 이민자의 나라로서의 가장 좋은 점은 단연 음식이다. 미국엔 세계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식당들이 많다. 포틀랜드 푸드 트럭도 아랍계 주인장의 할랄 푸드, 한국 사람의 비빔밥 타코, 태국 사장님의 팟타야 등 현지 사람들이 직접 만들기에 음식 맛이 유명하다. 우리는 그 중 몇가지 메뉴를 골라 바로 옆 공원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킨포크가 태어난 도시

kinfolk
; a group of people related by blood

우리가 알고 있는 매거진 <킨포크(KINFOLK)>는 2011년 (놀랍게도 북유럽이 아닌) 미국 포틀랜드에서 탄생했다. 킨포크는 포틀랜드의 작가, 화가, 농부, 요리사 등 지역 주민이 자신들의 일상을 기록한 잡지로 주목을 받았다. 아주 작은 규모로 시작했지만 이후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며 '킨포크'라는 이름이 하나의 라이프 양식으로 불리우게 된 것이다. '킨포크'란 '친척, 친족'이란 사전적 의미를 지니며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느리고 여유로운 자연 속의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현상을 말한다. 자본주의가 가장 강력한 국력의 근간이 되는 미국이란 나라에서 포틀랜드를 비롯한 오레건 사람들은 킨포크를 주창했다. 그랜츠패스(Grants Pass)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이틀을 보내는 동안, 나는 이곳 사람들이 지향하는 킨포크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잡지 <킨포크 KINFOLK >


게르에서의 하룻밤

그랜츠패스는 오레건에서 캘리포니아로 넘어가는 와중 1박을 묵기 위해 멈춘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에어 비앤비로 노부부가 호스트로 계신 숙소를 예약했다.(Sunset View Yurt) 우리는 포틀랜드로부터 몇 시간을 운전해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에 도착했다. 늦은 시간임에도 노부부께서는 밤운전을 걱정하셨다며 마중나와 주셨다. 반가운 인사 후 우리가 묵을 곳을 안내해주셨는데 게르의 문이 열리자 (게르는 몽골식 가옥으로 영어로는 yurt라고 부른다.) 안에는 노부부가 평생 모아둔 소품들과 목재 가구들로 채워져있었다. 주인 할머니는 이곳이 자신의 아끼는 물건들로 가득 채운 애정의 장소이고 게스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행복해진다고 말씀 하셨다. 수 백장의 LP와 세월이 묻은 가구들, 그리고 주위를 밝히던 노오란 램프 빛에 피곤에 잠긴 마음이 금새 녹아버렸다. 누군가의 역사가 담긴 보물창고같은 노부부의 게르는 그 어떤 비싼 호텔도 줄 수 없는 특별한 추억을 남겨주었다.

게르(몽골식 발음이며, 영어로는 yurt라고 한다)
잘 시간이 훌쩍 넘었지만 나와 남편은 게르 앞 마당에 앉아 별을 보았다


그랜츠패스의 노부부

아침이 밝자 주인 할아버지께서는 게르의 천장을 열어주셨다. 원형의 천장이 열리자 동그란 하늘이 보이고 아침 햇살이 게르 안을 비춰주었다. 노부부는 오랫동안 그랜츠패스에 사셨고, 주인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고등학교 시절 미술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할머니께서 먼저 짝사랑을 하셨고 졸업 후 고향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결혼해 지금까지 함께 하신 것이다. 남편과 나는 결혼한지 1년이 아직 안됐다고 하자 할머니께서는 몇 십년을 함께해지만 아직도 남편을 깊이 사랑한다며 할아버지의 얼굴을 어루만지셨다. 할아버지는 머쓱해하시면서도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자연을 즐기는 일상에 행복을 느낀다고 하셨다. 그리고 게스트들이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만큼은 자연을 느끼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기를 바란다며, 다음에 꼭 한 번 다시 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만난 노부부
게르의 아침
집에서부터 싸온 감자, 당근, 옥수수 등으로 아침을 먹었다

그랜츠패스는 떠나기가 아쉽고 아까울 정도로 특별한 하룻밤을 선물받은 곳이었다. 작은 농촌 마을엔 특별한 볼거리는 없을지라도 특별한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주인 할머니는 게스트들이 왔다 가면 꼭 사진과 함께 그들에 대한 짧은 인상을 페이스북에 남기시는데, 우리에게는 자신이 정성스레 꾸민 게르와 물건들을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모습이 고맙고 즐거웠다고 써주셨다. 소박하기에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노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게르에서의 하룻밤은 나와 남편에게도 두고두고 꺼내 보는 추억의 한 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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