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은 실험적인 음악"
# "케이팝 작곡할 때 창의적인 자유 맘껏 누릴 수 있어"
# 완성도 높은 케이팝 만드는 비결은 '케이팝 작곡 공식'
# 문샤인·선샤인의 작곡 철학은 "한시도 쉬지 않는 음악을 만들자"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레드벨벳의 'Psycho'부터 괴물 신인 ITZY의 'ICY', SM 연합팀 슈퍼엠(SuperM)의 'Super Car'까지 우리가 익히 아는 유명한 케이팝(K-POP) 곡들의 탄생지는 어딜까?
다름 아닌 '음악산업 강국'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에코뮤직 라이츠(EKKO Music Rights)'다.
에코뮤직 라이츠는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프로듀서가 2015년 설립한 컬처테크놀로지그룹아시아(CTGA)의 사업부로, 스웨덴 스톡홀름, 미국 LA, 서울에 각각 위치해 있다. 2016년 11월 음악 퍼블리싱 사업을 공식적으로 시작했으며, 작곡·작사가들과 음반 제작자들을 연결해왔다. 또한, 지역 단위의 작곡 캠프(Song writing camp)를 열어 아티스트들 간의 교류를 돕기도 한다.
케이팝 A&R의 대부 펠레 리델(Pelle Lidell)이 이끄는 에코뮤직 스톡홀름 지사를 방문해 대표 작곡가 그룹 문샤인(Moonshine)과 선샤인(Sunshine)을 만났다. 2017년 레드벨벳 '피카부(Peek-A-Boo)'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글로벌 케이팝 히트곡들을 만들어 온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루드윅: 우리는 에코뮤직 라이츠에서 작곡을 하고 있는 작곡가 그룹 문샤인과 선샤인입니다. 문샤인은 요나탄(Jonathan Gusmark)과 루드윅(Ludvig Evers)으로 구성돼 있어요. 선샤인은 지난해 10월 각각 활동하던 엘렌 베리(Ellen Berg)와 카시 오페이아(Cazzi Opeia)가 합심해 탄생했죠.
우리는 몇 년 전 케이팝 작곡 캠프에서 친해졌어요. 이후 2017년 발표된 레드벨벳의 '피카부'를 시작으로 많은 케이팝 곡들을 함께 만들어 왔습니다.
Q. 레드벨벳 '피카부(Peek-A-Boo)'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
요나탄: '피카부'는 애니메이션 '스쿠비 두(Scooby-Doo)'에서 영감받았어요. '스쿠비 두' 주인공들이 유령의 성에서 돌아다니는 이미지가 피카부의 최초 콘셉트죠. 우리가 이 곡을 쓰며 생각했던 이미지들이 '피카부' 뮤직비디오에 그대로 구현됐어요.
루드윅: 조나탄이 기차에서 첫 멜로디를 만들었고, 스튜디오에서 저와 카시가 후반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우리 셋이 머리를 맞대도 좋은 후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었죠. 그러던 차에 엘렌이 와서 중독성 있는 후렴을 툭 던져줬어요. 이게 바로 '피카부'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멜로디에요. 그렇게 레드벨벳의 두 번째 정규앨범의 타이틀곡 '피카부'가 탄생하게 됐죠. 참고로 '피카부'는 우리가 영어 데모를 녹음할 때 흥얼대던 걸 그대로 가져온 거에요.
Q. 케이팝 작곡에 빠진 이유는?
루드윅: 케이팝은 록이나 펑크처럼 어떤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아서 재밌어요. 작곡할 때 무슨 장르든 섞을 수 있다는 점이 정말 큰 매력이에요.
엘렌: 맞아요. 작곡·작사가로서 케이팝 작업할 때는 확실히 창의적인 자유를 맘껏 누릴 수 있다는 걸 많이 느껴요.
요나탄: 케이팝은 제가 해보고 싶은 걸 다 해볼 수 있을 만큼 많은 자유를 줍니다. 제가 만들었던 몇몇 곡은 기존 음악 시장에서 '너무 특이해서 성공하기 힘든 곡'이라며 거절당했었는데, 케이팝 시장에서는 절대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케이팝은 정말 실험적인 음악이에요. 낯설어서 밀어내기보다는 새로워서 받아들인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Q. 케이팝 작곡 과정은 어떻게 되나?
루드윅: 대부분의 경우, 기획사가 원하는 곡 스타일을 간단히 적어서 우리에게 보내줍니다. 간단한 제안서라면 '겨울 느낌의 따뜻한 노래를 원한다'와 같이 기본적인 콘셉트만을 알려주고, 구체적인 제안서라면 훨씬 더 자세한 설명과 요구사항이 적혀있죠.
우리는 먼저 곡을 부를 아티스트가 지금까지 불러왔던 곡들을 기반으로 콘셉트를 분석한 후 어떤 스타일의 곡을 만들어야 할지 파악해요. 그다음 기본적인 뼈대를 세우고, 기획사가 원하는 곡을 만들어가죠.
카시: 작곡하는 방식은 곡마다 다르지만, 보통 곡을 만들기 전 곡의 주제부터 정합니다. 이후 주제에 맞춰 키워드나 핵심 가사를 만들죠. 그다음 여러 시안을 준비해 두고 아이디어 회의를 거쳐 세부적인 비트, 멜로디, 후렴 등을 정하며 곡을 발전시킵니다.
엘렌: 기획사의 제안 없이 우리가 그냥 만든 곡을 보내기도 해요. 대표적으로 레드벨벳의 'Power Up'이 우리가 임의대로 만든 곡 중 하나죠. 이 곡은 슬롯머신이나 비디오 게임 소리를 흉내 낸 곡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탄생했어요. 이처럼 간단한 아이디어, 콘셉트, 멜로디를 먼저 정하고 차근차근 살을 붙여 나갑니다.
Q. 완성도 높은 케이팝을 만드는 비결은 무엇인가?
루드윅: 일명 '케이팝 작곡 공식'을 알아야 합니다. 케이팝에는 보컬, 하모니, 랩이 모두 담겨있어 적재적소에 각 파트를 구성해야 해요. 더불어 그룹 멤버들의 음역에 따라 파트를 나누는 것까지 고려해야 하죠. 여기까지가 기본입니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곡의 완성도를 높여야 돼요. 우리는 한 곡에 100여 개의 비트를 쓸 때도 있어요. 그 정도로 빈틈없이 곡을 채우죠. 우리의 케이팝 작곡 철학이 '한시도 쉬지 않는 음악을 만들자'일 정도로 꼼꼼하게 작업합니다.
요나탄: 작곡 단계에서 이 곡이 어떻게 퍼포먼스 될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해야 합니다. 반드시 춤출 수 있는 곡이어야 하고, 곡을 들었을 때 멋진 뮤직비디오가 머릿속에 그려져야 하죠. 또한, 케이팝 특유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느껴져야 해요. 곡을 들었을 때 지루하거나 다운되는 느낌이면 성공하기 어렵죠.
엘렌: 그리고 케이팝은 고정관념을 깨고 만들어야 해요. 좀 특이해야 성공합니다. 케이팝을 만들 때는 항상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법한 새롭고 특별한 곡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카시: 맞아요. 정말 색다른 도전을 끊임없이 해봐야 해요.
Q. 지금까지 케이팝 작곡을 해오면서 힘들었거나 아쉬웠던 점은?
루드윅: 정말 마음에 드는 곡을 만들었는데, 새 앨범 콘셉트나 분위기에 맞지 않아 선택되지 못할 때 정말 슬퍼요. 또 제가 만든 곡이 너무 늦게 발표될 때도 아쉬운 마음이 크죠. 보통 우리의 곡은 완성 후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몇 년 뒤에 발표됩니다. 곡을 만들 당시에는 정말 트렌디한 음악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발표된 정식 곡을 들었을 때 살짝 촌스러운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요나탄: 물론, 발표 시기와 관계없이 우리가 만든 곡이 발표되는 건 무척 기쁜 일입니다. 하지만, 많은 시간, 노력, 사랑을 담아 만든 곡이 너무 늦게 발매되면 조금 실망스러운 감정이 드는 것은 사실이에요.
Q. 창작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작곡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나?
요나탄: 우리는 거의 스튜디오에서 살아요. 정말 열심히 일하죠. 케이팝에 대해 늘 공부하고, 어떻게 하면 더 새롭고 재밌는 곡을 만들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특히, 우리의 곡 대부분은 만들자마자 대중에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늘 미래 음악 트렌드는 어떨지 예측하는 건 필수에요.
엘렌: 저는 곡이 아티스트와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데 공을 많이 들이는 편이에요. 그래서 제 노래를 부를 그룹 멤버들에 이입해 곡을 어떻게 표현할지 상상하며 작업하죠.
Q.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케이팝 아티스트는?
요나탄, 루드윅(문샤인): 태민과 딘(DEAN)이랑 작업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걸그룹 위주로 작업해왔는데, 앞으로는 방탄소년단(BTS), 엑소(EXO), NCT 127과 같은 보이그룹 음악을 만들고 싶습니다.
엘렌, 카시(선샤인): 보이그룹 중에서는 엑소(EXO), 걸그룹 중에서는 트와이스(Twice)와 작업해보고 싶어요.
Q. 유럽에서 케이팝의 위상이 점점 커지는 걸 느끼는가?
루드윅: 그럼요. 특히 10대들에게 케이팝은 정말 큰 인기에요. 최근 부모님을 뵈러 갔을 때, 10살쯤 돼 보이는 이웃집 소녀가 절 보러 왔어요. 방탄소년단과 투모로우바이투게더 팬이고, 케이팝을 너무 좋아해서 저를 보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제가 쓴 곡이 좋았다며 절 엄청나게 반겨줬는데, 정말 몇 년 전만 해도 꿈도 못 꿀 일이라 놀라웠습니다.
카시: 정말 케이팝이 인기가 놀랄 만큼 많아지고 있는 걸 느낍니다. 지난 주말에 만난 지인의 자녀들도 케이팝에 푹 빠져 있다고 하더라고요.
요나탄: 몇 년 전 한국에 갔을 때 느꼈던 것에 비해, 스웨덴에서는 케이팝의 인기를 크게 느끼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요즘 스웨덴에서도 점점 케이팝의 인기가 올라가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울면서 제게 전화를 하셨어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제가 쓴 트와이스의 'Dance The Night Away'를 틀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스웨덴 라디오는 보통 스웨덴 음악, 팝, 유럽 대중음악을 트는데, 거기서 케이팝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정말 놀라웠죠.
엘렌: 케이팝은 정말 전 세계에 퍼지고 있어요. 5년 뒤의 케이팝은 상상조차 가지 않죠. 누가 알겠어요. 가까운 미래에 케이팝 시장이 미국 팝 음악 시장을 넘어 가장 큰 음악 시장이 될지.
Q. 케이팝만이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
요나탄: 가사에도 심혈을 기울인다는 점이 좋습니다. 케이팝 가사를 보면 좋은 의미를 담은 가사는 물론, 굉장히 시적인 가사도 많아요. 우리가 함께 작업했던 백현과 로꼬의 'Young'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처음에 데모 녹음했던 영어 가사는 그냥 파티에 대한 노래였는데, 나중에 발표된 곡을 들으니 '너는 충분히 젊으니 너만의 길을 가라'는 청춘을 응원하는 가사로 바뀌었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이 가사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루드윅: 대규모 콘서트도 케이팝의 매력 중 하나에요. 저는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Swedish House Mafia) 등 메이저급 아티스트가 진행하는 여러 콘서트를 가봤지만, 엑소 콘서트를 뛰어넘는 콘서트는 지금까지 못 봤어요.
Q. 케이팝 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카시: 우리는 여러분을 사랑해요! 우리 곡을 들어줘 감사합니다. 많은 케이팝 팬들이 제 인스타그램에 찾아와 곡이 좋았다고 응원을 남겨 주시는 데, 정말 큰 힘이 돼요.
엘렌: 아티스트에 보내는 케이팝 팬들의 열정적인 사랑과 응원. 정말 멋져요.
루드윅: 우리 음악을 들어주는 케이팝 팬들 덕분에 지금까지 계속 작업할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요나탄: 감사하단 말로도 부족해요. 여러분은 전 세계에서 가장 충성스럽고 멋진 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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