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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글방글베시시 Oct 27. 2015

도시 빈민, 그들을 품고 있는 곳.

다카 밀뿔 드와리빠라 바잘.

이번 달 초, 두 번의 외국인 대상 테러사건으로 다카에 소환되어 올라왔다.

그 이후 계속 집과 오피스만 왔다 갔다 하면서,

방글라데시의 현실적인 모습과 동떨어진 안전한 곳에 갇혀 살고 있었다.

그래서 다카에서 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잊고 지냈던 - 기억 저편의 내 첫 일터.

다카 밀뿔 드와리빠라 바잘 ঢাকা মিরপুর দুয়ারিপারা


처음 찾아갔을 때의 그 충격.

한 달 간 지내면서 느꼈던 당황스러움과 담담함.

현재 뒤돌아보며 느껴지는 답답함. 혹은 그리움.

갖가지 감정들이 짙은 안개가 되어 지금까지 드와리빠라의 모습은 진한 잔상으로 나한테 남아있다.


사람들은 간혹 나에게, 그리고 나도 가끔 장난으로

방글라데시 사람 다 됐네 다 됐어.

라고 하곤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

이 곳에 오는 그 누구도 감히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삶을 다 이해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안전하고 위생적인 삶을 누리는 이방인들과 달리

이 곳 사람들은 생계가 1순위인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가끔 우리나라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가난한 나라 어려운 사람들의 모습들.

어머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 수 있어? 어떻게 살지? 세상에나. 하는 모습들.

여기에서는 삶이었다.

살 수 있더라. 그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아이들'까지. 다 살아가더라.

나는 이 모습을 내 눈 앞에서 내 생활에서 볼 수 있을 줄 몰랐다.


항상 릭샤를 타고 들어갔던 드와리빠라 바잘이었다.

하도 울퉁불퉁하고 질퍽거려 다리에 긴장을 꽉 쥐어도 엉덩방아를 한없이 찍게 되는 흙길.

비가 조금이라도 오면 물이 고여서, 이 길은 나에게 드와리빠라 새벽 날씨를 알려주는 알림판이었다.

사진 찍은 날 새벽에도 어김없이 비가 왔었다.

그리고 릭샤 아저씨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모습.

길 왼쪽으로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와 무너질랑 말랑 아슬아슬한 천막 돗간들.

저 멀리 높게 올라가고 있는 이질적인 건물과 유독 더 비교되는  듯하다.

길 오른쪽으로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생계 수단 릭샤들이 가득.

그렇다.

이 사진 한 장으로 사실 드와리빠라 사람들의 삶이 다 표현됐다. 더 필요 없다.

이 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은 왼쪽과 같고 이런 삶의 무게라도 이끌어가는 것이 오른쪽의 세 발 자전거.


비가 질퍽하니 내린 날 아침.

내가 사진을 많이 찍었던 이 시기에는 비가 많이 왔었다.

비가 오면 당연하게도 비는 드와리빠라 길에 자신의 흔적을 짙게 남기고 사라졌고

그 흔적은 길 위의 쓰레기들과 뒤섞여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스며들었다.

쓰레기만 있던 때와 다르게, 비만 오면 유독 악취가 강하게 올라왔었다.

이런 냄새에는 나만 어색한 건지

사람들은 다른 날과 다르지 않게 아침을 준비했다.

그래도 이 날은 도로 전체가 잠기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조금 더 골목 깊숙이 들어갔던 날.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던 양철집들이 줄지어 등장했다.

망치로 내려치면 그 모양 그대로 조각을 새길 수 있을 정도로 얇은 양철들이 틀의 전부였다.

층간 소음으로 한창 시끄러운 우리나라와 달리

바로 옆집과 양철 하나로 붙어 있는 이 곳 사람들은 그냥 어우러져

너 집이 내 집이고 내 집이 너 집이려니 하고 살아간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달리 문이 없는 경우도 다반사.

집은 원룸이고 햇빛이 들지 않아 빨래는 줄줄이 문 밖에 엮어 매달아둔다.

좁은 골목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양쪽으로 최소 8가구씩은 살고 있다.


좁은 공간 탓에 집 안으로 들이지 못한 부엌 공간은

비집어 만들어낸 곳에 가스레인지를 하나 두고 탄생시켰다.

여자들의 사랑방.

공용 화장실은 들어봤어도 공용 부엌은 또 처음이었다.

최소 8가구가 함께 쓰는 이 공용 부엌에는 불구멍 4개가 전부였다.

내가 갔을 때도 한 아주머니는 밥을 끓이고 계셨고 그 옆에 아주머니는 생선을 다듬고 있었으며 또 다른 집 아주머니는 채소를 다듬고 있었다.

북적북적 북적북적.


북적북적 북적북적

생각해보니 이 곳에는 공용 화장실은 없다.

공용 펌프가 있을 뿐.

정작 사진 속에는 주인공 펌프가 흐릿하게, 그 존재가 보일 듯 말듯 하지만

이 펌프 주변 사람들의 북적임은 충분하게 넘치게 표현이 된  듯하다.

세수물부터 샤워 물, 설거지물, 빨래 물, 심지어 마실 물까지 모든 게 시작되는 곳.

세수물을 뜨다가 사진기와 눈이 마주쳐 수줍게 웃고 있는 소녀.

머리를 감다 물이 부족해 억척스럽게 온 팔과 발에 힘을 주고 펌핑질을 하고 있는 여자.

물을 받기 위해 허리보다 높은 턱을 오르느라 끙차끙차 하고 있는 남자 아이.

설거지물을 받고 돌아서서 가는 아주머니.

이 동네에서 가장 시끄럽고 분주한 곳이 바로 이 곳 공용 펌프이다.


이 동네에는 두 가지 종류의 집이 있다. 앞에서처럼 양철집, 그리고 이 사진처럼 벽돌집.

벽돌집이긴 하지만 처음 이 풍경을 접했을 때는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이 팔레스타인 같다 였다.

굳이 팔레스타인이 아니더라도 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 돼서 복구가 막 시작된 중동의 어느 나라.

시멘트와 벽돌로 굳건해 보이지만, 햇살이 노란 빛으로 따스하게 내리쬐지만

뭔가 허한 느낌과 싸늘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들어지다 만 벽 때문일까. 시멘트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닥 때문일까. 어지럽게 걸려 있는 빨랫줄 때문일까. 벽에 난 구멍에서 흐르는 녹의 흔적 때문일까.

그냥 그랬었다.


벽돌집 사이사이를 걸어가던 길.

큰 도로는 비가 오면 잠긴다지만, 작은 도로는 곳곳에 365일 숙성된 썩은 물이 고여 있었다.

분명 태초에는 물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오물과 섞이면서 겉으로 봐도 질퍽한 이 상태가 되었겠지.

도대체 '이 상태'에 대해 특정한 어떤 단어를 찾을 수가 없어 '이 상태'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빠지지 않게 한 발 한 발 내딛는 동안 내가 이 나라에서 이런 길부터 고치지 않고서야

위생을 논하는 게 무슨 의미일까 하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었다.

생활 환경에 아무렇지 않게 폐수인지 오물인지 길인지 알 수 없는 '이 상태'가 여기저기 너무 많다.


벽돌집도 내부를 찍기 어려울 정도로 빛 하나 없는 집이 많았다.

그나마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이 있어 찍을 수 있었던 집.

작은 방 하나에 큰 침대 하나, 이런 식의 장이 두 세개 있는 게 보통이었다.

장 하나는 옷을, 다른 장은 세면 도구부터 부엌 도구까지 만능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벽지는커녕 페인트칠도 되어 있지 않은,

어떻게 이 집이 만들어졌는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시멘트와 벽돌의 거친 자기 자랑은

이 곳에 와서 내가 익숙해진 집안 풍경 중 하나이다. 그래도 벽돌이면 양철집보다는 나은 거라고.

심지어 한 집은, 공사를 하다 만 것처럼 집의 한 쪽에 벽 대신 부서진 벽돌과 시멘트들이 쌓여져 있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벽돌과 시멘트 더미 위에 있던 부엌 도구들, 그리고 그 뒤로 썩을 대로 썩은 호수 물이 있던 모습을.

이 집은 그나마 참 정돈되고 예쁜 집이었다.


릭샤가 주업인 사람이 많은 이 동네.

집 옆으로 다양한 모양과 색의 릭샤들이 늘어져 있다.

이제는 말하기도 손 아픈 바닥의 쓰레기들보다도, 사실 이 사진은 가운데 아이가 눈에 띄어서 찍었던 사각형이다.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그마한 뒷모습을 금방이라도 가난과 쓰레기가 잡아먹을 듯했다.

아이야

너는 쓰레기보다는 풀이 있고 오물보다는 깨끗한 물이 있는 곳에서

릭샤의 손잡이보다는 연필을 잡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뒷모습을 보면 왜 마음이 조금 쓰릴까.

그 동글동글하고 맑은 눈동자가 흐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빼꼼빼꼼.

워낙에 날씨가 더워 아이들도 고생이고 아이도 고생이어서 문이고 창문이고 다 열고 수업하는 학교.

외국인의 등장에 신기했는지 문에서 고개 하나가 쏙, 창문에서 고개 하나가 쏙.

집들도 골목골목에 있지만, 학교도 별다르지 않았다.

학교만큼은 안전한 곳에 깔끔하게 있길 바랐지만

우리 센터 아이들도 등교하는 이 학교도 빛과 바람이 없기는 마찬가지.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방글라어, 영어, 수학 등등 배우는 과목은 다양한 것 같은데

등교한 지 1시간 만에 수업이 끝나는.. 미스터리한 학교.

학교라는 큰 표지판도, 울타리도 없는, 금방이라도 다칠 수 있는 학교 아닌 학교.

정부에서 지은 정부에서 인정한 학교였다는 건 비밀 아닌 비밀.


아이들 이야기.

이 동네 자전거는 사람을 태우고 삶의 무게를 찌그덕찌그덕 이고 움직이는 세 발 릭샤가 대부분.

우리에게는 평범한 두 개 바퀴가 달린 자전거는 오히려 찾기가 어렵다.

가끔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을 볼 수 있는데, 대부분 자기 몸 사이즈의 절반도 안 되는 작은 자전거.

아마 부잣집에서 버려진, 이 곳 분리수거장에서 발견된 고물이 아닐까 싶다.

릭샤들 사이로 으쌰으쌰 자기 몸 크기 절반도 안 되는 작은 자전거에 타서 페달로 원을 그리고 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까 조마조마해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질퍽해서 힘들 텐데 뒤에다 동생까지 태우고 우그적우그적 나아가고 있다.

이 모습에 흐뭇한 엄마미소를 지어야 하는 건지 아닌지 고민했었다.

또, 이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건 동글몽글한 구슬들.

조막 만한 주먹에 구슬들을 꾹꾹 쥐고 데굴데굴 굴리는 모습들이 왠지 낯설지 않다.

쓰레기와 흙이 범벅된 게임판에 구슬을 굴리고 튕기고 쥐고 놓고.

하지만, 노는 아이들만 있는 건 아니다.

일찍부터 사진처럼 릭샤를 모는 아이들도 있다. 아동 노동.

사연도 각양각색이라 무조건 아이의 노동을 무조건 비난하고 막을 수 없는 게 가장 슬픈 현실.

몸이 체 발달이 다 되기도 전에 아이들이 끄는 삶의 무게는 그 아이들에게 쇠사슬을 채워버린다.

일을 하기 시작하면 생계는 살아나지만 꿈은 허공으로 사라져버린다.

아니, 솔직히 꿈이라는 걸 꿔본 적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제 아무리 이 곳의 삶을 안쓰러움 렌즈를 장착하고 바라봐도

-그래도 가장- 희한하게 아이들을 보면 이 곳의 삶에서도 그만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특별한 건 아니지만 애들은 신나게 시간을 보낸다.

이 날도 퇴근길에 보니 저 빗물덩이에서 놀고 있었다.

비틀비틀 비틀스.

물이 차오른 길을 어찌할 바 모르고 망설이고 있는 내 앞으로

센터에서 가장 꾸러기인 녀석들 네 명이서 저 빗물덩이를 건너는 걸 몸소 보여주겠다고

아슬아슬하게 놓여있는 돌덩이를 폴짝폴짝 나를 약 올리듯 건너갔다.

결국 빠졌지만.


시골보다는 도시 빈민의 삶이 더 절박하고 낭떠러지 가까이 매달려 있는 느낌이다.

위생과 안전을 고려할 틈도 없이 생계가 치닫는 모습들.

생계는 건강과 뗄레야 없는 존재이기에

생계를 위해 릭샤를 몰지만 몰면 몰수록 생계를 위협받는 아이러니함.

생계를 위해 이 좁고 어지러운 곳에 살아가지만 살면 살수록 생계를 위협받는 아이러니함.

그것이 이 곳 밀뿔 드와리빠라 바잘 사람들이 겪는 아이러니.



9월 말, 10월 초 두 번 터진 외국인 대상 테러 사건 때문에

정말 10월 한 달간,

거북이가 위협을 느낄 때 자신의 등껍질 속에 쏙 숨어버리듯,

외국인들은 자신의 집 속에 쏙쏙 숨어 살아

길거리에서 외국인의 머리카락을 찾아볼 수 없었다.

10월 말이 되면서 사건이 풀리진 않았지만 다른 사건이 안 터지자

사람들은 등껍질에서 살짝 고개를 빼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목을 전부 빼기도 전에

-외국인 대상 테러 사건은 아니지만-

이슬람 시아파 행사에서 폭탄 세 개가 뻥뻥뻥 터지면서

다시 사람들은 자의적으로 혹은 강제적으로

자신의 등껍질 속에 몸을 숨기고 상황을 지켜봐야만 한다.

가능하다면 등껍질을 벗어나, 시골에 돌아가기 전 드와리빠라에 발을 디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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