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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글방글베시시 Sep 26. 2015

소는 죽어서 명절을 남긴다.

고루반 이드 9월 25일

아침 9시, 어제 늦게 잔 탓일까. 어기적어기적 잠자리에서 눈을 떴는데,
오늘 초대받은 집 꼬마 아들이 우리 집에 있더라.
분명 우리한테 10시까지 오라 했었는데, 9시부터 데리러 왔다.
일어난지 1초만에 외간남자를 마주하는 심장 덜컹이는 경험을 했다.
쿵닥쿵닥. 너무 당황해서 말도 얼버무렸던,
오늘 하루는 그렇게 시작했다.


수 십마리의 소와 염소가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제물이 되는 오늘, 고루반 이드.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기다렸던 오늘이 아니던가.

소 잡는 첫 시작. 소와의 씨름이 시작되었다.
장정 5명이 달라붙어도 죽음을 감지한 소의 마지막 구슬픔을 누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의 발 밑에 눌려 자포자기한 소의 모습은. 글쎄. 그 소 위에만 무거운 공기가 감도는 느낌이었다.
소의 편안한 죽음을 위한 건지, 사람의 혀를 위한 건지.
날카로운 칼이 소의 목 위를 한 번 강하게 내려쳤고
소는 벌건 생명을 토하면서 죽음을 접대했다.
인간의 차가운 손길이 닿고 난 후 그 죽음까지 울려퍼졌던 소의 울음, 소의 떨림은 아직도 생생하다.
차마 속눈썹이 기다랗던 눈은 쳐다볼 수가 없었다.


(강렬한 장면은 자체 검열을 하고.)
죄를 뒤집어 쓰고 혼을 빼앗긴 소는 죽음 후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가죽부터 육체까지 모든 걸 내놓았다.
소의 가죽이 벗겨지고 육체가 분리된다.
성인 남성들이 한 데 모여 포대자루 위에 앉아 작업을 한다.
살부터 뼈까지 단 하나도 버리지 않고 조목조목 정리를 한다.
가장 오른쪽의 아저씨,
소의 다리뼈를 어찌나 강하게 내려치시던지, 그 조각들이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던 모습이 생생하다.
 

마을 전체가 '친척 덩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두가 서로 친척이라고 하는 이 동네.
그 친척들 중 가장 여유로운 사람이 소를 잡는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나온 고기는 주변 친척,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루고루 나누어준다.
아까워하지 않고 나눠주며, 오히려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간다.
누구에게 특별히 좋은 부위 더 챙겨주지 않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준다.
내가 당신과 더 가까우니까, 내가 소 잡을 때 일을 더 많이 했으니까 더 달라고 욕심부리지 않는다.
내게 시간이 있으면 내 노동을 당연히 나누는 것이고 내게 돈이 있으면 내 재산을 당연히 나누는 것.
그것이 오늘 하루 동안 소를 통해 마을 전체에 흘러넘친 나눔이었다.
사람은 소의 혼으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소의 육체로 자신의 덕을 쌓았다.


한참의 소잡기가 끝나고.
오늘 초대받은 집의 아이들.
1학년 여자아이 샤이마와 6학년 남자아이 씨암.
남매는 방글라데시나 한국이나 똑같다.
오빠는 개구지고 동생은 그걸 똑닮아 개구지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 이전부터 내가 놀러가면 카메라를 넘겨주고 했었다.
이 곳에 온 뒤로, 간혹
카메라를 아이들 손에 쥐어주고 그 아이들의 시선이 담긴 사각형을 기다린다.
오늘도, 이 아이들의 시선을 내 사각형 속에 사알짝 훔쳐왔다.
오빠와 동생은 카메라 하나로도 저렇게 행복하다.


이드의 또 다른 놀잇거리.
메헤디.
이 아이들은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그림을 잘 그리지 않는다.
색연필, 종이, 펜으로는 그림을 잘 그리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자고 하면 항상 난 못해요라고 대답하기 일쑤.
그런 아이들이 눈이 반짝이며 그려주겠다고 먼저 다가오는 그림이 바로 메헤디.
꼬불꼬불꼬불꼬불.
일주일 뒤에 사라지는 게 아쉬울 정도로 정성을 가득 담아서
점과 선에 자신의 상상력을 한 꼭지 한 꼭지 표현해낸다.


씨암의 시선을 훔쳐서 바라본 우리들.
줄줄이 앉아 있는 우리를 씨암은 어떤 표정으로 찍었던걸까.
아쉽다.
사각형은 그 순간의 감정까지 훔쳐오기에는 엿부족이다.



오늘은 꿈에서 내 인내심과 소의 영혼을 달래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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