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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글방글베시시 Oct 13. 2015

시장, 난 여기가 그렇게 좋더라.

와글와글하면서도 투박하면서도 푸근한 곳

나는 예전부터 여행을 다닐 때도 꼭 빠지지 않고 갔던 곳이 '시장'이었다.

시장에 가면 가공되지 않은 그 나라 그 동네 날것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건 하나마다, 먹거리 하나마다 사람들의 삶이 들어있어서 그 삶을 이해하기도 이만한 공간이 없었다.

그 나라의 향을 진득하게 품고 있는 사람들, 소박하게 흐트러져 있는 물건들, 누구보다도 긴 세월을 담고 있는 그 동네만의 먹거리들

희한하게 시장 골목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걸으면 다른 어느 곳을 수십 번 걸을 때보다 그 동네의 향을 진하게 맡을 수 있었다.

이방인이면 절대 스며들 수 없는 그들만의 향이 그 곳에는 있다.

이런 시장의 꽁냥꽁냥한 모습이 나는 참 좋은 가보다.


몰로비바잘, 이 작은 시골 동네에도 그런 시장이 하나 있다. 2 일장.

물론 그 어느 때보다 외부인이 이 동네로 많이 들어오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이 곳 사람들의 삶을 그윽하게 맡을 수 있는 시간이다.

매주 월, 금. 눈이 옥구슬이 되어 쫄래쫄래 걸어 다녔던 그 골목.

아돔풀 시장 - ADAMPUR BAZAR 

사람들도 괜히 더 인심 짙어 보이고 먹거리들도 괜히 더 달달해 보이는

그 촌스럽고도 따뜻한 공기에 완전 중독되어 버렸다.

시장, 언제부터였는지 왜 이렇게까지 빠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단어만 들어도 설레고 행복한 무언가가 있다. 앙냥하다.

이 곳에서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삶을 훔쳐 보았다.


방글라데시는 이슬람 국가이다.

대뜸 이게 무슨 소린가 하겠지만, 사진을 잘 들여다 보면 왜 이슬람 국가라는 말이 나오는지 알 수 있다.

장바구니를 들고 털레털레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98%가 남자다.

처음에는 이 모습에 어색했지만

이제는 아저씨가 채소를 고르고 물건을 흥정하는 모습이 익숙해졌다.

사진만 봐도 시끌벅적한 이 좁은 골목,

그 좁은 골목 중간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앉은 장사꾼 아저씨들

그리고 그 양 옆을 분주하게 움직이는 아저씨들

사람 참 많다. 복작복작 와글와글


저 많은 양의 물건들을 어떻게 들고 왔는지 신기할 정도로

더미더미 그득하니 아저씨 앞에 쌓여있다.

파란 비닐 위에 올려져 있는 채소도, 나무 바구니 안에 들어있는 말린 생선들도

데려가는 누군가가 오길 기다리고 있다.

주변을 지나가면 그 아저씨가 파는 물건들의 냄새가 혹하니 내 코를 찔러온다.


시골 시장 바닥

엉덩이 크기의 포대자루를 바닥에 깔고 앉아있는 아저씨들 사이사이로

더 조그마한 엉덩이를 대고 있는 이런  어린아이들도 눈에 보인다.

어린 나이에도 어쩜 그리 야무진지.

조그마한 손으로 물건을 골라주고 계산해주고 비닐봉지에 넣어준다.

저 야무진 손바닥찌에 돈만이 아니라 연필도 잡혀야 할 텐데

일부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가족을 돕는 거지만 일부 아이들은 하루 종일 앉아있기도 한다.

손에 돈만의 냄새가 아닌, 연필의 냄새가 섞여났으면.


당근 하나를 올렸다 내렸다 작은 걸로 바꿨다가 큰 걸로 바꿨다가

방글라데시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묘미랄까.

아저씨가 꼭지를 쓱 잡아 올리면 따라 올라오는 양팔 대롱대롱 접시들

한쪽에 추가 묵직허니 자리를 잡으면 반대쪽에는 물건들이 분주하게 오르락내리락.

내가 내는 값어치가 실제 추 무게 값인지 아저씨의 중심잡기에 흔들리는 값인지 모르겠지만

이 양팔저울에 물건들이 대롱거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재미에 100g 더 넣었다 치지 뭐.


방글라데시, 특히 몰로비바잘에는 '빤'이라는 기호식품이 있다.

입에 넣고 꼭꼭 씹다가 퉤하고 뱉으면 빨간 물이 찍하고 튀어나온다.

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약한 마약과 같은 녀석.

밥은 못 먹어도 빤은 먹어야 하는 이 곳 사람들.

그래서 그런가 시장에만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녀석들이 빤. 

푸릇푸릇한 빤잎, 이름을 모르는 저 알갱이, 그리고 아직도 왜 먹는지 모르겠는 석회까지.

이 아이들이 모여 쌈처럼 싸 묶으면 사람들이 한 입에 쏙 넣는 빤이 탄생한다.

사실 빤을 먹으면 이가 상해서 보는 입장에서는 걱정이 많이 되지만,

담배와 같이, 먹는 사람들에게는 얕은 행복을 주는 존재라 쉽게 헤어지지 못한다.


여기에는 계절에 상관없이 가을이 담겨있는 공간이 있다.

빨갛게 물들고 노랗게 물든 낙엽들을 가루로 으깨서 쌓아놓은 듯한,

향신료가 가득한 공간.

그 색이 고와서, 산 모양으로 봉긋 솟아 있는 모습이 예뻐서 꼭 한 번씩은 눈길을 빼앗기고 만다.

한 컵 한 컵 퍼지는 걸 보면, 어릴 적 공들여 만든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 같이

괜히 내가 아쉬웠다. 내가 사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일명 "꼴라 아저씨"

꼴라는 방글라어로 바나나라는 뜻이다.

매번 시장에 갈 때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들렸던 아저씨네 바나나집

"이 바나나가 가장 맛있어" 생긴 거 다 똑같은 바나나 중 가장 좋은 걸 쏙 골라주시고

"이 바나나는 이틀 뒤에 먹어야 해" 겉모습만 보고 가장 맛있는 순간을 알려주시고

"이거 두 개 가는 길에 먹어" 다른 바나나에서 두 개 뜯어서 하나씩 쓱쓱 건네주시는

우리 꼴라 아저씨

실제로 둘이 먹다 하나가 다 먹으면 싸움이 날 정도로 맛있는 바나나만 있다고 한다.


75원의 짜부터 시작해서 밥까지 파는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시장 사이사이의 차 돗간들.

엉덩이 크기도 못 받아주는 얇은 나무 의자에 털썩 걸터앉아 호로록 짜 한 잔 마시면 

그게 그 날 장보기의 끝.

컵을 씻을 때 물에 손목 스냅을 이용해 뱅글뱅글 두 바퀴 돌리는 게 전부라 이 사람 저 사람과 입 맞추는 느낌이지만

짙어져 가는 하늘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이 곳만의 투박한 매력이 있다. 


하늘이 어두워지면 하늘에는 별이 뜨고 땅에는 누런 등이 켜진다.

안 그래도 투박하고 푸근한 매력이 넘치는 이 곳에

어둠과 같이 찾아오는 누런빛을 내는 전구와 주황빛을 내는 촛불은 그 깊이를 더해준다.

포대자루 그득한 걸 보니 아직 불빛의 따스함이 오래도록 필요할 것 같다.

나에게는 감성을 자극하는 빛이지만 이 분들에겐 아마 다르게 보이는 빛이지 않을까.



시장은 

나에게 그 나라 그 동네 사람들의 삶을 고스란히 비춰주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급작스럽게 다카로 올라올 줄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작은 모습들에도 눈을 기울여 볼걸. 

시간이 지나고 나니 하나하나가 눈에 밟히면서 흐트러 사라진다.

시골 시장의 풍경이 좋아 매주 두 번씩 잠깐이라도 들렀던  그때가

시장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리워지는 요즘 더 많이 생각이 난다.


반경 2km 내에서 살아가는 이 삶이 언제쯤 끝이 날까.

언제쯤 끝이 나서 사각형 속에 삶을 담아볼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주어질까.

언제쯤 끝이 나서 또 오겠다고 약속한 말들을 지킬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주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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