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feat. 공짜로 도를 닦을 수 있다)
첫째는 말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런데 그 이야기의 대부분은 사실 아무 맥락 없는 이야기이거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때가 많다.
어느 책에서 아이가 조잘거리는 걸 즐기라고 했는데,
ADHD라는 색안경을 쓰고 보니 이 아이의 수다는 도를 넘었다.
자신이 하고 있는 과제에 집중을 못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아무렇게나 뱉어낸다.
특히 최고조에 이르는 것은 본인이 하기 싫은 수학 문제집을 풀 때다.
연산 한 문제 풀고 '그런데 있잖아'를 시전 하면 나는 도끼눈을 뜬다.
"너 또 집중 안 해?!!!!!!"를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눈빛으로 말할 수 있다.
첫째는 의기소침해져서 다시 수학 문제집을 풀기도 하지만, 또 3분 이내에 다시 '그런데 있잖아'가 나온다.
알람시계를 켜고 10분간 말 안 하고 과제 집중하기와 같은 미션도 줘보지만
좀처럼 개선이 안된다.
자기 전에 아이에게 얘기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다 입으로 꺼낼 필요는 없어. 한 번만 더 생각해 보고 이 말이 꼭 이 상황에서 필요한 말인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하는 게 점점 멋진 사람이 되는 과정이야."
아이는 끄덕인다. 노력해보겠다고 한다.
그리고 나도 얘기한다.
"엄마는 네 이야기를 다 듣고 싶지만, 그게 습관이 될까 봐 걱정돼. 습관이 학교 수업시간에도 불쑥불쑥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면 수업을 방해하는 게 되잖아? 학교에서 그런 적 있어?"
그랬더니 좀 있는 거 같단다.
그러면서 죄책감이 든단다.
아직은 3학년이니까 괜찮고, 이제 고학년이 되면 고쳐야 한다고 얘기해 주었다.
작년에는 아이에게 얼마나 소리를 빽빽 질러댔는지 모른다.
말 못 하던 둘째도 내가 첫째에게 소리를 빽빽 질러대면 구석에 가서 조용히 앉아있다.
아빠는 하루에 1시간도 얼굴을 안 비추는데, 엄마랑 셋이 있는 집이라는 공간이 결코 유쾌하지 않았겠지.
그러고 보면 나도 참 많이 컸다.
소리 빽빽 질러봤자 1시간 이내로 후회할 거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러니 소리를 지를 것 같은 순간 도끼눈만 뜨고 참는다.(기특해 도끼눈!!!)
아이에게도 얘기한다.
엄마도 예전엔 소리를 질러댔었는데 요즘엔 안 그러잖아?
엄마도 엄청 노력하는 거야. 노력하지 않으면 계속 소리 지르는 엄마였을 거야.
다음단계는 도끼눈 안뜨기...
다음단계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팩트 위주로 교육하기.
다음 단계는 사리가 나오겠지.
아들 덕분에 절에 가지도 않고 기도원에 가지도 않고 도를 닦는다.
아이 고마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