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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러 Sep 22. 2023

왜 우리 팀은 내가 보기만 하면 지는 걸까?

심리적 제한 상태와 가을 야구 기원 살풀이

오늘도 우리 팀은 패배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응원하는 프로야구팀이 졌습니다. 가을야구를 앞두고 막판 순위 경쟁 중인 지금, 이 중요한 순간에 졌습니다. 심지어 7연패 중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7연패 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9연승, 3연승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때의 기세는 실로 대단해서 3위, 어쩌면 2위까지도 올라갈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요? 6위입니다. 이대로 끝나면 가을야구는커녕 올해도 남의 잔치 구경만 하다 끝날 것 같습니다. 왜 우리 팀은 연패에 빠졌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는 하나입니다.


바로 제가 우리 팀 경기를 시청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연승 중일 때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여느 야구팬이라도 그렇듯 '우리 팀 올해도 망했네'하며 관심 없이 살곤 합니다. 그러나 좀 잘한다 싶으면 찾아보곤 하죠. 오랜 팬일수록 이런 애착적인 모습으로 관망(?)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 팀 잘한다, 잘한다 소식을 들으니 찾게 되더군요. 하이라이트를 보니 정말 잘했습니다. 타격이 끝내주더군요. 그래서 18시 30분에 네이버 스포츠 라이브도 찾아보게 됩니다. 저녁식사하면서 보려고요.


하지만 그 시점부터 팀은 고꾸라지게 됩니다. 주축 선수는 속속 부상당해 이탈합니다. 기회는 놓치고 실책은 남발합니다.


질 때고 있고 이길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왜 내가 보기만 하는지는 걸까요?



물론 그럴 리 없습니다. 경기에 뛰는 선수들이 '석대건이 본다'라는 텔레파시라도 받아서 일부러 질 리 없으니까요. 확률로 따져도 '내가 보면 우리 팀은 진다'는 근거가 희박합니다.


지금 우리 팀 승률이 5할 조금 넘으니, 내가 관람하지 않을 때(1/2) 승리할 확률(1/2)은 25%이고, 내가 관람할 때(1/2) 패배할 확률(1/2)도 25%입니다.


그럼 왜 내가 경기를 보기만 하면 진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느낌 탓이죠. 학술적 용어로는 '심리적 제한'이라 합니다. 개인의 인식, 판단, 기억, 그리고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심리적 요인이나 경향을 의미합니다.


심리적 제한 상태에는 5가지의 심리적 편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1. 선택적 인식(Selective Perception)
: 개인이 자신의 기대나 신념, 선입견에 따라 정보를 선택적으로 인식하고 처리하는 현상
2. 기억의 왜곡(Memory Distortion)
: 사람들은 부정적인 경험을 긍정적인 경험보다 더 잘 기억하는 경향
3. 확인 편향(Confirmation Bias)
: 사람들은 자신의 기대와 일치하는 정보를 찾고 기억하는 경향
4. 불합리한 기대 (Irrational Expectation)
: 팬들은 자신의 팀이 항상 이길 것이라는 불합리한 기대. 기대가 무너지면, 팬들은 패배를 더 강하게 인식
5. 검열된 기억(Censored Memory)
: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정보는 무시하거나 잊히기 쉬우며, 대신에 부정적인 정보만 기억


내가 심리적 제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내가 경기를 보면 우리 팀은 진다'는 인식이 강하게 뇌리에 박힌 것입니다. 나아가 이러한 심리적 제한은 우리의 감정 상태를 왜곡시켜 스트레스를 증폭시킵니다.




무서운 점은 이러한 심리적 제한 상태가 우리 팀 지는 경기를 보는데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심리적 제한이 우리의 일상과 직장에서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포츠를 보며 자주 팀이 패배한다고 느끼는 것과 비슷하게, 우리는 종종 일상생활과 직장에서도 부정적인 경향을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참여하는 프로젝트가 항상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고, 또 내가 다니는 회사에 대해 원인은 딱히 없지만 어딘가 불만족스럽다고 여깁니다.


이러한 제한 상태는 개인의 성장과 행복, 그리고 조직의 앞날에 부정적인 미래를 품게 만들게 됩니다. 앞서 '올해도 가을야구는 글러먹었다'라고 낙담한 것처럼 말이죠.


그래도 우리 팀은 2017년에 우승했습니다. 8년에 한 번씩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팀입니다.



프로야구 경기야 뭐 팬에게는 '그깟 공놀이', '내년에 잘하겠지'하고 넘긴다고 해도, 개인의 삶에 대한 문제는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어떻게 심리적 제한 상태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심리적 제한 상태를 야기한 원인에 제거하는 것입니다. 신경과학자 대니얼 J. 레비틴은 저서 <정리하는 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보 과부하 시대에서 우리의 주의력과 기억력은 소중한 자원이다. 이들을 올바르게 관리하면, 우리의 생산성과 행복감을 높일 수 있다.”


이를 반대로 생각해 보면, 심리적 제한이 발생하는 이유는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해 뇌가 스스로를 차단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인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에게 오는 정보를 막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다른 이와 대화하며, 또 스마트폰을 보면서 끊임없이 감정 정보, 사실 정보, 행동 정보, 관찰 정보를 처리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뇌가 말이죠.


그러나 이제 막지 않으면 넘쳐흐르다 못해, 마음까지 막혀버리는 심리적 제한으로 이르게 됩니다.


“고의적인 행동과 의사결정을 통해, 우리는 자주 발생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더욱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


기분을 태도가 되지 않도록 미리 고의로 정보를 막으세요.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정보를 차단하세요. 그게 방법입니다.


저 역시 오늘은 우리 타이거즈가 이기든, 지든 스트레스받지 않고 응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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