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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토끼 Apr 26. 2024

책 속의 지식이 가슴으로 전달되는 방법, 여행 1

나는 사주에 역마살이 많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여자가 특히 사주에 역마살이 있다고 하면 팔자가 세다는 말과 동일시되어서 그런 운명을 꺼려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변해 세계가 1일 생활권으로 묶이다 보니 역마살이 오히려 성공과 재운을 뜻해서 축복이 된다고 하니 변화하는 세상사가 참 재미난 것 같다. 운명인지 필연인지 우리 부부는 둘 다 역마살이 강하고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재미 삼아 본 아이들의 사주조차 그러하다 하니 아이를 키우면서 여행은 우리 집의 주 여가생활이 되었다.


보수적인 경상도 집안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나는 자라는 동안 통금이 엄해서 친구들에 비해 자유롭게 다니지 못했다. 20대 시절, 외국에서 공부하며 여러 국적의 친구들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외국이라는 특정한 장소에 머무는 동안 우리나라 각지에서 어학연수 겸 유학을 온 한국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좁다고만 생각했던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생각이 달라진다.  사회과부도나 지도에서 글자로만 접했던 지명인 광주, 목포, 창원, 울산, 대전 등등 전국 각지에서 온 친구들을 해외에서 만나보면, 각각의 지방색과 삶의 방식에 차이가 있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고 나에게는 또 다른 문화적 충격이었다.


남편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오래 살아왔지만, 서울 공화국의 사람이 아닌 지방의 문화와 특색에 대한 이해의 폭이 상당히 넓다. 대학도 지방으로 가고 군대도 부산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다양한 곳에서 살면서 사람과 지역에 관해 더 이해도가 높아진 것이다. 울 부부는  아이들에 거는 기대 또한 다양성을 인정하고, 타인의 다른 점을 불편해하기보다 포용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주길 바라고 있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여건이 허락되는 대로 분기별로 국내외 여행을 다녔었다.  


요즘은 캠핑장도 잘 돼 있어 여행을 다니기가 편리해졌지만,  우리 집의 경우 깨끗한 소규모 모텔이나 민박 위주로 도시를 순례했다. 사실 빠듯한 외벌이 가정에서 여행을 다니는 데 있어 들어가는 비용이 중요하지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현지에서 보내는 시간이었다. 각자가 바쁜 일정을 어렵게 맞춰서 떠난 것인 만큼 수박 겉핥기식 관광으로 머물지 않도록 일정을 짰다.  빠뜨리지 말아야 할 그 지역의 명소나 박물관 등도 체크했지만, 가능한 한 우리 생활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재래시장이나 유서 깊은 맛집(음식 문화), 아이들 입맛에 맞는 먹을거리 등도 해당 지역 블로그를 통해 미리 정보를 얻었다.


사람에게는 근본적으로 아날로그를 향한 회귀 현상이 있는지 디지털 세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인위적인 쇼핑 공간보다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그 지역의 재래시장 답사를 의외로 흥미로워했다.

둘째의 경우 국시 꼬랭이 시리즈에 나오는 고무신 기차라는 책을 초등학교 때 무척 재밌어했는데, 지방의 한 재래시장을 둘러보던 중 고무신을 구입해 책 뒤편에 나오는 각종 차 모양의 고무신 꺾기 놀이를 서울에 와서 다시 하며 한 동안 꽤 즐거워한 추억이 있다. 주말의 경우 정체되는 차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지쳐버리거나  서로 짜증 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국내 또한 해외여행을 가듯 새벽에 일찍 출발해서 가능한 여행지에서 여유롭게 쉬면서 온전한 시간을 누리기도 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다닌 여행으로 곳곳에 많은 추억이 서려 있지만 그중에서도 군산, 문경, 목포, 남해 등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군산의 경우 건축양식이나 조경 방식이 일본 식민지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인지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마치  일본의 소도시를 시간 여행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히로스 가옥, 일본식 사찰 동국사 등) 목포는 한겨울에 갔었는데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위안부 소녀상을 근대 역사관 앞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어떤 역사 서적보다 더 큰 메시지가 묵직하게 전달되었다. 고학년이 된 아이들도 꽤 놀란 눈치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한동안 먹먹해 있었다. 문경은 친정 부모님과 여름휴가를 함께 보낸 장소로 진도 아리랑에 나오는 문경새재라는 곳을 실제로 가는 것이냐며 출발하기 전부터 아이들은 설레어했었고, TV 예능 프로에서 본 산막이 길을 직접 걸어본다며 너무나 즐거워했었다.


 진도 아리랑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난다.♪


문경에는 큰 드라마 세트장이 있는데 운이 좋게도 우리가 갔을 때  사극 촬영을 마친 시점이어서 수백 명의 엑스트라들이 전통 의상을 그대로 입은 채로 반대 방향에서 걸어 나오는데 마치 우리 가족이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시대의 저잣거리를 걷는 기분이었다. 이제 그 아련한 장면은 문경하면 떠오르는 우리 가족만의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목포라는 지명은 '나무가 많은 포구'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지난번 목포 여행 중 지역 박물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순신 장군의 일화가 있는 비 오는 날의 유달산 언덕도, 남해, 통영의 여행 중 한산대첩 축제기간과 겹쳐 미션을 완수하고 기념 마패를 선물로 받은 추억 또한 아이들은 평생을 간직할 것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이라면 학원대신 차라리 여행을 다니자.  엄마도 반복되는 가사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어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집에서 미처 나누지 못했던 마음속의 깊은 대화도 새로운 장소에서 가볍게 할 수 있게 된다.  아이랑 의도치 않은 말다툼이 생겼을 때, 말없이 집 근처 공원을 산책만 해도 정서가 환기되는 것처럼 아이와의 관계에도 도움이 된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주말마다 학원 라이딩 대신  내 나라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도 나에게 축복이었다. 때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육아의 시간은 결국 지나갈 것이다.

그 속에서 부모도 함께 기꺼이 배우고 성장해 나갈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어떤 육아이던지 의미 있고 보람될 것이다. (저의 역마살 이야기는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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