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 아닌 고양이니까 #04
작년 7월, 남편이 장거리 운전과 급할 때 필요할 것 같다고 작은 중고 자동차 스마트 포투를 사줬다. 차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까운 거리만 갈 수 있는 전기차 트위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고 보니, 이 차를 탄 첫 고양이가 되었네?”
때마침 짐이 있어 스마트 포투가 필요했던 날이라 책방에 타고 갔었는데, 그대로 병원에 다름이를 차에 태워 데려간 것이다. 무언가 기분이 묘했다. 작년 9월 28일, 2005년 2월부터 함께 살았던 고양이가 구름이가 만 19세 생일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숨을 거둔 후 장례식장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태운 이후, 살아 있는 고양이를 태운 건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곧 구름이의 1주기가 되겠구나….
병원에 도착했다. 이 병원은 지금은 별이 된 뚜름이, 구름이와 파리에서 살다가 함께 한국으로 왔던 2006년 10월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다니는 병원이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여름이, 아름이도 이 병원에 다니니 막내가 될지도 모르는 다름이를 같은 병원에 데리고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늘 그랬듯 고양이는 무작정 아이를 데려가기보다 전화로 상담을 먼저 하고 데려갔다. 길에서 온 아이에게 어떤 전염병이라도 있을지 모른 상태로 무작정 병원으로 데려가는 것은 많은 반려동물들을 위험에 빠지게 할 수도 있어 조심해야 한다. 전화로 미리, 길에서 일주일 전에 구조한 아이라는 말과, 미용이 되어 유기가 되어서 길고양이가 아닌 아이라는 설명, 일주일 지켜봤을 때 설사도 없고 식욕도 좋고, 성격도 활발하여 크게 문제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모두 했었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진료대에 올랐다.
“간단한 검사, 피검사해주시고, 아이의 나이도 궁금해요!”
케이지에서 꺼내진 다름이는 진료대에서 무서워하지도 않고 얌전했다. 의사 선생님이 치아를 보더니 한 살은 되었을 거라며, 어리진 않다고 그랬다. 외모만 봤을 때 7~8개월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동안인가보다. 그다음은 피검사. 목 쪽에서 피를 뽑으려고 했으나 움직임이 있어서 다리에 주사 바늘을 꽂아 피를 뽑았다. 그리고 몸무게를 쟀는데, 2.59kg. 한 살 고양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벼운 아이였다.
피검사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를 다시 케이지에 넣었다. 비교적 얌전한 다름이는, 케이지를 좋아하진 않아서 안쓰럽긴 했지만 그래도 고양이를 꺼내 놓는 것은 좋지 않으니 애써 아이의 시선을 외면한 채 의사 선생님이 아이의 결과를 확인하는 모습을 쭉 지켜봤다. 대략 10여 분이 흐르자 드디어 결과가 나왔다.
“빈혈이 있네요? 그런데 다른 몇 수치들이 함께 비정상으로 보이는 것이, 선천적인 빈혈이 아니라, 영양부족이나 못 먹어서 그런 것 같아요. 지금은 치료가 필요한 상태는 아니고, 3개월 정도 후에 재검을 해서 그때 문제가 있으면 치료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중성화나 예방접종을 한 것도 알 수 있나요?”
“여아라서 중성화 여부는 발정으로 확인해야 할 것 같고, 예방접종은 뽑은 피의 항체가 검사를 다시 해서 전화로 알려 드릴게요.“
빈혈을 제외하고 큰 문제가 없다는 검사 결과와 만약에 원래 주인을 만날 때 필요할 것 같아 검사비 영수증을 가지고 나왔다. 14만 3천 원이 찍혀 있는 영수증. 나중에 주인을 만나면 청구하려고 차곡차곡 모으는 중이다. 초반엔 애타게 찾고 있을 가족에게 무사히 돌아가길 바랐지만, 일주일이 되니까 혹시라도 나중에 자기 아이라고 찾으러 온다면 몽땅 청구할 생각으로 영수증을 모으기 시작했다.
책방에 돌아와 평소처럼 업무를 하고 있는데,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다른 건 안 하고 파보 항체만 검사했는데 항체를 많이 보유하고 있어 접종했던 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정말로 가출 아니면 유기가 확실한 것이다.
다시 당근마켓, 포인핸드, 고양이 커뮤니티와 SNS 등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제 아이의 대략적인 나이와 특징을 상세하게 기록해 올렸다. 그리고 글 제목과 내용에 (마지막 업로드)라고 표기했다. 이 글을 끝으로 주인 찾기를 종료하겠다고. 언젠가 주인이 나타나면 돌려주어야겠지만, 노력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잠시 후 당근 마켓 글에 댓글이 달렸다. “이 아이 이름이 다름이죠?”라며 내 인스타그램에서 봤다고 그런다. 당근 마켓에는 개인정보를 올리지 않았음에도 사진만으로 아이의 이름을 아는 것을 보니 사연이 적당히 많은 곳에 퍼져 나간 것 같다. 주인이라면 이미 보고도 100번은 더 봤으리라.
언젠가 주인이 나타난다면, 썼던 돈들과 탁묘비까지 몽땅 청구해야겠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살지 말지 고민했던 각종 용품과 기호에 맞는 맛있고 영양가 높은 사료와 이름이 적힌 목걸이까지… 모조리 아낌없이 질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