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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선 Sep 15. 2024

2인승이지만 트렁크가 있어요

가끔 탈 거면 스마트 포투가 내 취향 #02

작은 트렁크에 가득, 더 이상 무엇도 넣지 못하게 빼곡하게 짐을 싣는다. 큰 박스나 폴딩 카트를 펼친 채로는 트렁크에 짐을 실을 수 없어, 작은 리빙박스에 나눠 담고 차곡차곡 테트리스하듯 짐을 포갠다. 더 많은 짐을 넣고 싶을 땐, 좌석과 트렁크 공간을 분리하는 가림막을 빼고 운전석과 보조석의 의자를 최대한 앞으로 빼어 공간을 확보하여 짐을 더 넣는다. 처음부터 머릿속으로 전체 공간을 입체적으로 생각해 무엇을 먼저 넣어야 할지 잘 생각해야 한다. 같은 용량의 물건들이라고 해도 어떤 순서로 수납하느냐에 따라 넣을 수 있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다. 가끔은 출발할 땐 분명 잘 넣어졌는데 다시 돌아오는 길엔 짐이 오히려 줄었어도 수납을 잘못하여 다 넣지 못해 난감한 때도 있었다. 그럴 땐 모든 짐을 꺼내서 다시 처음부터 머릿속으로 무엇부터 넣어야 할지 순서를 정해 시도한다.


스마트 포투를 타고 꽤 많이 장거리 운행을 했다. 주로 책과 관련된 행사를 위하여 다녔다. 강원도 인제의 책방 거리 북 마켓 행사를 위하여 다녀왔고, 부산 국제여행영화제에서 강연을 하기 위해 다녀왔고, 대전 냥냥이 학술대회에서 독립출판 특강을 하기 위해서도 다녀왔다. 장거리가 아닌 단거리도 많이 다녔다. 가까운 곳에 갈 때 트위지가 아닌 스마트 포투를 타는 건 늘 짐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하는 크고 작은 북마켓에 참여하기 위해 차에 짐을 싣고 떠났다. 코엑스에서 했던 서울국제도서전에 두 번이나 참여했고, 인천공항으로 출국하기 위해 캐리어 가득 담고 세 번이나 다녀왔고, 도서관에 납품하기 위해서 책을 잔뜩 실기도 했다. 파주 인쇄소에 다녀오는 것도 이 차의 몫이다.


애초에 장거리를 갈 수 있는 차와 물건을 실을 수 있는 차가 필요해서 이 차를 선택했다. 트위지로는 갈 수 없는 곳을 가야 할 때가 많았고, 트위지에 싣기 어려운 많은 짐을 옮겨야 할 때도 많았기 때문에 차가 필요했다. 사회적 지위가 없고 차를 과시하는 용도로 사용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싼 자동차나 새 차가 필요하지 않았다. 단지 내 용무를 잘 해결할 수 있는 만큼의 자동차로 충분했다. 어차피 매일 운전할 것도 아닌데 승차감이나 하차감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트렁크를 가득 채우고도 더 넣지 못해 안타까운 날이면, 애초에 짐을 옮기는 용도로 쓰려고 산 차인데 이 차에 싣지 못하는 많은 짐을 옮겨야 한다면 차를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닐지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가져가는 대부분의 짐의 절반은 쓸데없는 것이 많았다. 


곧 다가올 포항에서 열릴 대한민국 독서 대전에 가져갈 짐을 미리 챙기면서 생각했다. 꽉꽉 채운 짐이 과연 다 쓸모 있는 것일까. 여기서 절반만 빼도 가뿐하게 다녀올 수 있는데, 난 왜 팔리지도 않을 책을 꾸역꾸역 한가득 싣고 떠나는 걸까. 룸미러가 가려질 만큼 가득 짐을 넣고 갈 수밖에 없는 걸까. 언제쯤 꼭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 언제쯤 혹시나 가져간 책을 다 팔고 모자라면 어떻게 하냐는 기대감을 버릴 수 있을까. 실은 차 없이 갔던 제주 북페어와 기타 몇 곳의 북 마켓에서 대중교통으로 옮길 짐만으로도 충분했던 경험이 많았는데…. 


경험이 없던 시절에는 무엇을 어떻게 꾸려야 할지 몰라서 오히려 가뿐하게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경험이 차츰 쌓이면서 조금이라도 편리할 수 있게 만드는 각종 장비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외부 행사에서만 유용하게 사용할 물건들은 평소에 감춰져 있다가 이럴 때만 세상 밖으로 나와 차에 올랐다. 딱 한 번, 아주 잠깐 그 한순간을 위해 필요할 뿐인 물건들이어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면 계속해서 빠짐없이 차에 올랐다. 그리고 그 횟수가 늘어나면 실제 사용하지 않은 날이 많더라도 습관적으로 챙겼다. 그러다 가져가서도 있는 줄도 모른 채 행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 존재를 눈치챈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또 다음에 같이 차에 오를 것이다. 갑자기 짐을 확 줄이고 살겠다고 선언하지 않는 이상, 또 나는 작은 차에 짐을 꽉꽉 채우고 떠날 것이다.


뭐 어때, 아직은 한 차로 충분히 다닐 수 있으면 된 것이지.

다행이야. 스마트 포투에 트렁크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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