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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니 Nov 14. 2015

둘, 신데렐라_막차를 놓치다

스물셋 여자의 글은 Fiction인 척 하는 Nonfiction일지도



스물셋, 순정을 비웃는 나이 


통금이 지났고, 막차는 떠나버렸다.

황금 마차는 떠났고 

택시를 타야 하는 시간,

돈이 아깝다.     


누더기라도 좋았다. 

누더기 옷을 입었다고 

나를 싫어할 사람이라면 

만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은가?     


왕자가 아니라도 좋았다.

무도회장에서 만난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치가 낮았다.

나는 당신에게 

이름도 나이도 알려주지 않을 것인데

뻔뻔스럽게 진심을 기대하는 것이 더 우습지 않은가.


자정이 지나면 젊은 남녀의 몸뚱이들이 밤거리를 활보한다.

몸뚱이라 부르는 것은 

우리가 껍데기 속에 든 마음을 이불 밑에 꼭꼭 숨겨둔 채 나왔기 때문이다.

빈속에 술을 털어 넣고 알싸한 밤공기를 하얀 이 사이로 빨아들인다. 

귀를 통해 들어온 음악이 심장에까지 닿아 가슴을 울렸다.     


너는

내가 마음에 든다고 얘기할 것이다.

내가 예쁘다고 말할 것이다.

나를 좋아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아니라도 좋아할 것이다.

아침이 올 때까지 너는 나를 알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결코 나를 모를 것이다.

물론, 나도 너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아이고, 내가 지갑을 놓고 왔네.

어머, 제가 지갑을 놓고 와서요.


지갑을 놓고 온 상대가 최악 일리 없다.     

우린 지갑은 들고 왔지만

마음은 집에 놓고 온 사람들이니까.


뭐, 다 좋다.          

스물셋의 고백은

‘네가 좋다’ 로 시작해 ‘네가 싫음 말고!’ 로 끝나니까.     

불과 일주일 전 내게 마음에 든다며 연락처를 묻던 입술은 

나의 거절에 다른 여자와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스치는 말에도 얼굴을 붉히던 남자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갔고, 덥석 덥석 손을 가누지 못하는 남자들이 늘었다. 그 손에 맞춰 여자들은 반쯤 눈을 감은 채 몸을 가누지 않았고 세상은 그렇게 반쪽짜리로 절룩거렸다.      

목까지 차오른 욕설을 한번 삼키고 한참을 생각했다. 절룩거리는 세상을 욕하고 싶었던 것인지, 

실은 자연스러운 반쪽짜리로 절룩거릴 수 없는 나를 욕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무작위로 던져대는 추파에는 늘 힘이 없었다.

마치 허공에서 떨어지는 장미 꽃잎 같았다. 나는 사람이 보고 싶었다.

두 손을 파르르 떨며 겁에 질린 채 장미를 건네는 사람이 보고 싶었다.

마구잡이로 던져진 장미가 아닌 한 사람의 향기로  아득해지고 싶었다.      



대체 나의 손을 어렵게 잡아줄 남자는 누구일까?

그는 뭔가 특별한 사람일까?     


아니,     

아이러니하게도 텅 빈 몸뚱이로 밤거리를 활보하던 이들의 

머릿속은 지나간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했다.

너무 소중한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혹여나 다칠까

이불 속에 꼭꼭 숨겨둔 마음을

우리는 집에 오자마자 두 손에 꼭 쥐고 끌어안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순수한 사랑을 꿈꾸며 눈을 붙인다.     




아니,

돌이켜 보면  아이러니할 것도 없었다.     



스물셋, 우리는 아직 순정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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