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일상에 대해 씁니다.
베르크하인 (Berghain)은 입장하기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클럽으로 유명하다.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이고 절대 촬영을 하지 못하게 하며, 철저하게 비밀이 보장되는 '진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곳'을 표방하고 있는 만큼 아무나 들여보내지 않는 것이다.
몇 시간 동안 줄을 선 후에 베르크 하인의 유명한 문지기에게 입장 거부를 당하고 나면,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곳이길래, 안 가고 말지'란 생각과 동시에 '언젠가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들 것이다.
베르크 하인에 들어갔던 날의 유투브 브이로그는 여기서 볼 수 있다.
그 당시, 베를린에 유학을 하던 내 대학 동기와 함께 밤 10시에 일찍 자고 새벽 2시에 일어나 새벽 3시에 베르크하인에 입장을 시도했다. 그랬던 이유는 친구가 그때가 제일 재밌고 줄도 그나마 적을 거라고 해서였다. 그렇게 새벽 3시에 입장하면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논다고 했다.
그때의 나는 영국에서 유학 중이었고, 영국에서 웬만한 클럽은 나름 노래방 가듯이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자주 갔었기 때문에 나름 클럽 문화도 익숙하고, 클럽 입장이 안될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웬걸, 이 아저씨는 가차 없이 흘끗 나를 내려다보더니 '나인 (Nein)' 즉, 독일어로 '안돼'라고 뱉는 게 아닌가. 그날 나는 재수 없다고 투덜거리며 누구나 입장 가능한 대중적인 음악이 흘러나오는 클럽에 들어가 아쉬운 마음만 달래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느 정도 베를린의 생활이 익숙해 질 무렵. 즉, 내가 더이상 관광객처럼 느껴지지 않을 무렵이다. 10년 전 영국에서 유학할 때 친했던 같은 과 벨기에 국적 친구가 베를린에 놀러 왔다. 그 친구와 원래 계획했던 야외 펍/클럽을 가려고 했는데 그곳이 문을 열지 않았고, 근처에서 술 마시며 놀다가 취기에 힘입어 내가 베르크하인에 한번 가보자고 했다.
구글 맵 상에서 별로 멀지 않은 위치였기에 우버를 불러 타고 갔는데, 깜짝 놀랐다. 10년 전 엄청나게 광활하고 황량한 벌판에 혼자 서있는 음산한 공장 건물이 베르크하인이었는데, 10년 후 내가 도착한 베르크하인은 주택에 둘러싸여 있는 빡빡한 베를린 도시 한가운데 있는 작은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가 근무하는 잘란도 회사 건물 뒤편이라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래도 베르크하인 앞쪽은 줄을 위한 공터가 남아있어서 바리케이드를 따라 줄을 서 입구까지 갔다. 입구까지 가면서 같이 줄을 서는 한 무리가 생수 병에 보드카를 담아 마시고 있길래, 한국인 특유의 장기- '한입만'을 시전 하여 얻어먹었다. 다행히 줄은 짧았고, 우리는 입구에 도착했다.
'몇 명이야?'
'두 명'
그렇게 우리는 입장했다.
10년 전 거절당했던 그날과 베르크하인에서 즐거운 해방의(?) 시간을 보내고 난 그날과 비교했을 때 내가 생각했을 때,
그때는 보이지 않았고, 지금은 보이는 것이 있다.
그때는 받아들일 수 없었고, 지금은 즐길 수 있다.
그때는 틀렸다고 판단했고, 지금은 다름이란 것을 안다.
그때는 선악이 분명하다고 믿었고, 지금은 회색지대가 많다는 것을 안다.
이 문구들이 바로 이해되었다면, 그리고 이에 동의한다면, 당신은 베르크하인을 백 프로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
만약 당신이 호모포비아거나, 다양한 성적 취향/개성을 존중하지 못한다거나, 안티 페미니스트라면 입장은 빠른 포기 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입장이 문제가 아니라, 입장 후에 제대로 베르크하인을 즐길 수 없어 1시간 만에 도망쳐 버리는 무리에 속하게 될 것이니, 시간 낭비 / 돈 낭비가 따로 없기 때문에 애초에 베르크하인을 추천하지 않는다.
이 마인드 셋을 조금만 옷 코디에 표현해 주면, 입장 확률은 아주 높아진다.
(참고로 나는 청바지, 나이키 운동화, 스웻 셔츠에 파란색 패딩을 입고... 집 앞 장 보러 가는 패션으로 입장했다. 모든 것은 확률 싸움...)
절대로 입어서는 안 되는 입장 패션부터 말해보겠다.
남자: 흰 와이셔츠에 세미 정장 스타일의 바지, 명품 로고가 박힌 카디건이나 셔츠 등은 100프로 입뺀이다. 즉, 댄디하고 깔끔한 느낌 절대 안 된다.
여자: 강남 클럽에 입장할만한 원피스 복장과 화려한 화장, 특히나 '힐 구두' 패션은 100프로 입뺀이다. 여성스럽고 화려하고 예쁜 느낌 절대 안 된다.
이렇게 입고 갈 바엔 차라리 벗고 팬티만 입고 가는 게 확률이 더 높다는 말도..
정해진 건 없지만 남자든 여자든 최대한 아래를 지켜주면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 화장, 머리는 세팅하지 말고 자유롭게 하기.
- 전체적으로 블랙으로 통일하되, 얌전한 느낌이 아니라 섹시한 포인트가 있는 패션. (딱 붇는 가죽 바지라던가, 어깨가 드러나는 탑이라던가 하는, 입술 빨갛게 칠하지 말고 눈 화장을 약간 스모키 하게. 남자는 검정 피트 되는 티셔츠. 남녀 모두 검정 매니큐어 발라주면 좋음.)
- 배낭이나 큰 가방 들고 가지 않기
- 웬만하면 명품 입지 말기
- 최소한 관광객 처럼 보이진 말기.
- 절대 웃지 말기.
- 반쯤 눈 풀리면 좋음 (술 기운).
마지막으로, 주의해야 할 점 몇 가지만 마지막으로 몇 가지 적어보고 끝내려고 한다.
- 줄 서는 곳에 화장실 같은 건 없다. 근처 어두운 데서 알아서 싸고 와야 한다.
- 최소한 독일어로 '몇 명이 왔냐'라는 걸 알아듣고 '몇 명이다' 정도만 외워서 말하면 좋다.
- 3명 이상의 무리는 입뺀 확률이 높으니 쪼개져서 입장한다.
- 남녀 화장실 구분 없다. 화장실에 여러 명이 우르르 들어가는 건 일반적이다.
- 현금만 사용 가능하므로, 충분히 현금을 들고 가자. 물은 사마시던가, 화장실 수돗물을 마셔야 한다 (바에 가서 물 달라고 하면, 빈 컵을 준다. 화장실에 수돗물 마시라고... 물론, 수돗물이 더럽다는 건 아니다. 독일 사람들은 다 수돗물 마신다.)
- 간혹 컵을 들고 춤추다 보면 누가 약을 탄다는 이야기도 있다. 웬만하면 다 마시고, 춤출 땐 춤만 춰라.
모두가 친절하고 영어도 잘하니 부끄러워하지 말고 친구들 많이 사귀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