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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 Jun 22. 2022

기대감이 없다는 건 쓸쓸한 일일까?

성인 ADHD 체크리스트 중,
- 생각대로 안 되면 예민해지고 불안해지는 증상을 겪기도 한다. 자신의 부주의를 과도하게 보상하려다 2차적 불안과 강박증이 생겼다.

출처: https://www.donga.com/news/It/article/all/20161206/81686911/1

기대감으로 오는 불편함


일본에 처음 왔을 때 불편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Episode 1)

핸드폰 유심 칩을 사러 갔는데, 당시 일본에서 내 명의로 만든 카드가 없어 거절당했다. 당연히 한국에서 만든 카드가 있었고, 해외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카드였지만 일본에서 만든 카드가 아니라 허용이 안된다 했다. 일본에서 만든 카드는 며칠 후에 나올 테니 먼저 유심 칩을 사고 카드를 변경하겠다고 했다. 웃으면서 하지만 매우 곤란해하는 얼굴(이었지만, 절대로 타협이 안 되는)로 매뉴얼에 그리 나와있기에 안된다는 점원의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냐면 나는 당장 핸드폰 유심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몇 번을 중얼거렸다. 당연히 그 점원은 알아듣었을 리 없지만 말이다.

(Episode 2)

아침에 부랴부랴 회사 가는 버스를 타려는 순간이었다. 빨리 출발하지 않으면 지각하기 1분 직전이었다. 그런데 내 앞 앞에 서있는 사람이 교통 카드를 찍었는데 잔액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제야 버스 카드에 돈을 충천하려는 모양이었다(일본 버스는 버스 안에서 돈을 충천할 수가 있다). 지갑을 찾는데도 돈을 찾는데 한 세월이 걸렸다. 지갑을 겨우 찾은 듯해 보였고, 그 후 돈을 충천하는데 돈을 충전하는 방법을 잘 몰랐는지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가 일일이 하나하나 그것을 설명해 주었고, 겨우 충천을 할 수 있었다. 근데 하필 아기가 있는 유모차와 함께 있어 모든 상황이 쉽지가 않았다. 버스비를 지불하는데만 거의 10분 넘게 걸린 것 같다. 그런데 놀라운 건 아무도 앞서 가려하지 않았다. 한국이었으면 그 사람은 옆에서 서게 하고, 뒷사람들이 먼저 버스를 탈 수 있도록 할 텐데, 그 모든 일들을 처리할 때까지 재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출근 시간에 늦은 나만 발을 동동 굴릴 뿐이었다. 내가 여유 있었을 때면 누구도 화를 내지 않고 배려하며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꽤 인상적으로 보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를 기다릴 때면 항상 앞서 먼저 와서 기다린 사람들보다 먼저 버스를 타는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 어쨌든, 출근 시간은 다른 이야기였다. 답답하고 화가 났지만 결국 지각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Episode 3)

한 번은 계좌를 만들러 일본에 있는 한국계 은행을 찾은 적이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좌를 만들기 위해 하루 휴가를 내었고, 아침 10시에 은행을 방문했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휴가까지 내가며 간 건 오버였나 생각이 잠시 들었다. 화요일 오전 10시, 손님은 정말 나 한 명이었다. 내가 만들러 간 은행 계좌는 단순히 돈을 입금하고 출금하는 Cash card와 이 해외인 한국 계좌로 송금을 할 수 있는 계좌였다. 먼저 Cash card를 만드는 용도를 설명해야 했고, 해외 송금 카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해외 송금이 필요한 이유, 돈을 받는 계좌 명의와의 관계, 왜 돈을 보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했다.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은 나였지만 다행히도 담당 직원이 나와 비슷한 정도의 서툰 한국어를 할 수 있어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가며 대화가 가능했다. 계좌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마친 후 담당 직원은 엄청난 양의 용지들을 가져왔다. 지금 한국에서는 은행의 모든 업무가 패드로 이루어지지만 일본은 여전히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두 개의 계좌를 만들기 위해 내가 사인하고 동의해야 하는 문서의 양은 상상초월이었다. 혹여 내가 실수로 내용 기입을 잘못하면, 다시 모든 게 처음부터 시작이다. 쓰던 용지는 버리고 새로 다시 작성해야 한다. 히라가나와 집주소는 한자로 모두 기입해야 했기에 처음부터 다시 쓰기 시작하면 글을 쓰는 것이 서툰 내게는 지옥이었다. 남들보다 두배의 시간이 필요했다. 모든 서류 작업을 마친 후 송금을 하는 기준을 정해야 했다. 환율은 보내는 날 기준인지, 받는 날 기준인지, 송금 수수료는 받는 사람 기준으로 할지 보내는 사람 기준으로 할지, 최대 6개월간 얼마 정도의 돈이 보내질지, 최대로 송금하게 될 금액 등의 기준도 정해야 했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뭘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은행 직원은 무엇이 좋을지 추천해 주지 않는다. 그 어떤 의견도 내게 주지 않았다. 10시에 은행을 갔는데 나는 은행을 오후 1시가 훌쩍 넘는 시간에 나올 수 있었다. 거의 3시간을 계좌 두 개를 만들기 위해서 은행에서 죽치고 있었다. 죽치고 있었다는 말이 맞다. 진이 다 빠져 은행 근처에서 밥을 먹고 집에 돌아오니 3시가 되어 있었다. 반차가 아닌 휴가를 내기 잘했다.


이제는 이런 모든 순간들이 익숙해지고 한국에서의 편리함에 대한 똑같은 기대감이 사라져, 특히 ‘서면으로 제출하세요’와 같은 일본 행정에 (여전히 자동화가 안된 것이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화가 나거나 답답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밥을 다 먹고 계산하려는데 현금만 된다는 식당에 더 이상 당황하지 않는다. 더 빠른 방법이 있는데 굳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라고 비효율적인 것을 요청할 때 그리고 웃으면서 매뉴얼에는 없는 내용이라 안된다는 거절을 당할 때도 이젠 ‘이렇게 하는 게 더 효율적이에요’ 하며 목소리 내어 다투지 않는다. 100번을 말해도 안될걸 알기 때문이다.


기대감이 사라지고 나면,

기대감이 없다는 건 쓸쓸한 일인 걸까?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나는 기대감을 먼저 가지고 삶을 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감은 언제나 실망감이란 녀석을 함께 가지고 온다는 걸 매번 경험하면서도 왜 나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걸까. 초반 도쿄 생활을 하면서 내가 입에서 떼놓지 않고 늘 상 하던 말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이러지 않는데,, 한국은 이게 되는데,, 하 정말, 한국은 이러지 않는데…”


한국에서 삶에서 기대하는 부분에 대해서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사는 삶과 동일하게 받기를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지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마 나는 지금 다시 한국에 가서 살게 되면 반대의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일본은 안 그러는데, 한국은 왜 이러지’ 하며 말이다.


이 기대감이란 마음은 모든 내 생활을 지배한다. 인간관계에서도 말이다. a를 줬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내가 a만큼 줬으니 내 마음을 그만큼 알아주고 보답 주겠지 하는 마음을 기대한다. 그렇게 못 받으면 혼자 상대방에게 실망하고 오해한다. 나 혼자 상대방과의 관계를 재정의하고 정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순수하게 바라지 않고 줄 수 있는 마음은 가지기 어려운 걸까.


살아가는 삶에서도 나는 미래를 기대하고 혼자 망상에 빠지기 일수이다. b라는 일을 계획하면서 b+만큼의 미래의 결과를 기대하며 계획을 세운다. 남들도 그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  b+ 의 결과를 갖는 걸 보았으니 내게도 최소 그 정도의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남의 쏟은 노력을 왜 내가 스스로 결정했을까. 상대방의 노력의 크기와 결과의 비례를 내가 결정하고 내게도 같은 크기를 기대하려고 했다. 나는 그랬다. 내가 노력을 쏟아부은 것들에 대해서 먼저 미래에 얻게 될 결과물에 대한 기대를 한다. 나는 언제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것 자체에서 보람을 느끼고 미래에 결정되는 결과는 미래에 맡기게 될까.


우리는 지나간 것들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불안으로 현재를 즐기지 못한 채 대부분의 시간들을 흘려보낸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나간 것들에 대한 후회도 앞으로 올 것들에 대한 불안도 내가 기대하는 어떠한 것에 미치지 못한 실망감과 내가 기대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의 불안에서 오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나는 어제도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상대방에 마음에 의해 실망을 했다.


기대감을 줄이는 연습, 현재에만 집중하는 연습

현재에만 집중하는 연습을 해본다. 내가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면서 시간 내어 나를 돌아보고 고찰한 그 마음에만 집중해 볼 것을 연습해 본다. 내가 좋아하는 혹은 내 주변의 누군가에게 베푸는 그 자체의 마음만 생각해 보는 것을 연습을 해 본다. 내가 현재 실천하고 있는 혹은 실천 중인 현재의 나에만 집중하는 연습을 해 본다. 그 후의 결과를 미리 기대하거나 불안해하는 대신 그저 미래에 맡겨보는 연습을 해본다.


그럼 나는 언젠가 과거에 대한 후회로 집착하는 대신,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이는 대신, 현재에만 그리고 현재의 행복과 즐거움에만 집중하는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의 실천:

오늘 하루 출근해서 열심히 집중해서 업무 한 나 자신에게 칭찬해 보기.
엄마에게 전화에서 감사하다고 이야기해보기.
요즘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돌아오는 것을 기대하지 않고 스타벅스 커피 쿠폰 보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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