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설전: 리움 소장품 (고미술, 현대미술) 리움미술관
"이것도 공짜야?"
이제는 괜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리움 상설전 관람을 위해 무료로 사전 예매를 하고 발렛비는커녕 주차비도 없이 이태원 토지 위에 주차한 후, 오디오 가이드 대여를 묻는 내게 신분증만 요구한 직원의 말에 의아하다가 가방 보관을 위해 물품 보관함 앞에 선 내가 한 말이었다.
뜻밖의 상대로부터 내가 가지지 못한 걸 제공받았을 때 사람들은 보통 네 가지 반응을 보인다.
1. 감사한 마음을 갖고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2. 나한테 왜 이걸?이라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의심을 던진다
3. 호의를 권리로 여기며 요청할 만한 다른 걸 살펴본다
4. 가진 자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증오심을 표출한다
나의 반응은 복합적이었다. 초반에는 2번 반응을 견지하였고 전시장을 둘러볼수록 1번 반응으로 치우쳤다. 왜 그렇게 느끼게 되었는지 차근히 설명해보겠다.
한국메세나협회 자료에 따르면 리움 미술관을 운영하는 삼성문화재단은 2020년 기업 출연 문화재단 지원 규모 상위 10개 재단 중 1위를 기록했다. 코로나 전인 2019년에도 지원 규모가 가장 큰 기업이었다. 삼성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현재 진행 중인 다양한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볼 수 있는데 그중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암미술관 운영에 가장 많은 액수를 지출한 것으로 보인다. 그 덕(?)을 오늘 리움 미술관을 이용한 나와 같은 관객들이 보고 있다.
다만, 미술관 무료 운영을 통한 사회환원이 재단의 미술관 운영 목적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무료라고만 볼 수 없는 게 관람객 유입량을 늘려 긍정적 전시 경험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유료 기획전시나 멤버십 가입으로 유도하는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미술관 입점 카페 음료나 기념품 판매로 기타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실제 음료와 기념품을 지출한 입장에서 리움 미술관 챔프커피의 커피는 정말 맛있었고 작가의 스토리를 덧입혀 전시작품을 상품화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주요 언론 매체에서 이건희컬렉션 관람 열풍을 다룰 때 종종 언급된 내용 중 하나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경제효과 연구보고서였다. 명작을 다수 포함한 이건희 컬렉션을 국제적 명성이 있는 60여 개 미술관 데이터, 대국민 설문조사 등을 토대로 예상 방문객과 1인당 소비액을 산출했는데 결과가 놀랍다.
예상 방문객 약 310만 명
외국인 방문 비중 약 7.7%
1인당 소비액 약 2.3만 원
경제유발 효과 약 3,500억 원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관람 후 리움미술관을 방문한 관객으로서 삼성문화재단이 리움미술관 무료 상설전 운영을 통해 얻을 재정적, 마케팅적, 문화적 반사 이익은 분명할 것이며 그 수치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전시를 감상하면서 그 규모와 수준에 놀랐다. 여느 국내외 유물 전시 특별전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스케일과 세심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 홍보 문구는 그럴듯하게 작성하고 실상은 실속 없는 구색 맞춤으로 끝나는 그런 전시가 아니었다.
이를 가능케 한 건 창립자와 운영자의 확고한 의지와 적극적 지원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 2004년 삼성미술관 리움 개관식에서)
과거에 우리가 무엇 무엇을 세계 최초로 발명했다느니, 서양보다 몇 백 년이나 앞섰다느니 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바로 오늘 우리 문화의 색깔이 있는가, 세계에 내세울만한 우리의 문화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 이건희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나의 마음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의심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기울어진 순간이 있었다.
고미술 전시 관람을 마치고 현대 전시관에 입장할 때였다. 당시 심정을 클래식 공연으로 비유하자면 1부 공연 관람 후 인터미션을 맞이한 관객과도 같았다. 1부 공연을 토대로 2부 공연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데 이건 예상을 뛰어넘었다. 전혀 다른 장르의 또 다른 공연의 서곡을 듣는 것처럼 잘 준비된 또 하나의 전시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기브 앤 테이크의 잣대로 리움을 측정하려다 내가 가진 줄자가 한참 모자란 느낌이랄까? 이 모든 전시를 기획하는데 얼마의 예산이 들었을 것이며, 수지타산을 위한 입장료의 적정선을 계산해보려니 절로 감사가 감탄으로 흘러나왔다.
문화예술 지원사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수혜의 범위와 적재적소의 지원, 지속 가능성과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여러 기관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삼성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문화예술 지원사업? 일단 나한테 다 생각이 있으니 기다려봐”
“우리가 누군데 아주 기깔나는 사업을 기대해도 좋을 거야”
산들바람 부는 햇살 좋은 날, 전시를 다녀와 두 가지 바람이 생겼다.
하나는 삼성의 삼성부심, 더 정확히는 리움이 리움부심을 더 부렸으면 한다. 지속적인 좋은 전시들을 지속해서 기획했으면 정말 좋겠다. 도슨트나 작가와의 만남의 기회도 성사되면 더욱 좋겠다.
둘은 음악분야 지원사업의 리움화다. 현재 음악 분야에서 삼성문화재단은 악기 대여사업, 조율사 양성사업을 하고 있다. 분명 필요한 사업이지만 음악을 향유하거나 잠재 향유자들에게 피부에 와닿는 사업이라고 말하기엔 미술/전시 분야와 비교해 아쉬움이 크다.
물론, LG나 롯데처럼 콘서트홀을 운영하는 주요 대기업들이 삼성만큼 미술/전시에 투자한다고 볼 수 없지만 기대감이랄까? 체감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음악 지원사업을 시작한다면 그 모습이 또 얼마나 기깔날지 기대되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