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어스름 속에서 루카스와 엠마, 그리고 카이가 자주 모이던 그 숲 속 오두막은 따뜻한 불빛으로 가득했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던 그곳은 마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공간처럼 고요하고 깊은 무게가 느껴졌다. 오늘 그들이 이야기 나누고자 한 주제는 ‘베놈’이라는 존재와 인간에 대한 정의였다.
루카스는 불꽃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난 베놈이라는 존재가 단순히 공포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게 아쉽다고 생각해. 그의 존재는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진정한 확장을 보여주기도 하지 않나?”
엠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맞아, 베놈은 분명 우리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줘. 휴머니즘이 고수하는 인간의 자율성과 독립성의 개념을 과감히 무너뜨리고, 다른 생명체와의 공생을 통해 새로운 존재로서 진화할 수 있음을 증명해 주니까. 단순히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생명을 이어간다는 점이 특히 흥미로워.”
카이가 잠시 생각에 잠기다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베놈은 인간을 단지 독립적인 개체로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호의존적인 존재로서 새롭게 구성한다는 거지? 마치 우리가 자연과 기술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것처럼.”
루카스는 미소 지으며 카이를 바라보았다. “정확해. 포스트휴머니즘의 시각에서 보면, 인간은 더 이상 고립된 존재가 아니야. 베놈과 에디의 공생 관계처럼 우리 역시 자연과 기술, 혹은 다른 생명체와의 결합을 통해 새롭게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엠마는 자리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그런데 베놈이 정말 포스트휴머니즘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와 에디의 관계는 상호의존적이긴 하지만, 때로는 갈등과 대립이 잦아. 인간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에디와 베놈의 욕망이 충돌할 때, 우리는 과연 그 관계를 진정한 공생이라 할 수 있을까?”
카이는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게 바로 베놈이 우리에게 던지는 철학적 질문이 아닐까.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의 결합을 통해 새로워지는 건 매력적이지만, 과연 그 과정에서 인간은 본연의 자아를 유지할 수 있는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변화하게 되는가. 그 경계가 애매모호하니까.”
엠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포스트휴머니즘은 바로 그 경계를 허무는 과정일지도 몰라. 우리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면서도 동시에 본연의 자아를 잃지 않는, 마치 우리가 서로 다른 물감이 섞여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듯 말이야.”
루카스는 엠마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러면, 우리가 진정한 공생을 위해선 무엇을 포기해야 할까?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끝까지 유지하려 한다면, 그 관계가 진정한 공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카이는 여전히 불꽃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아마도 우리가 진정한 공생을 이룬다면, 그것은 서로의 자아를 완전히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 공존하는 방식을 찾는 게 아닐까. 베놈과 에디가 처음엔 갈등을 겪었지만 결국엔 서로의 존재를 이해하고 함께 협력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야.”
엠마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베놈은 결국 인간이 다른 존재와 공존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일종의 상징이었을지도 몰라. 인간을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키는 동시에, 우리가 가지지 못했던 새로운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루카스는 엠마와 카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제로의 시대’에서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유지하면서도 자연과 기술, 그리고 다른 존재들과 공존하는 방식을 찾아가고 있는 거겠지. 베놈이 인간과 생명체의 결합을 통해 더 강력한 존재로 탄생했듯이, 우리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더 진화해 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카이는 루카스의 말을 들으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맞아, 우리가 갈 길은 멀고, 앞으로 만날 갈등과 갈림길도 많겠지. 하지만 그 모든 걸 감수하고서라도 나아가야 할 가치가 있어. 베놈이 보여준 공생의 가능성처럼, 우리도 그 길을 걸으며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기를.”
셋은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들 앞에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베놈이 던져준 질문처럼, 상호 의존하며 새롭게 진화하는 길을 함께 걷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