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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Aug 18. 2023

브런치 작가가 될 이유

이번 주에 브런치 작가 되는 법을 강의했다. 글쓰기 강의를 하다 보면 강의 콘텐츠도 글감처럼 이리저리 주물럭거릴 수밖에 없다. 브런치 작가 되는 법을 커리큘럼 안에 넣었다. 교육담당자의 기획이었고,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독립잡지를 만들고 유통한 경험까지 있어서 출판 A to Z까지도 맛보기 강의도 한다. 그리고 나는 브런치 작가이다. 브런치계를 주름잡는 화려한 활동이나 수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아는 것을 전달하면 된다.      


글을 쓰고 글쓰기 강의로 업을 삼은 것은 몇 년 안 되지만, 읽고 쓰는 일은 가늘고 길게 했다. 눈이 나빠진 것도 책 탓이니까. 초등학생 때 집에 오는 길에도 책을 읽으면서 걸었다. 동화책이 너무 재밌어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안경 쓰는 것이 간지 나게 보여서 일부러 더 그랬던 것도 있다. 덕분에 13살 이후로 줄곧 나쁜 시력 때문에 고생하게 되었지만, 간지가 최고인 13살이었다. 아무튼.     


마지막 글을 3월에 올렸다. 무려 5개월이나 글을 올리지 않았다. 그 사이에 브런치가 '브런치 스토리'로 개명 하더니 갑자기 ‘응원하기’를 받을 수 있는 작가를 임의로 한정해서 공분(?)을 사고 있다. 나는 크리에이터 배지도 못 받았다! 이웃 작가들의 글을 읽으러 갔다가 ooo크리에이터라고 형광색 배지를 보았다. ‘응, 이게 뭐지, 나도 있나?’ 없다.


내가 모르는 이벤트 행사로 배지 발급 행사(?)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최근 3개월 안에 글을 10개 이상 올린 작가들에게 발급되었다고. 브런치 공식 계정에서 기준을 읽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파일럿 작가들은 예외인 것은 아쉽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글을 올리는 절실함과 성실함을 담은 배지였다. 이 배지를 달아야 응원하기를 받을 수 있다. 나에게 물질적으로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넘치는 독자가 있어도 나는 응원을 받을 수 없다. 저는 마음만 받을게요. 하하.


순간 빈정이 상했지만 한편으로 잘 됐다 싶었다. 어차피 배지를 받아도 내 글이 응원을 받을 수 있까? 응원은  ‘품앗이’ 성격이 강할텐데 나는 품앗이에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다.  내가 구독하는 작가는 한 줌이다. 관심 있는 주제의 글을 못 찾은 것은 내 게으름 탓이 크다. 글을 열심히 찾아 읽지 않고 브런치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편이다. 그다음 쓸 내용은 짐작할 것이다. 이혼, 양육, 이혼....가끔 퇴사, 직장 이야기. 물론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이는 주제라 메인에 몇 달씩 걸려있을 것이다.하지만 접속할 때마다 똑같은 글을 보니 다른 글을 찾을 의욕을 싹 틔우는 대신 글을 읽을 의욕을 거두었다. 시스템적으로도 알고리즘에 한 번 갇히면 다른 글을 발견하기 쉽지 않아서 더 부지런히 글을 찾아야 했으니까.


그런데 응원하기 파일럿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글을 만나면서 요즘 햄 볶는다. 응원하기는 둘째치고 다양한 주제를 다룬 글을 만나서 신나게 구독하기를 누르고 열심히 글을 읽고 있다. 신기한 일은 다른 사람 글을 읽으니 나도 글이 쓰고 싶어지는 것이다. 브런치를 떠나지 못하는 순기능은 바로 이 동기부여가 아닐까.      


나는 구독자 수도 적고, 좋아요는 더 적다. 노출은 마이너 시간에 되는 것 같다. 가령 새벽이나 밤늦게 같은. 조회 수는 분명히 올라갔는데 낮에는 조회수 변동이 거의 없다. 분명히 어디에 노출된 흔적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거 보면 브런치가 그래도 노출의 형평성을 고심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브런치북 공모전 수상 작가들은 일주일 내내 좋은 시간에 노출되는 것과 비교하면 미미한 노출이지만, 미미한 노출도 노출이니까. 잠 못 이루며 뒤척이는 밤에 접속한 독자들을 공략하며(?) 야금야금 구독자가 늘었지만, 규칙적으로 찾아와서 내 글을 읽는 독자는 한 줌이다. 내가 구독하고 찾아가서 글을 읽는 작가가 소수이듯이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브런치에 왜 있는가? 왜 글을 올리는가?      


5개월 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지만 글은 계속 쓰고 있다. 책 두 권을 출간 준비 중이다. 한 권은 탈고했고, 한 권은 초고를 쓰고 있는데 지지부진하다. 생각보다 훨씬 안 써져서 매일 자괴감에 빠져 잠들곤 한다. 브런치 스토리에서 큰 이슈를 만드는 글 한 편도 쓰지 않았지만, 계속 쓸 동기를 생산할 수 있다. 연재한 매거진을 브런치북으로 만든다. 그 후 글을 열심히 다듬고 처음 기획을 보완해서 투고하고 출간계약을 한다. 브런치북으로 만든 책 세 권이 출간되는 셈이다. 내년에도 책 출간을 기획 중이다. 브런치북 두 권은 <한국심리학신문>에 연재 중이다. 모든 브런치 작가들의 로망인 출간 제안을 받는 드라마틱한 일은 없었지만, 써 놓은 원고가 씨앗 글이 되어 출간 작업을 하고 연재 등 물성화 작업 중이다.      


글쓰기는 다른 일과 달라서 성과나 성취가 더디다. 좋아요가 가장 가시적 성과이고, 이제 응원하기가 또 다른 성과가 될 것이다. 열혈 독자여도 글마다 응원(실제로는 결제)으로 기쁨을 지속적으로 표현할지는 의문이다. (이 부분은 개선되어야 할 거 같다. <뉴욕타임스> 경우에 기사 한 건당 0.25달러이다. 박리다매인 셈이다. 참고하시길.)


브런치의 본질은 쓰고 읽는 거대한 풀장이다. 좋아요가 없어도 크리에이터 배지가 없어도 응원을 받지 못해도 글을 쓸 수 있다. 재산이 얼마가 있든 수영복만 입으면 수영장에서 수영할 수 있는 것처럼. 글을 쓰면 원고가 쌓인다. 원고가 있는 사람만이 출간할 수 있다. 은유 작가가 말했듯이 글쓰기는 꽃이 필 때 꽃구경 안 가고 단풍이 곱게 들때 단풍놀이 가고 싶은 것을 참으며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는 반복 노동이다. 즉 보상이 크지 않는 일을 하려고 금욕 생활을 기꺼이 자처하는 사람이 작가이다.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꾸준히 쓸 때만 글은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브런치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작가지만, 지난 글쓰기 강의에서 브런치 작가가 되기를 권했다. 동기를 외부에서 찾으면 꺾이기 쉽다. 어떤 일이든 내 안에서 동기를 찾을 때  계속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헝가리 출신의 작가 아고타 크리토프가 자전 에세이 <문맹>에서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 질문을 받았을 때 답이다. 아무도 보지 않고, 서랍에 원고가 쌓여도 쓰고 또 쓸 때만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싱거운 답이지만, 나는 이 말을 늘 가슴에 품고 다닌다.


글쓰기는 다른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기 전에 나에게 말을 거는 일이다.



이 매거진에서는 공공기관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면서 느끼는 감상과 에피소드를 적어볼까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마음'이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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