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알 Oct 13. 2023

글에 주제가 있어야 하나요?

우리는 왜 글을 쓰고 싶을까? 글쓰기 강의에 오는 수강생들이 저마다 이유가 있지만, 대체로 4가지 이유이다.  


첫째 호기심. 나처럼 새로운 걸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수업을 듣는다. 그중 글쓰기가 갑자기 눈에 들왔고, 시간도 되는 경우이다.


둘째 막연히 글을 써 보고 싶은 경우. 에세이는 일상과 나에 대해 쓰기 때문에 특히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다. 내 이야기를 글로 풀어서 공적 영역으로 가지고 나올 때 자본주의식 인정과는 다른 쾌감이 있다.


셋째 '나 글 좀 쓰는 사람이야'고 주변에 말하고 싶은 허세. 허세는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우리는 허세를 가끔 부리고 싶다. 지나친 허세는 해롭지만 적당한 허세는 결과를 내도록 추진 중요한 동기 중 하나이다.


넷째 글을 '잘' 쓰고 싶어서이다. 글을 쓰고 싶은 열망이 강하지만 글이 늘지 않아서 답답할 때이다.      


저마다 글쓰기 수업을 찾는 이유는 다르지만 결국 잘 표현하고 싶어서이다. 잘 표현하는 것은 잘 쓰는 것과 관련 있다. 잘 쓰는 것은 무엇일까? 화려한 문장이나 비유를 쓰는 것이 아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할 때 잘 읽히고 여운이 남는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주제이다.      


“글에 주제가 꼭 있어야 하나요?”     

답부터 말하면 예스이다. 모든 글에는 주제가 담겨있어야 한다. 논설문이나 설명문에서는 팩트에 기반한 구체적 데이터나 자료가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에세이에서는 에피소드가 데이터나 자료 역할을 한다.      


에피소드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메시지, 즉 주제 의식이 없으면 글에 힘이 없어서 고개를 돌리게 된다. 주제가 빠진 채 에피소드만 재미있게 묘사하면 일기처럼 보일 수 있다. 좋은 글 다시 말해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글에는 공통점이 있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들어있다. 그럴 때 글에 흡입력이 생긴다. 가르치려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글을 쓸 때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이 가르치려는 태도이다. 당위, 도덕성은 서랍 깊숙이 넣어두는 게 좋다. 삶의 지혜는 서른이 넘으면 이런저런 빡침을 통해 체득하기 마련이다. 굳이 시간 내서 읽은 글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지시를 받고 싶지 않다.      


주제가 잘 표현되었는지 어떻게 확인할까? 글 한 편을 완성 후 글의 내용을 담아서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으면 된다. 한 문장 요약이나 제목이 주제이다. 주제가 있는 글은 어떻게 쓰나요? 하고 묻는다면 오감 근육을 길러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성인은 생활인이다. 생활인은 생존, 생계에 필요한 감각 근육이 발달하고 느끼는 근육이 깊은 잠에 빠져있다. 느낄 틈이 없이 분주하고, 지쳐있다. 그래서 멍 때릴 시간도 필요하고, 30분이라도 조용히 카페에 혼자 앉아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가만히 있는 시간이 불편하다면 감각 근육을 사용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정동의 상태일 때 오감 근육이 사방으로 열린다.

    

이를테면 뒷산에 혼자 오르면 걷기 친구와 같이 걸을 때와 다르다. 걷기 친구와 걸으면 수다를 떠느라 뇌를 끊임없이 쓴다. 혼자 걸으면 뇌가 정지하고 오감이 열린다. 평소에는 전혀 안 들리던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나뭇잎의 바스락 거림이 들린다. 햇살의 빛깔이 시시각각 변하는 걸 보게 되고 대기의 습한 정도가 피부로 느껴진다. 일상에서 오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주로 시각이나 청각만 사용해서 감각이 둔해진다.      


글의 주제와 오감이 무슨 관계인가?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느끼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 느낌이 꼭 긍정적이고 좋을 필요는 없다. 불편해도 좋고 싫어도 좋다. 아무 느낌이 없다면 생활인 근육만 쓰고 있는 셈이다. 부정적 감정도 괜찮다. 불편하고 싫은 이유는 주관적이지만, 나의 본질에 다가가는 핵심 감정이다. 이 감정들이 글감을 주제와 연결하도록 도와준다.      


나는 강의에서 다양한 읽기 자료를 제시한다. 다른 사람의 글에서 느낌과 주제를 찾을 수 있으면 주제가 담긴 글을 쓸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아무 느낌이 없다면, 감각 근육을 잃어버렸다는 신호이다. 아무 느낌도 받지 못하면 느낌이 있는 글을 쓸 수 없다. 듣지 못하면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가 말을 배울 때 먼저 듣고 따라 한다. 글쓰기도 똑같다. 먼저 다른 사람의 글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좋은 글이든 안 좋은 글이든 배울 점이 있다.      


주제 의식은 관찰과 감각 훈련에서 기를 수 있다. 내 삶이 너무 평범해서 쓸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 평범함을 특별함으로 바꿀 수 있다면 글을 잘 쓰는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글감과 주제는 없다. 다만 그를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이 있을 뿐이다. 고유한 시선은 감각 근육을 기를 때 나오고 주제와 밀접하게 이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듯이 "설명해야 아는 것은 설명해도 모른다." 글에서 설명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 철학적 이론을 펼치는 것이 아니므로 다른 사람도 다 아는 이야기를 글에서 읽고 싶어 하지 않는다. 좋은 글에는 일상의 사소한 에피소드를 보여주면서 보편성을 은근슬쩍 담겨있다. 보편성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에 닿을지, 글을 통해 이야기한다.      


1. 일상에서 소재를 찾아서 간결하면서도 촌철살인이 있는 글

2. 재밌는 글

3. 만만해 보이는 글     


읽기 자료로 글을 고르는 기준이다. 만만해 보인다고 해서 만만하게 쓴 글이 아니다. 과한 문학적 수사가 많은 글은 피한다. 처음 글 쓰는 이들에게 화려한 문장은 쓸 의지를 꺾기도 하고 자칫하면 잘 쓴 글에 대한 왜곡으로 독이 될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에피소드 잘 쓰는 법에 대해서 쓸 예정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 작가가 될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