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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Mar 11. 2024

울긴 왜 울어요!

지난해 상반기에 동네에서 비혼 여성 걷기 모임을 꾸렸다. 매주 일요일 오후 3시쯤 모여 꼬박 5개월 동안 동네 뒷산이나 한강공원을 걸었다. 두 시간 정도 수다 떨면서 걷고 가끔 저녁 먹고 헤어졌다. <비혼이 체질입니다>를 집필 중이었던 터라 느슨한 연대 가능성을 시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나는 개인주의자라 커뮤니티 운영엔 젬병이다. '우리'란 말로 정서적 유대를 은근히 주입하며 규칙을 내세우는 모임에도 잘 안 나간다. 그래도 생각이 떠오르면 한번 해 보는 편이다. 처음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과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버거워졌다. 새로운 사람이 나오면 한마디라도 건네고, 걷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면 불편하지 않은지 살피니까 어느 순간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부담감을 느끼면서까지 모임을 꾸리는 건 아니란 생각에 몇 개월 쉬고 다시 하려고 했다. 근데 현생이 바쁜 것도 있고 귀찮은 것도 있는 터라 내리쉬었다.


휴지기가 될지 영영 끝나게 될지 모를 방치 상태 중에 신입 회원 두세 명이 가입했다. 신입 회원 한 명이 모임 한 번 열어달라는 메시지가  단톡방에 울렸다. 무조건 참석하겠다고. 몸이 불편한 상태여서 걷기는 힘들지만 원고 수정도 마감한 터라 내친김에 일요일 저녁에  커피 번개를 했다. 동네 사람들이니 갈레트가 시그니처인 동네 베이커리에 모였다. 뉴페이스 3명, 구페이스 2명, 나, 모두 6명.


뉴페이스 1,2-동네에 이런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찾아봤는데 정말 있더라구요. 너무 반가워요.


뉴페이스 1-하다못해 테이블을 옮기는데 혼자 못 옮기겠는 거 있죠. 도움을 요청할 만한 사람이 있어야죠. 가까이 있는 사람이 좋은데. 이제라도 알게 돼서 너무 좋아요.


뉴페이스 2-회사에서 단체 프로필 촬영이 있던 날, 풀메이크업하고 원피스를 차려입었어요. 퇴근하고 집에 와서 원피스를 벗으려는데 지퍼에 손이 안 닿는 거예요. 혼자 별짓을 다해 봤어요. 벽에 등을 대고 몸을 움직여도 보고. 새벽 두 시까지 생난리치다가 도저히 안 되겠기에 결국 가위로 원피스를 찢고 탈출했어요. 그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진작 이런 모임이 있는 걸 알았더라면!


구페이스1-팔이 유연해지게 요가를 하세요. 그러면 혼자 원피스 지퍼 올리고 내리는데 문제없어요. (공감력 제로 1)

나-울긴 왜 울어요. 다음에 더 좋은 옷 사면 되죠. (공감력 제로 2)

뉴페이스 2-아, 그 생각은 못 했어요ㅋㅋ


혼자 생각에 갇히면 크게 보여서 슬픈 일이 있다. 그런데 입 밖으로 말하는 순간, 별일 아닌 것처럼 보여 유쾌하게 웃어젖힐 수도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날 이유이다.  


혼자력에 익숙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 청하기보다 옷을 또 찢을 것이다. 내가 그러니까. 다른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지난해 참석율이 좋던 친구가 안 나와서 연락했더니 깁스 신세여서 당분간 못 나온다고 했다. 불편한 몸으로 혼자 밥 해 먹고 지하철 타고 출근하면 물리적으로도 힘들겠지만, 마음도 힘들 거 같았다.

'퇴근 길 라이드 서비스 1회 쿠폰 발행하니 언제든 이용하세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물론 이 친구는 이용하지 않았다. 대신에 쿠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 마음이 훈훈해졌다고 말했다. 나는 말로 생색만 낸 사람이 되었다.


SOS를 보내면 달려와줄 누군가가 동네에 숨 쉬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유사시에 보험 든 것 같았으면 좋겠다. 보험은 가입해 두고 안 쓸수록 좋다. 사건 사고 없는 일상이니. 아무것도 안 해도 어디선가 달려갈 홍반장 같은 동지의 희미한 존재 자체로 든든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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