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알 Sep 18. 2024

순수의 절정을 통과 중인 청춘

영화 <남색대문> 리뷰

한국에 <벌새>가 있다면 대만에는 <남색대문>이 있다. 이번 여름이 혹독한 탓에 35도가 넘는 습한 동남아를 가려는 욕구가 급격히 내려갔다. 나는 원래 더위에 취약하지만, 올해처럼 취약한 적은 처음이다. 더위 때문에 외출 자체를 꺼린다고나 할까. 


겨울에 영하 40도쯤 되는 캐나다의 작은 도시에 사는 친구가, 실제로 겨울이 추운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지하 주차장에서 지하주차장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추위에 대한 감각이 없다고. 인간의 인내심을 넘어서는 날씨는 오히려 계절에 대한 감각을 깔끔하게 제거한다. 올해 나의 여름이 그랬다. 적절한 온도로 냉방이 된 실내에서 생활하고 주로 차로 이동했다. 땀을 흘릴 때는 개인적 약속으로 대중교통을 타러 가는 사이 시간뿐이었다.  내가 더위를 버티는 법인데 재미가 없다.


계절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여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대만의 여름은 올해 우리 모두가 겪은 여름보다 더 찐득거린다. 아무리 가벼운 옷감도 몸에 철썩 감겨서 불쾌지수를 높인다. 그런데 그 더위와 습함이 영화 속에 너무 아름답게 녹아있다. 풋풋해서 볼수록 어여쁜 계륜미가 자전거에서 내린 후 철퍼덕 앉아서 통이 넓은 8부 바지를 펄럭거리며 바람을 만들거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보인다. 땀에 살짝 젖은 것처럼 보이는 머리칼 등. 열기와 함께 습기가 고스란히 화면 밖으로 전해지는 여름을 겪는 십 대들이 여름을 지나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별로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이는 뿌리 깊고 오래된 기독교적 전제이다. 미국에 사는 친구가 고등학생인 딸의 학교생활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얘네 학교에서는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아.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는지, 여자를 좋아하는지를  탐색하는 분위기야. 어떤 판단을 내리기 전에 성 정체성의 가능성을 열어 둬."라고 말했다. 


이런 진보적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듣고, 나도 놀랐다. 더불어 아, 나도 기독교적 대전제에 길들어 있는 사람인 걸 깨달았다. 이렇게 관습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세계관에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학교든 직장이든 인간관계를 빼면 재미없다. 이 영화의 조연은 여름의 열기지만, 주연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십 대들이다.  장시하오(진백림)를 좋아하는 린위에전, 린위에전을 좋아하는 멍커로우(계륜미), 멍커로우를 좋아하는 장시하오. 


어긋난 사랑의 삼각형이 만들어낸 감정의 역학을, 우리도 잘 안다. 린위에전과 멍커로우는 동성이다. 린위에전이 장시하오를 짝사랑하고, 멍커로우는 린위에전을 좋아해서 그녀가 원하는 것은 뭐든 다 해주고 싶다. 그래서 장시하오에게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장시하오는 멍커로우에게 관심이 있다. 


십 대든 어른이든 친밀감의 원리는 똑같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는 속마음, 비밀 등을 털어놓을 때이다. 멍커로우는 자신을 뒤쫓아 다니는 장시하오에게 여자를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장시하오는 오줌이 한 줄기로 안 나오고 샤워기처럼 퍼져서 나온다고 고백하고. 고백의 무게는 다르지만, 두 사람은 이제 두 사람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그것이 사랑이든 우정이든 서로에게만 존재하는 세계가 있는 한 멍커로우는 덜 외로울 것이다. 


반면에 린위에전은 장시하오에게 사귀자고 말했다가 까이며 펜의 잉크가 끝까지 닳을 때까지 상대의 이름을 쓰면 상대와 사귀게 된다는 믿음을 버린다. 각자만의 방식으로 관계가 쉽지 않은 것을 배운다. 멍커로우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할 수 없고, 실연만 반복할지도 모르는 미래를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어느 날 밤에 엄마 침대로 와서 옆에 누워 엄마에게 묻는다. "아빠가 떠났을 때 엄마는 어떻게 버텼어?" 엄마는 잠결에 말한다. "몰라. 그냥 버텼어." 


멍커로우만이 아니라 장시하오도 린위에전도 그냥 버틸 것이다. 원래 감정이 절정에 도달하면 다른 게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격정적 감정은 신기하게 시간과 함께 잦아들고, 휘몰아쳤던 폭풍처럼 힘을 잃는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그냥 버티는 수밖에는 없다. 아무리 덥고 습해서 외출까지 자제시키는 여름도 계속되지 않듯이.


 대신 그 흔적이 남아서 앞으로 관계를 맺을 때 지혜도 주고, 계산기도 두드리도록 도와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상태가 되면 성숙해졌다고 말한다. 다르게 말하면 순수함을 잃어버린다.


세 사람은 순수의 절정을 통과하고 있다. 부러웠다. 나도 그 시기를 건너왔을 텐데 막상 순수의 절정에 있을 때는 몰랐고, 이제는 다시는 그 순수로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멀리 왔다. 할 수 있는 일은 더운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뜨거웠던 여름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사람이 작가라고 생각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