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걷는 길이 어떠하든, 주저하지 않는 것.
'슬로시티 전주에 대해 고찰하다'
전주 한옥마을은 코로나를 3년 동안 견디고 난 뒤에는 조금 달라졌다. 이전에는 주말에 '전주'가 아닌 것처럼 사람들이 그득그득하여서, 사람 찍는 재미로 카메라를 들고 나섰었다. 코로나로 인해 다들 얼굴에 흰 마스크가 씌여지고 그들의 표정을 읽기 힘들어진 후로 한동안 발걸음을 멀리하였던 한옥마을을 사진 동호회 활동과 겸사겸사 해서 오랜만에 다시 카메라를 들고 거닐었다.
드문드문 시선이 닿는 곳마다 닫혀있는 상가들과, 확연히 줄어든 인파는 3년의 시간이 꽤나 고통스럽게 할퀴고 지나갔겠구나 알 수 있는 듯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이전의 한옥마을이 아닌 15년 전의 한옥마을을 더 좋아했다. 슬로시티라고 전주시에서 스스로 브랜딩 할 만큼 모든 것이 느릿느릿하고 경박 단소한 전주의 도심 가운데 유독 더 느린 곳이 한옥마을이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사실 꽤나 그리운 마음으로 주변을 배회하였음을 고백한다. 구석구석 골목마다 쌓여있는 그늘과 색 바랜 햇빛이 기와를 흐릿하게 비추는 그 풍경이 오랜만이라서, 정처 없이 골목을 휘젓고 담벼락 너머를 훔쳐보았다.
외부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전주의 모습들, '슬로시티'한 전주는 어떠한 곳인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하면 알지 못할 그 장면들이 유독 많이 펼쳐져 있었고 나는 자주 발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전라북도 도청 소재지인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전주는 아직도 느릿느릿,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중이다. 잠시 빠르게 흐른듯한 시기가 있었지만, 포스트 코로나를 지나며 다시금 이전으로 회귀하는 도시. 건물은 올라가고 도로는 복잡해지고 혁신도시며 에코시티며 낯선 지명들이 생겨났음에도 불구하고, 전주는 아직도 15년 전의 사진을 처음으로 시작하면서 내디뎠던 장소들의 내 머릿속 추억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천변을 거닐고, 다리 밑에서 벤치에 누워 잠을 자거나 모여 모여 막걸리를 마시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사람들이 있는 거리마다 빈 거리가 더 많은 이곳,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촬영지로 왜 선정되었는지 알 것만 같은 이 도시.
이렇다 할 산업이 없고, 조금은 욕심내며 살아가기엔 부족한 인프라로 인해 마지못해 청년들이 떠나가는 도시이자, 점차 노쇠해져 가는 시간의 흔적이 가득한 도시 가운데에 아직도 나는 이곳을 둥지 삼아 사람들과 어울리고 주변을 둘러보는 관찰자로 남아있다.
느림의 미학은 주변의 모든 것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갈 때 더욱 돋보이는 문장이지만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이곳에서 느림이란 그저 같은 속도로 흘러가는 강 위의 뗏목들과 같을 뿐. 그래서 이곳 저것 뗏목 사이를 건너면서 그 뗏목의 주인공들을 관찰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곱씹으며 걸었고, 내디뎠다.
그러다가 문득,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오랜 습관과 타성으로, 적절한 피사체를 발견하면 늘상 그랬듯 카메라를 겨냥하였는데 그게 본의 아니게 녀석의 길을 막게 된 꼴이 되었다. 녀석은 잠시 주춤거리다가 눈치를 살피더니 풀숲을 통해 자신의 길을 다시 걸어 나갔다.
그 모습이 마치, 목적만 확실하다면 걷는 길이 풀숲이든 어디든 어떠하리, 중요한 건 주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여 잠시 그 걸음의 흔적을 눈으로 좇았다. 주저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건 계속 걷는 것이기에 앞으로는 좀 더 걸어볼 예정이다.
걷다 보면, 내가 찾는 무언가가 나타나겠지. 걷지 않으면 아무도, 아무것도 다가오지 않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