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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희 Feb 01. 2023

제주탐사, 날씨요정의 횡포, 결항 또는 연착?

제주로 도달하는 길은 어려움이 그득하다.

제주기행의 첫 프로젝트를 떠나는 1월 28일, 전국적으로 매서운 한파가 지속되고 있었고 광주 공항으로 떠나는 길에 눈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하였다. 


'오빠 제주도 가나유? 눈 많이 오던데..'

'맞아, 내 운이 뭐 그렇지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광주로 향하는 길목에 마주한 첫 번째 고난

시시껄렁한 대화로 제주행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염려를 지워버리면서도 내심 마음 한편에 불안한 마음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눈은 이제 거센 수준을 넘어 시야를 가득 채워 범람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결항이라는 문자가 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우리의 행로는 광주공항을 향해 점점 나아간다. 이제 광주로 출발한 이상 돌이킬 방법은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어봐야 결과를 볼 수 있는 법이니 첫 번째 우리의 제주기행이 광주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그림으로 마무리가 되더라도 나아가야 한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광주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따라오던 눈은 어느덧 몸짓을 키워서 이제는 묵직한 눈송이를 뿌리기 시작하였고 결항의 불안감은 점점 실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광주에서 맞이한 참을 수 없는 존재, 아니 눈송이의 가벼움.. 아니 무거움


'인생에서 성공하는 비결 중 하나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힘내 싸우는 것이다'라는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말했고 금강산도 뱃속이 든든해야 눈에 들어오는 법이며, 전쟁에도 보급이 가장 중요한 법. 마침 비행기 시간도 적당히 여유가 있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명분이 지나치게 많아서(혹은 그렇게 만들어서) 제빵 명인이 있다는 카페 클레망으로 향했다. 



몽블랑이란 빵을 처음 먹어본 나로서는 비교할 대체제가 없기에  '맛있군!' 이런 표현, 또는 제빵 명인이 만들어서 그런가 '맛있군!'이라는 수준의 평가 외에는 이렇다 할 표현이 떠오르지 않기에 복잡 미묘한 심정으로 빵을 포크와 나이프로 썰어 씹어 먹으며 최소한의 문명인인척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은'이 몽블랑에 대한 설명을 해주기에 '수'와 함께 착실한 학생이 되어 지식을 흡수한다. 여행을 다니며 지식도 학습하고 이 얼마나 건설적인 프로젝트인가! 


참, '수'는 평소에도 종종 만나서 어울리는 지인으로 앞으로의 여행을 같이하게 될지는 아직 미정이지만, 그래도 여행의 맛을 함께 보기 위해 이번 차수에 이번에 탐사대원으로 합류하였다. 


'은'은 음식에 관련해서는 내 기준에서는 정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덕분에 다양한 음식을 접하는 중이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마라탕을 홀린 듯 따라가서 먹었을 때에 내가 했던 고백은 '저 마라탕 좋아했네요' 였던 것처럼 실패가 없는 다양한 음식들로 내 음식 취향의 다양화에 많은 일조를 해주고 있기에 언제나 배움의 자세로 열심히 받아들이는 중이다. 


빵을 십자로 자른 다음에 안에 크림을 채워 넣은 형태로 만들어진 몽블랑에 대한 설명과 유래를 들으며 먹는 방법까지 알려주는 '은'의 해박함에 또다시 감탄을 하고, 지식은 없어도 빵돌이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뜯어먹다 보니 비행기의 출발시간에 다가와져서, 짐을 챙겨서 나왔다.




여행에는 루틴이 필요하다. 매번 여행을 떠날 때마다 나만의 루틴을 만들고 지키고 다녔다. 터미널에 가서 아무 표나 끊어서 여행을 다니고 돌아오는 길에는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버스에서 폭풍 수면을 해왔던 것처럼. 우리 프로젝트에는 좀 더 다른 루틴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잠시 방향을 돌려서 '로또'를 한 장씩 구입하기로 했다.


'되면 좋은 거지만, 안 돼도 잠시동안의 즐거움이란 요소를 더하는 거 좋은 생각이잖아요?'


떠나는 과정 자체가 행복한 일이지만 그 가운데 또 다른 즐거움을 하나씩 만들어보는 것도 참 재미있을 것 같고 만약 당첨만 되면 우리 프로젝트의 결이 달라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기에, 또 미디어를 들여다보다 보면 가끔 이렇게 특수한 상황에서 당첨되는 이야기들이 (회식자리에서 팀장님이 한 장씩 사서 돌린 로또가 당첨이 된다거나, 친구끼리 반씩 나누자고 구입한 로또가 된다든지 하는 이야기라든지) 종종 들려오기도 하기에 살짝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구입을 했다.  어차피 독립시행인데 될 수도 있지! 

'이 로또가 당첨이 되는 순간, 우리는 전주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서울로 가는 겁니다. 돌아올 때 자동차 하나씩 뽑아서 오는 거예요! 아니, 서울로 가서 이제 다른 국가로 여행을 떠날 거예요. 제주도 가기 위해서 다들 여권은 챙겨 왔죠?'


모두에게 희망에 주입하고나서, 그래도 좀 더 욕심을 내어 같은 번호로 5개를 적어서 3장을 구입했다. (너무 욕심을 부린것일지도) 


'우리 이 복권은 제주도에 도착해서 숙소에 가서 확인해 보는 거예요! 그때까지는 몰래 확인하기 없기, 그리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제가 없으면 알죠? 셋이 갔다가 하나만 돌아올지도 모르겠군요!'


김칫국을 마시면서 로또를 사고, 근처에 '계란밥'이라는 상호명의 독특한 음식이 있어서, 흥미를 충족시키고자, 또 간단한 저녁을 해결하기 위한 명분으로 (빵은 주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시장에 들러 요깃거리를 구입하고 나니 어느덧 비행기의 출발시간이 간당간당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여정에는 이렇게 충동적인 선택과 선택에 따른 결과들이 자주 벌어지는데, 극단적인 P를 가진 세 사람이 모여있기 때문일지도.


이러한 기질로 인해서 재미있는 사건들이 벌어지게 되는데 그러한 이야기는 차차 풀어내도록 하자. 바퀴에 불이 나게 공항으로 가는 길이었지만, 네이버 내비게이션이 우리를 방해라도 하듯이 길 안내를 잘못해 줬고 (우리가 잘못 본건 아니다. 셋 다 잘못 볼 일은 없기 때문에) 점점 더 쫄깃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비행기를 놓치는 게 가장 좋을 거 같은데 말이죠'

모두의 불안감을 해소시키기 위해 더 큰 불을 끼얹는 전략은 실패로 돌아갔고 흩날리는 눈을 뚫고 우리는 어두운 광주 도심을 질주했다. (그 시간에 저희를 보신 분이 있다면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행히도, 기다렸던(?) 결항 소식대신에 지연의 소식이 들려왔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공항에 도착했다. 준비했던 계란밥을 공항에서 몰래 숨어서 먹으면서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한 번의 지연은 두 번의 지연이 되고, 우리가 예상했던 도착시간은 점점 멀어져 갔다. 이러다 새벽에 출발하는 게 아닐까 라는 고민을 하면서 마냥 비행기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을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스마트폰에 ott영상을 저장하기 시작하고, 누군가는 공항에 전시된 그림들을 감상하고, 다른 이는 인스타그램 릴스를 보면서 재미있는 릴스들을 DM으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해서 꼭 같은 활동을 해야만 하는 건 아니기에 우리는 각자가 좋아하는 것들을 즐기며 그 자체를 즐기는 중이었고, 탐사대원은 방랑자의 냄새를 조금씩 풍기기 시작한다.



7시 50분 비행기는 몇 차례의 지연 이후 8시 반쯤에나 출발할 수 있었고 우리는 예상시간보다 40분 정도가 늦은 9시 반쯤 제주공항에 도착하게 되었다. 거센 바람이 공항의 야자수를 흔들어대며 제주의 늦은 방문객들을 위협하는 시각. 제주도의 렌트카는 오후 8시가 지나면 대부분 영업을 종료하기 때문에 여행 첫날의 렌트는 포기하고 택시를 타기로 했었고, 그래서 우리는 방문자들이 길게 늘어선 택시 승강장 대기라인에 줄을 서서 각자의 생각에 잠겨 깊은 밤이 내린 제주의 밤을 흘려보내며 차례를 기다렸다.


'골든파크호텔로 가주세요 기사님!'

'경기장 옆에 있는 곳 말이죠?'

'어, 네 맞는 거 같아요!'


스마트폰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갈 방향을 찾고, 버스 정보를 확인하던 것이 익숙한 이 시대에 제주시에 있는 수많은 숙박업체 중에 한 곳인 숙소를 듣자마자 바로 방향을 정해 출발하는 기사님의 모습에서, 최근 택시에 탔을 때 위치를 말해도 잘 모르시기에 지도앱을 켜서 보여줘야 했었던 기억이 떠올라 조금은 생경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우리는 '사소하지만 중요했던 것'들을 '빠름'과 '편리함'으로 맞바꾼 것은 아닐까. 

길을 잘 몰라도 누구나 길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에 경험과 관록이 묻어나는 기사님의 모습은 오랜 시간 한 분야에서 자기의 자리를 지켜온 한 시대의 전문가였다. 프로그래머로써 살아가며 기술의 진보와 특이점이라 불리는 기술의 탄생을 바라보고,  '빠름'과 '편리함'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한 사람으로서 느꼈던 감정과 편리함의 시대에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의 감정이 마음을 간질이는 것을 느끼며 숙소에 도착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마워요.'





'동문시장 갈 거죠? 그렇다면 짐만 풀어놓고 도망쳐 나와야 해요. 신발 벗으면 못 나오니까!'

'긴장 늦추지 말고 한 명만 들어가서 짐 던져놓고 나와요!'


우리의 제주탐사대의 제주의 밤은, 이렇게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관련글 목록

'근'의 시선

https://brunch.co.kr/@guh9876/113  1화, 제주 탐사대를 꾸미다.

https://brunch.co.kr/@guh9876/114  2화, 제주탐사대에겐 아지트가 필요하다.


'은'의 시선

https://brunch.co.kr/@795470f597b2478/1 1화, 혼저옵서예

https://brunch.co.kr/@795470f597b2478/4 2화, 제주 행 비행기 탑승은 2Gate 입니다.



제주여행이 기록될 사진공간.

https://www.instagram.com/talkwithpentax/   '근'의 시선  

https://www.instagram.com/mome_morable/  '은'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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