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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짱 Mar 21. 2022

001. 컨펌


프리로 일하겠다고 결정하고 감사하게도 금방 일을 받았다.

1월 3일을 개업일로 정했는데, 1월 초에 연락이 여러 건 와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진짜 몇 달 동안 일이 없어서 망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루에 몇 번씩 했다.

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결정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결심을 하는 과정에서 통장의 잔고와 일을 할 경우 내가 벌 수 있는 돈, 월세, 고정비가 늘어날 경우 어떤 식으로 자금을 운용해야 하는지 등 가능성을 따져보고 대략적인 계획을 세우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 과정이야말로 오롯이 혼자인 시간이었다.

내 고민을 모두 다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없을 뿐더러, 말한다고 해도 나 대신 결정을 내려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프리로 일하면서(혼자 일하면서) 나의 입장은 아주 많이 바뀌었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주로 결정하고 일을 의뢰하는 쪽이었다면, 이제는 일을 받아 컨펌을 받는 입장이 되었다.

예전에 스튜디오 촬영장에서 사진가, 스타일리스트 쌤과 수다를 떨다가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두 분이 새로 일하게된 클라이언트의 작업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문득 말을 던졌다.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고 하면 되잖아요. 그렇게는 못한다고 하세요!"

그때 스타일리스트 선생님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과장님은 그렇게 말할 수 있죠. 우리는 못해요."

덧붙인 설명으로는 속된 말로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사람은 할 수 있는 말도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사람은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권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앞서 갑을 관계에서 오는 불평등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둘 중에 뭐가 더 적성에 맞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회사에 다닐 때는 전자가 아주 적성에 딱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 상황이 되고보니 후자도 나쁘지 않다.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고 그만큼 책임질 일도 줄었다.

사무실은 혼자 운영하기 때문에 스스로 주도적으로 일하지만 결정은 하지 않는 자리라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의외로, 긴장이 많이 피어났다.

기분 나쁘고 도망치고 싶은 긴장이 아니라, 사회 초년생 때 느꼈던 것 같은 무지와 기대에서 오는 긴장이랄까.

그리고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것도 무척 오랜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회사를 다닐 때도 컨펌받고, 검사받고, 평가받기는 했는데 아주 다른 느낌이다.

팀장님한테 내가 결정한 것을 보고하는 것과

의뢰 받은 일을 '이게 맞나요?' 하고 제출하는 것의 차이일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작업물을 전송하고 나서 '혹시 이게 영 아니라고 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들고

조마조마하다.

이게 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들이라서 새롭고 재밌다.

그리고 안심된다.

늘 혼자 일하고 혼자 책임지다가 지시를 받고 시키는 일만 하니까.

언제 실증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즐거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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