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시작하는 부분에서부터 난 울었다. 살면서 이런 영화는 처음이었다. 사실 오프닝부터 강력하게 압도당했다. 현악기의 선율, 그리고 에이미 아담스의 차분한 나레이션. 담담하게 딸의 시작과 죽음을 말하는 그 3~5분 가량의 짧은 오프닝에서, 나는 훌쩍거렸다. 왜이러지, 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영화에 빨려들어갔다.
오프닝의 예를 들긴 했지만, 사실 이 영화는 '영화를 통해 할 수 있는 인상적인 경험'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아주 탁월한 성과물이다. 우리가 영화를 통해서 무언가를 간접경험하고자 한다면, 이 영화의 공식을 따라야 한다. 이미 언급했던 오프닝도 그렇고, 외계생명체를 맞딱뜨리면서 겪게되는 당혹감도 그렇다. 그 와중에 우리가 지금껏 배워왔던 과학과 상식은, 사실 어떤 계기에 맞딱뜨리면, 아무렇지도 않게 무너져버릴 수 있는 '인간들이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언어학자인 에이미 아담스가 느꼈을 감정보다, 물리학자인 제이미 러너가 느꼈을 당혹감과 허무가 더 와닿는다.
우리는 '인터스텔라'속에서 표현된 경이로운 우주를 '체험'하며 경악했고, 당황했다. 인터스텔라는 놀라운 시각효과들로, 우리 인간들이 머릿 속으로 생각했던 다양한 실험들을 화면으로 구현해낸다. 그 화면은 아주 쉬웠고, 우리는 그렇게 21세기 천체물리학의 세계를 아주 쉽게 눈과 귀로 받아들인다. 사실 그 것만 해도, 난 참 놀라웠었다.
이 영화는 '인터스텔라'에서 한 발 더 나아간 행보를 보여준다. 우리가 언제든지 마주할수도 있는 미지의 존재, 그리고 그들의 언어, 그들이 그들의 언어로 생각하는 방식, 그리고 그 생각을 통한 경험들을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화면으로 구현해낸다. 아주 인상적이었다.
사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전작은 '그을린 사랑'밖에 본 적이 없었고, 그 작품이 너무나도 무시무시해서, 사실 이 감독의 영화는 쉽게 보지 않게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우려를 가지고 이 영화를 보았지만, 그런 우려는 2시간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졌다.
수미쌍관의 방식으로, 처음의 나래이션은 마지막에 다시 한 번 나온다. 그리고 그 때 그 나래이션을 들으면서, 처음 내가 울컥했었던 그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너무나도 많이 듣는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말의 의미를 직접 되새길 수 있다.
결국 그들이 인간을 찾아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그들에게 우리는 왜 두려움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그 두려움의 원천은 우리의 '무지함'이고, 우리의 '무지함'은 폭력을 불러온다. 인간이 만들어 낸 폭력들의 한 가운데에는, 인간의 '지성'보다 '무지함'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다.
극장에서 보지 않았다면 이 모든 감정들은 반감되어 다가왔겠지. 그저 아무 생각없이 예매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나는 2시간 동안 아주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엔딩크래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일어날 수 없었다. 이게 내가 영화를 보는 이유다. 미친 감독 덕분에 놀라운 영화가 만들어졌다. 여운이 참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