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는 불편해했다. 실제로 영화는 보기 힘들었다. 영화 내내 여성으로서 느낄 수 있는 불편한 지점이 가득했다. 어쩌면 나보다 더 감정을 이입했기 때문에 느낄 수 밖에 없었을 부분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불편한 감정을 넘어 왜인지 모를 불안함과 초조함이 느껴졌다. 누구나 힘든 지점이 있을만한 영화다. 이 영화는 우리가 버텨냈던 그 시절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함께 해 준 와이프에게 감사를 드리며.
이상하게 난 중학교 때의 기억이 많지 않다. 성향이 좋은 친구들을 만나 감성적으로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초등학교 때와는 다르게, 중학교는 마치 나에게 있어 무시무시한 어른의 세상이었다. 살던 지역과 전혀 다른, 어떻게 보면 조금은 험해보이는 동네의 중학교로 진학했던 나는, 그 곳에서 마주한 것들이 그저 낯설기만 했다. 날 따뜻하게 품어줬던 초등학교와는 다르게, 중학교라는 공간은 지극히 차갑고 무서웠다. 회색 건물. 어디선가 삥뜯는 양아치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빌라촌 골목. 담배를 피는 불량학생 동년배들. 과도한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랑의 매'로 규정짓는 선생님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아주대학교의 학생운동, 최루탄, 전경. 공용화장실에서 토하고 있던 여고생 누나들. 좋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그 시절에도 난 뛰어놀고 재잘거렸을테지만, 이상하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일까.
성별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의 은희는 그 시절의 나와 닮아 있다. 은희의 주변은 비합리와 편견, 폭력으로 가득하다. 놀랍게도 그건 25년 전 대한민국의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중산층의 모습이다. (강남권에 이미 살고 있었으니 중상위층 정돈 되겠다) 아버지는 식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썅년이라는 말을 내뱉고, 연년생인 오빠는 은희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행사한다. 아버지는 춤바람이 난 주제에 엄마를 때리고, 그러는 와중에 은희와 별 차이가 없는 오빠에겐 집안의 모든 자원이 집중된다. 강남에 살면서 강북으로 학교를 다니는 언니는 집안의 천덕꾸러기고, 공부도 못하고 만화도 그저 그리는 은희는 뭘 하고 싶은지, 뭘 하고 살건지도 잘 모르겠다. 아니 그런 것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 무수한 편견과 폭력에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이다.
은희는 그저 버티어내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한자선생님도 폭력에 맞서라고 하지만, 맞서봤자 돌아오는건 더 큰 폭력뿐이다. 하지만 그런 힘든 시간 속에서 은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버텨낼 버팀목 하나 없는 현실이다. 서로의 눈을 마주치지 않는 가족들. 힘든 순간에 자신을 버리는 친구. 그리고 지난 학기와 마음이 달라진 후배. 이유도 없이 다른 여자친구로 갈아 탄 남자친구. 누구도 은희의 버팀목이 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 한 잔이면 되었다. 마음을 붙들 곳이 없어 벌새처럼 수많은 날개짓을 하며 떠돌아다니다가도, 잠깐 먹을 수 있는 꽃속의 꿀 한 모금이면 되었다. 그저 자기를 진심으로 바라봐주고 차를 따라주는 손길 한 번 뿐이면 충분했다. 마음 둘 곳 없는 은희가 마음을 유일하게 내려놓은 공간이 고작 방과 후 서예학원이라니. 그 안타까움이 재난영화처럼 다가온다.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린 불안함과 초조함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왈칵.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지점에서 울컥하고 울음이 터졌다. 살면서 극장에서 본 영화중에 가장 크게 울었다. 와이프는 의아해했다. 나도 나 스스로가 의아했다. 영화를 끝나고 와이프에게 내가 울었던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려 했지만 설명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유는 영화를 본 지 하루가 지나고, 영화에 쓰여진 별점평들을 보고 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나와 함께 영화를 바라보던 그렇게도 수많은 은희들이 있었다. 그렇게 그 편견과 힘든 시간들을 버텨내고 어른이 된 우리가 있었다. 그렇게 힘든 순간들을 버티고 버텨냈으면서도, 그 기억들을 잃어버리고 사는 우리들이 있다. 이 영화는 그 잊었던 기억의 구간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내가 막 어른의 세계로 진입했던, 그 어두웠던, 그리고 기억이 잘 나지 않던 그 시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 수많았던 은희들은, 우리들은, 무너지는 다리를 피하고, 전쟁의 위협을 피하고, 세상의 편견을 버텨내고, 그렇게 모두 살아남았다. 별점평들을 보면서 또 울컥울컥하는 기분이 든다.
몇 년 전 봤던 보이후드가 생각났다. 은희의 짧은 몇 개월의 시간과, 보이후드의 그 10년이 넘는 궤적은 놀랍게도 닮아있다. 삶의 중요한 질문 따위, 삶의 의미 따위가 중요한게 아니야.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야. 보이후드의 주인공 아버지가 해줬던 이야기가 다시 귓가에 맴돈다. 우린 그저 살아가지만, 그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다.
꿈을 이루거나, 꿈을 견디거나, 성공을 하는 것만이 훌륭한 삶은 아니다. 이효리의 말처럼 '아무나 되'더라도 그저 버티어내는 것만으로도 그 삶은 반짝반짝 빛난다. 영화의 엔딩에서 감독은 우리에게 아마 그걸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감독의 시선에 공감한다. 그래서 난 아마도 엄청 울었던 것 같다. 영화엔, 그 시절, 우리의 모습이 담겨있다. 진심을 담아 추천한다. 그리고, 보이후드를 보고 쓰면서 적었던, 김연수 작가님의 글귀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첨부한다.
'삶이란 그런 것이구나. 그래서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자라는구나.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온 곳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이구나. 울어도 좋고, 서러워해도 좋지만,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해서는 안되는게 삶이로구나.'
-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