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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매일성장통 Mar 04. 2023

당신의 '욱'이 미치는 영향

고등학교 때의 일이었다. 

기억을 잘 하는 편이 아닌데도

그 날의 기억이 또렷히 나는 건 

감정 혹은 상식의 범주에서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었던 것 같다. 


유독 더운 여름 날이었다. 

하교길이었고, 멀리 학교를 다녀야 했던 나는

유일하게 집 근처에 사는 친구와 함께 버스 안에 있었다. 


자리조차 없어서 서서 가야 했고, 좁은 마을 버스 였던 듯 하고, 

버스에 에어컨이 없었는지 시원찮았는지, 

모두가 온 몸으로 더위를 

표현하고 있었다. 


나 역시 땀이 뚝뚝 떨어져 불쾌함이 말이 아니었으며, 

친구 역시 꽤나 더워하고 있었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했다. 

더위에 지친 그 친구는 

시종일관 불평, 짜증, 화를 내고 있었다.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정확치 않았다. 그냥 본인이 못 견디겠는 걸 표현하는 걸지도.. 

그러나 그 옆에 있던 나는 그 불평과 짜증과 화가 왠지 나를 향한 것인양 

조금만 참아보라고,,, 창문을 좀 열어주면 어떻겠냐며 

그 불평과 짜증을 덜어주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어쩔 줄 몰라했다. 


이 장면이 20년도 훨씬 지난 지금도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는건 

그 때 난 왜 그랬을까 라는 후회때문이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똑같이 더웠고, 같은 입장이었고 

내가 그녀의 눈치를 보며 짜증을 덜어주려 애쓸 필요는 없었는데.. 

어쩌면 나를 향한 짜증이나 화가 아니었으니 그냥 같이 짜증을 내거나, 

무시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 짜증과 화가 너무 불편해서 나도 모르게 풀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나보다. 



살아보니, 유독 그런 사람들이 있다. 

불편함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 

더위와 피곤함, 배고픔과 추위, 등 

셀수도 없이 불편한 상황들이 이어지는데.. 

시종일관 이 불편함을 참지 못해.. 표현해야만 하고 불평을 표출해야 하고,, 

누군가를 향해 화를 내야 하고.. 


그런 사람이 그냥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이거나, 

일회적으로 내 앞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그런가보나 하고 넘길 수 있다. 

짜증이 나나보다, 화가 나나보다, 저렇게 살면 힘들겠구나..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내 집에 있는 사람이라면 참 이야기가 다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랑 단둘이 사는 게 아니라 

아직 저런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조차 확립할 수 없는 

너무나 어린 개체들과 함께 하는 사람이라면......

 

그 짜증과 화와 불만이 누군가를 향해있듯 

분명 집안 분위기에 영향을 끼칠 것이고, 


그 집안 분위기가 어린 개체에게 공포감을 주게 될까봐 

그 짜증과 화와 불만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저 깊숙이 삼키고 삼키며 

스스로 발화하다 시커먼 재가 될 시간을 참아내는 것만이 

내가 해야 할 일이 된다. 


시뻘건 불꽃이 얼마나 나의 마음을 태워나가는지 

보이지 않는 시꺼먼 연기들이 얼마나 어린 아이들의 

마음에 쌓여갈지는 


보이지 않기에 알지 못할 것이며, 

증명할 수 없기에 

섣불리 입 밖에 꺼낼 수 조차 없다. 

섣부른 말이 도리어 더 큰 시뻘건 불을 만들어 낼지 모르기 떄문에.. 



엄청 알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왜 그러는지, 변할 수 있는 건지.. 

많은 심리 혹은 육아서를 읽으며 

비슷한 사람들의 유형을 참 많이도 읽었지만.....

 

결론은 그렇다. 

그냥 환경이든 유전이든 

감정주머니가 작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고 

감정 주머니가 금방 채워지기에 금방 불편함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고 

결국 스스로 감정 주머니가 채워진 게 느껴질 때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고 스스로 제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이 방법이라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동기가 필요할 것이고.. 

그렇게 해보라고 하는 말은 어떤 식으로든 더 큰 화만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하기에 

결국 혼자 무언가 깨닫기를, 동기를 만들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아니 그냥 점점 거리를 두며 

그 화염과 연기로부터 내 아이들을 완전히 지켜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왜 이런 날들이 생길때면 

자꾸 고등학교때 나의 모습이 떠오를까? 

내 옆엔 왜 그런 사람들이 있는 건지 나의 운명을 탓하는 걸까.. 

아님 왜 늘 당당하지 못한지 뭘 지키기 위한 건지 내 자신을 탓하고 있는 걸까.. 

아님 지나고 나서 또 이런 나의 모습을 후회하지 않을까 두려워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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