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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라는 시간

프롤로그 : 손흥민의 시간을 기록해 보려 합니다.

by 여행작가 정해경


프롤로그 : 손흥민이라는 시간



미루고 미루었던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어제로 손흥민의 2025년 시즌이 모두 끝났다. 지난 7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는 영국 EPL에서 미국 MLS로 이적했다. 이적 이후 13경기 동안 12골을 몰아넣으며, 이전까지 그를 과소평가하던 영국 언론과 일부 토트넘 팬들조차 그의 활약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프리킥 골 넣고 좋아하는 손흥민(사진 출처: 연합뉴스)


어제, 손흥민이 있는 LAFC와 뮐러가 있는 밴쿠버의 MLS 플레이오프 경기가 있었다. 야구도 아닌데 연장전과 승부차기까지 거의 3시간이 넘는 경기였다. 2-0으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그는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되살리며 2-2 무승부로 경기를 끌어올렸다. 특히 감차로 만들어낸 동점 프리킥 골은 보는 내내 숨이 막힐 정도로 멋졌다. 하지만 연장 혈투 끝 승부차기 1번 키커로 나선 그는 아쉽게 실축했고, 팬으로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럼에도 나는 안다. 그가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고, 더욱 성장한 모습으로 앞으로 나아갈 것을. 그리고 예상대로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그런 마음가짐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손흥민의 경기를 보지 못하는 겨울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다.

2025년 전반기는 EPL에서, 후반기는 MLS에서 활약하며 손흥민 선수에게 너무나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 해였다. 토트넘은 2024-25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17위로 마감했고, 리그 성적은 아쉬웠지만 40년 만에 유로파 리그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8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쿠팡플레이 시리즈 토트넘 vs 뉴캐슬 경기는 토트넘 유니폼을 입은 마지막 경기였다. 그 후 그는 MLS로 이적했고, 첫 경기부터 골을 넣으며 총 13경기 12골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국가대표로서의 기록도 눈부시다. 2025년 10월 10일 브라질전에서 그는 A매치 통산 137경기 출전이라는 기록을 세웠고, 이어진 파라과이전에서는 기념 세리머니까지 진행했다.


이 모든 순간이 단 한 해, 2025년에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운 좋게도 나는 MLS를 제외한 결정적인 순간들에 함께할 수 있었다.

손흥민의 결정적인 시간을 함께한 행운을 누렸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토트넘의 유로파 리그 결승 직관이다.


그때만 해도 단순히 직관에 의미를 두었던 경기는 지금 돌아보면 ‘두고두고 돌아볼 내 인생의 명장면'으로 남았다.


이어진 런던에서의 우승 세리머니, 토트넘 마지막 경기, 국내 이벤트 경기, 그리고 A매치 최다 출전 기념 세리머니까지. 어쩌다 보니 나는 손흥민 축구 역사 기록의 순간들에 함께하게 했다. 모든 순간이 연결되고, 그 흐름 하나하나가 내 삶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건 매우 신기한 경험이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축알못이던 내가, 혼자서 유로파 결승전을 직관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 축알못의 축구여행이었기에 생각지도 못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도 많았다. 심지어는 티켓 사기도 당했다. 빌바오 현지에서는 토사광란으로 이틀 동안 아무것도 못 먹은 상태에서도 하루 2만 보 이상을 걸어 다니기도 했다.

누가 보면 거짓말이라고 했겠지만 손흥민 선수는 나에게도 기적을 선사했다. 이것 말고도 자잘한 걸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처음에는 유로파 결승 이야기를 지금 꺼내는 것이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망설였다. 빌바오에서 돌아온 직후 글을 쓰려했지만, 엄청 무리를 하고 보러 간 유로파 결승전이었기에 돌아와서 후유증이 좀 컸다. 게다가 갑자기 서울에서 제주까지 이사가 겹치면서 건강에 무리가 와서 몇 달간 고생을 한 탓에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이제야 글을 쓰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남겨둬야겠다고 생각한 건 단순한 기록의 차원이 아니다. 팬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손흥민이라는 존재와 함께 흘러온 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또한, 그는 MLS에서 새로운 챕터를 쓰고 있으며, 나 또한 다가올 북중미 월드컵 직관 역시 계획하고 있다. 이 글은 아마 그 시작점이 될 것이다.


이 기록은 단순히 ‘내가 본 손흥민 경기’ 모음이 아니다. 내 마음속에 쌓인 경험과 감정이 흐르는 시간을 담은 글이다. 축알못이지만, 앞으로도 손흥민의 커리어 여정을 팬의 시선에서 기록할 것이다.


어여쁘게 봐주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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