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컵 프로젝트의 기록
작년 9월에서 11월까지 플라스틱 컵 회수 프로젝트에 팀원으로 함께 했다. 처음에는 플라스틱 컵 '재활용' 프로젝트였는데, 몇 번의 논의를 거쳐 당장 재활용을 논하기엔 기술, 시간, 인력 등의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컵을 잘 '회수'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로 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여기서 내가 맡은 역할은 플라스틱 컵을 잘 회수하도록, 사람들이 버리기 쉬운 혹은 관심을 갖고 다가와 손에 있는 플라스틱 컵을 잘 버릴 수 있는 '회수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사실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일회용 컵 혹은 환경에 대한 관심 따위가 아니었다. 프로젝트를 이끄는 선생님과 제대로 한 번 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함께 하자는 제안이 왔을 때 바쁜 시간을 쪼개어 참여했다. 오히려 환경에 대한 관심은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커졌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컵의 수가 257억 개 (2015년 기준)라는 정보를 접하고 그 어마어마한 숫자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사실 이 숫자를 보면서 과연 여기서 수백, 수천 개를 덜 쓰고, 재활용한다고 해서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서두에도 잠시 이야기한 것처럼 원래 프로젝트의 목표는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잘 수거하여 최종적으로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드는 것까지였다. 하지만 여기서 첫 번째 난관에 봉착했다. 플라스틱 컵을 재활용해서 일반 제품과 경쟁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흔히 사용되는 아이디어 (컵을 미니 화분으로 사용한다던지 하는)를 제외하곤 컵 자체를 분해, 재조립 혹은 재생해야 했는데, 플라스틱 컵의 재질이 다양했고, 이것을 쉽게 구분하기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플라스틱 컵을 일률적으로 분해하는 과정 자체가 수개월(프로젝트 예정 기간) 내에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는 판단이 섰다.(실제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재활용 쓰레기통에 버리더라도 대부분 회수하여 매립된다. 거의 99%)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기로 하고, 프로젝트의 목표를 수정했다. 사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배움을 얻었는데, 그 핵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의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단계별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플라스틱 컵의 생산을 줄이거나, 조금 친환경 소재로 유사한 기능을 하는 제품을 개발해야 하고, 이미 사용되는 플라스틱 컵의 사용 자체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미 사용된 플라스틱 컵의 경우 회수하여 재활용 혹은 잘 분해하여 잘 폐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듯 여러 단계에서 각기 다른 접근이 필요한데, 이것 중 어느 하나에만 집중해서도 안되고, 그렇게 해서는 문제를 해결하기도 쉽지 않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했을 때 가장 많이 받은 피드백은 일회용 컵의 사용을 줄이는 방법으로 해당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연간 250억 개가 넘는 플라스틱 컵이 사용되고 있고, 관련 산업과 종사자들이 있는 이상 이걸 한 순간에 0으로 만들 수는 없다. 각 단계별 접근이 필요하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단계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일회용 컵을 잘 회수하는 것만으로는 일회용 컵 사용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이미 사용된 컵을 어떻게 하면 잘 회수할 수 있을까만 떼어놓고 고민할 필요도 있었다.
이러한 배움은 다른 크고 작은 일을 대할 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가. 그게 큰 틀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 도움이 되었다.
방향을 수정하는 일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어 어려운 일이었다면, 실제 회수기를 구상하고 제작하는 과정은 머리와 몸을 모두 혹사시키는 일이었다. 특히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이 잘 가늠되지 않을 때, 그리고 시간에 쫓기며 구상한 것과 달라지는 실제 결과물을 직접 만들어 나가는 것은 퍽 힘든 일이었다. 그저 결과물은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 잡으며, '완성'을 향해 달렸다.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는가?라는 질문에 나의 개인적인 대답은 '그 효과가 미미했을 것 같다'이다. 많은 사람을 만나서 프로젝트 결과물을 보여준 것도 아니었고, 실제 이런 회수기 한두 번 본다고 누군가의 의식이 크게 바뀌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가, 그리고 (아마도) 팀원들도 변화한 점이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답은 너무 쉽게 '그렇다'이다. 프로젝트 목표를 수정하면서 배웠던 점, 여러 이슈가 섞여있는 일을 할 때 할 수 있는 고민, 한 번도 만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제품(? 구조물?)을 만들기 위한 연습과정, 다양한 분야의 여러 사람과 협업하는 연습 등.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부분을 고민할 수 있었고, 그 모든 과정이 배움의 과정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
앞으로도 이런 환경 관련 이슈의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할지는 알 수 없다. 솔직히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환경이 나의 생각을 붙잡는 주 관심사는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어떤 프로젝트가 꾸려지고, 그 작업이 도전이라 느껴진다면 기꺼이 이번과 같이 시간을 쏟아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