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뿐인 삶인데 그렇게 막 다뤄도 되겠어?
지난 주말,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지금 하는 일을 붙잡고 있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도대체 왜 이 시점에 디자인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려 할까?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데 관심이 많았어요부터 시작하는 대답이 이 일을 하는 주변 사람에게서 듣는 가장 흔한(?) 답이다. 가끔 어떤 일을 위해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체로 어릴 때부터 시각적인 것에 대한 흥미가 강했고, 관련 분야의 일을 했던 경우가 많다. 물론 내가 말하는 관련 분야는 그들이 생각하는 관련 분야보다는 폭이 넓은 경우가 많다. 그들의 입장에선 영상, 시각 디자인, 제품 디자인, 건축 디자인, 산업 디자인, 페인팅, 조형, 일러스트 등으로 세분화된 것이 나의 입장에선 '시각적인 것을 주로 다루는 작업'으로 퉁쳐진다.
결국 주말에 들었던 의문의 본질은 나는 그들과는 다른 사람이었는데, 어쩌다 그런 (시각적인 것에 흥미를 갖고 그것을 주로 다루던) 사람처럼 제품을 디자인하고, 그걸 시장에 유통시키려 하는 것일까 였다. 그렇다. 내가 정의하는 나는 시각적인 것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고, 더불어 무엇을 판매하는 것과도 딱히 연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었'다.
특별한 계기를 떠올리긴 쉽지 않았다. 몇 가지 사소한 기억은 있지만, 굳이 지금의 상황을 붙잡게 만들 강한 동기가 되진 못했다. 그러다 우물쭈물 꺼내 든 대답은 그저 큰 결심 없이 시작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렇게 끌고 오고 있으니까, 뭐라도 하나 결과물을 보고 싶어 졌다 였다. 아무리 좋은 이유나 그럴싸한 명분을 붙이려고 해도 그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대답을 보류하고 질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저 머릿속에 넣고 굴린 것일 수도 있고.
다음으로 떠오른 질문은 그럼 왜 나는 이런 질문을 떠올리는 걸까? 였다. 그냥 하면 되는 것을 왜 이유를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비교적 쉬웠다. 일이 잘 안 굴러가니까. 그리고 딱히 잘할 것 같지도 않은 일이(었)고.
그랬다. 나는 처음 디자인 소품을 만들어서 팔아보자 라는 결심을 하기까지 주저함이 꽤 있었다. 수지타산이 맞을 것인가 이런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도무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라는 확신이 너무 강했다. 디자인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나는 불과 2~3년 전까지 감각이 많이 둔하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뱉었다. 내가 느끼기에 난 도무지 감각을 사용하는 업무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미적 감각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는 자기 인식이 나를 주저하게 했다.
내가 굳이 디자인을 하고, 판매까지 해보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 그렇게 정해버리고 스스로를 다그친 건, 답답함에서 오는 약간의 오기와 호기심 때문이었다. 내가 아무리 흥미로운 걸 생각해고, 아무리 신나서 몇 시간을 떠들어도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충분히 이해시키기가 너무 어려웠다. '이런 거 있으면 좋을 것 같지 않아?'로 시작한 대화는 번번이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에서 멈춰 섰다. 직접 그려서 보여주고 싶고, 그냥 딱 눈 앞에다 내놓고 싶었다. 예쁘게는 못해도, 말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렇게. 근데 딱 그 정도만 결심하고 슥삭슥삭 그림을 그리거나 이건 시제품일 뿐이야 정도의 마음으로 접근하니 발전이란 게 없었다. 한 번 더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소비자 눈앞에도 고작 이 모양으로 내놓을 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근데, 이야기를 쓰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그냥 디자인 결과물이 아니라 굳이 디자인 '소품' 이어야 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역시 사소하다고 퉁쳤지만,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그 작은 마음이 결정적이었던 걸까.)
디자인이란 게 정말 나 같은 사람은 배우고, 익혀도 접근도 할 수 없는 것일까? 에 대한 생각도 강했다. 어릴 때 소묘를 즐겨하거나, 중학교 땐 미술 시간에 선생님께 짧은 칭찬도 받아봤던 것 같은데, 나는 희망도 없는 무감각자인 건가 하는 생각이 나를 뒤흔들었다.
지난 2년의 시간은 (제품을 본격적으로 기획하고 만들기 시작한 지 이제 꼬박 2년이 되었다) 그렇게 어설프게 시작되었고, 소소한 즐거움과 큰 좌절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흘러갔다. 중간에 한 몇 달은 모든 제품을 갈아엎고, 모든 작업을 중단하기도 했고, 또 몇 달은 신나게 새로운 작업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또 잠시 주춤하는 시기가 되었다.
친구와 대화하며, 질문을 머릿속에 빙빙 돌려보며, 그렇게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은 내가 지금 셀프 육성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디자인에 처음 손을 댄 시점부터, 제품을 만들고, 출시하고, 판매하고, 제품을 내렸다 리뉴얼하는 이 모든 과정이 그 자체로 학습의 과정이었는데, 나는 그 과정 속의 배움보다 그 과정을 겪어내며 나를 만드는 과정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즉, 각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어떤 지식이나 기술에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말할 순 없다), 내가 전혀 할 수 없다고 믿었던 어떤 것을 익히기 위해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배움의 과정을 찾고, 마음 갖추고, 행동을 바꾸며, 그 변화를 관찰하는 것, 그래서 나란 존재가 어떻게든 그 분야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디자인 소품을 만들어 판다면,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를 달성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나의 주요 목표이자 관심사였다.
그런 관점으로 나를 바라보자 최근의 변화가 조금 더 개연성 있게 다가왔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그게 나에게 맞는 패턴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밤 열 시면 잠자리에 들고,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는 것을 습관으로 만들기도 하고, 그때그때 마음이 내키는 일을 하던 내가 오전 여덟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라는 일정한 업무 시간을 지키려고 하는 등 일련의 시도와 변화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처음부터 나의 관심사가 그랬을 텐데, 당시에는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보단 생소한 디자인을 공부하느라 내가 왜 그것을 붙잡고 씨름하는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공부의 영역이 디자인의 차원을 넘어서 장사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는 지금에야 어렴풋이 내가 원래 관심을 가졌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내가 지금 장사에 대해 하고 있는 다양한 고민과 이를 풀어가는 과정은 '나'라는 장사라곤 1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직접 만든 물건(혹은 외부에서 소싱한 물건)을 팔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인가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인 듯하다.
그간 나 자신에 관심이 많고(스스로도 인지하고, 주변에서도 매우 공감한다) 늘 스스로에게 되물어 왔기에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번 새삼 내가 나를 참 모르고 지내왔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거기에 더해 지금의 나의 생각이 예전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나를 규정짓는 잣대가 되어선 안 되겠구나란 생각도 하고.
앞으로는 조금 더 면밀히 내가 디자인을 그리고 제품 판매를 접하고 익히는 과정에서 했던 시도와 실패, 깨달음과 편견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기록해보려 한다. 그 과정에서 되돌아보며 새롭게 깨닫고 배우는 것이 있길 바란다. 설령 배우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우선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질문을 들고 놀다 보면 또 새로운 관점이 보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