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_ 혼자 여행 중에도 더 좋은 혼자만의 시간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성산에서 유명하다는 고기국수집으로 향했다. 번호표를 받아 들고 밖에 앉아 있다가 들어가 보니 테이블이 일곱 개 남짓되는 작은 식당이다. 혼자 오는 손님은 별로 안 반가울 법도 하건만 아주머니께서 친절히 반기며 자리를 내주신다. 뽀오-얀 국물에 노르스름한 면발과 두툼한 돔베고기 여러 점_ 말이 필요 없었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국수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담백하고 깔끔했다. 그 와중에 돔베고기는 두툼하고 양도 많다. 이 가격에 이렇게 퍼주면 남는 게 있나 싶을 정도로.
혼자 여행 3일 차에 나도 모르는 사이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던 Alone의 연관검색어 감정들이 국수 한 그릇에 씻겨나간다. 좋은 음식에는, 그 좋은 음식을 만들어내는 마음에는 사람을 위로하는 힘이 있다. 눈물이 핑- 돌 것만 같았던 감동적인 고기국수 한 그릇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김영갑 갤러리로 향했다. 지난번 여행 때 가봤던 곳이긴 하지만, 숙소로 그냥 들어갈까 고민도 했지만, 발길 가는 대로 버스에 올라탔다.
갤러리에서는 1980년대 중후반, 내가 태어났을 무렵의 제주 중산간 풍경을 담은 흑백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되돌릴 수 없는 지나간 시간속의 풍경들이 사진으로나마 30여 년 후의 나에게 전해질 수 있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작가의 일생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그 공간에서 이제는 세상에 없는 그가 직접 인화한 흑백 사진들을 감상하며 생각했다.
30년 전 아무도 찾지 않던 그 시절 온전했던 제주 중산간이 여기저기 파헤쳐져 신음하는 모습을 아마 그는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 변화를 막지 못한 신이 그를 조금 더 일찍 데려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사진은 지금 여기에 남아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지만 생의 시간 동안 무엇을 남겼느냐에 따라 죽음 이후의 시간도 얼마든지 의미 있을 수 있다. 물론, 남겨진 사람들에 의해서.
사진들을 둘러보고 뒤뜰로 나가보니 무인카페가 지난번보다 정돈된 모습이다. 차를 한 잔 타 와서 카페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이따금 사람들이 오가긴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정말 '무인카페'였다. 일주일 간의 제주 여행 중 손꼽히게 좋은 시간이었다. 그저 음악을 들으면서 창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그 시간이.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김영갑 갤러리로 걸어가는 그 한적한 길이 좋다. 갤러리 앞 버스정류장에서 자주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그 시간도 좋았다. 아마도 나는 그 기억을 안고 다음 제주 여행 때도 김영갑 갤러리를 다시 찾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