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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ums Dec 22. 2022

띄어 쓰지 않아도 좋아

UX 라이팅에서 무엇을... 아니, 왜 띄어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

목적이 분명한 글쓰기를 전략적 글쓰기라고 부릅니다. 전략적 글쓰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에 의해 나름대로 목적 달성의 법칙을 확립했습니다. 예를 들어 광고 문구는 짧고 간결하며 숫자를 활용하는 게 좋고, 자기소개서는 두괄식이 좋으며, 콜 투 액션은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위를 쓰는 게 좋다는 것처럼요. 이러한 법칙은 꽤나 견고하지만 의외로 목적 달성을 위해 유연하게 적용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전통적이고 객관적인 글쓰기 규칙임에도 불구하고요. 단적인 예가 바로 띄어쓰기입니다.


우리는 띄어쓰기를 맞춤법보다 훨씬 관대하게 받아들입니다. 때때로 띄어쓰기가 틀렸더라도 글쓴이의 실수라고 인지하는 경우가 적고 오히려 띄어쓰기 규칙에 맞게 적으면 더 어색하게 느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띄어쓰기를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띄어쓰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글쓰기의 목적에 더 가까이 다가갈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띄어쓰기에 약간의 주관을 더하되, 여기에는 분명한 근거와 기준이 있어야만 합니다.


뱅크샐러드 - 네 글자 제한에서 느껴지는 고뇌...


띄어쓰기는 때때로 묘하게 다른 의미의 차이를 만듭니다. 그래서 읽는 사람이 오해할 여지를 줄이기 위해 띄어 쓰거나 붙여 쓸 수 있습니다. 또한 띄어쓰기는 필연적으로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므로 시각적인 차이를 만듭니다. 좁은 공간에서 의도적으로 붙여 쓸 수도 있고, 띄어 쓴 모양이 예쁘지 않아서 붙여 쓸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고요. 마지막으로 띄어쓰기는 읽는 리듬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우리는 특정 문구를 한 호흡에 읽도록 만들 수도 있고, 잠시 멈추고 생각하게끔 만들 수도 있습니다.


결국 띄어쓰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위 세 가지에 대해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판단하고 근거를 확보하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판단의 기준은 글쓰기의 목적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요. 저의 경우 띄어쓰기를 가장 고민할 때는 서비스의 사용성을 높이기 위한 글쓰기, UX 라이팅을 할 때입니다. 글쓰기가 모두 어렵지만 특히 UX 라이팅의 경우 매우 제한적인 영역 안에서 간결하게 쓰되 동시에 사용자 경험이나 페르소나 등 많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고민이 묻어나는 몇 가지 사례를 금융 관련 앱에서 찾아봤습니다.


카카오뱅크 - 대출, 대출, 대출...


카카오뱅크는 '대출'이란 단어의 띄어쓰기를 다양하게 적용했습니다. 언뜻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예컨대 비상금대출은 붙여서 썼습니다. 사용자가 이를 하나의 독립적인 대출상품, 즉 카카오뱅크에서 제공하는 대출상품의 이름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신용대출, 중신용대출, 주택담보대출 등을 붙여서 쓴 것과 같습니다. 만약 비상금 대출이라고 띄어 썼다면 사용자는 이를 '비상금'이란 개념과 '대출'이란 개념의 연결로 받아들이고, 비상금 목적의 대출을 돕는 다양한 상품의 소개를 기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이너스 통장대출 역시 마이너스통장 대출로 작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이너스통장'은 이미 존재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엄밀히 따지면 '마이너스' + '통장대출'은 의미가 다르게 해석될 여지도 있고요. 아마도 카카오뱅크는 마이너스 통장대출의 4글자 + 4글자 구조가 안정적이기 때문에 선택한 것 같지만, 아래에 이미 전월세보증금 대출이 있으므로 같은 구조인 마이너스통장 대출로 쓰면 일관성도 높이고 의미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아가 마이너스통장 조회마이너스통장 개설과 같이 관련 기능이 추가될 것을 대비한 확장성도 얻을 수 있습니다.


토스 - 대출부터 매출까지


토스는 '대출'과 '이자'를 띄어서 대출 이자 계산기로 적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아래에는 '대출'과 '한도'를 붙여서 아파트 대출한도 계산기로 붙여 썼습니다. 사실 여기에는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합니다. 아파트대출 한도계산기로 다르게 띄어 쓸 수도 있고 아파트 대출 한도 계산기로 전부 띄어 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출한도'를 붙여 쓴 덕분에 읽는 사람은 '대출한도'라는 익숙하고도 가장 중요한 개념을 한 호흡으로 읽고 즉시 인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마찬가지로 대출 이자 계산기 역시 대출이자 계산기라고 붙여 쓴다면 위에서 말한 효과에 더해 일관성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다른 예를 하나 보겠습니다. 배달 매출 늘리기는 '배달'과 '매출'을 띄어 썼지만 숨은 카드매출 찾기는 '카드'와 '매출'을 붙여 썼습니다. 만약 숨은 카드 매출 찾기라고 썼다면 2글자의 반복 때문에 어색하게 보일 수 있고, 무엇보다 '숨은 것'은 '카드'가 아니라 '카드의 매출'이란 사실이 중요합니다. '숨은 카드'의 '매출 찾기'가 아니라 '숨은' + '(카드의) 매출' + '찾기'라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숨은 카드매출 찾기가 의미를 더 명확하게 전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카드매출과 배달매출의 연관검색어


그렇다면 배달 매출 늘리기 배달매출 늘리기로 일관성 있게 붙여서 쓸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저는 이게 더 좋아 보입니다. 하지만 띄어 써도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시각적으로나 읽는 리듬으로나 충분히 자연스럽습니다. 또는 위 연관검색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 '배달매출'이 '카드매출'만큼 독립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은 아니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글을 쓰는 입장에서 일관성은 강한 유혹이긴 하지만, 사용성 개선과 같이 글쓰기의 목적에 부합하는 다른 조건이 있다면 일관성은 포기할 수 있는 가치입니다.


여기까지 살펴보면 결국 모든 상황을 관통하는 띄어쓰기 규칙 같은 건 존재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띄어쓰기에 대한 선택을 해야만 하고, 그렇다면 최대한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명확한 기준으로 글을 쓰다 보면 그것이 곧 나와 서비스의 글쓰기 자산이 되고 브랜드가 될 테니까요. 저는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띄어쓰기를 검토합니다. 우선 당연하게도 어느 쪽이 의도한 의미를 명확히 전달하는지를 따져봅니다. 비상금대출비상금 대출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고, 숨은 카드 매출 찾기숨은 카드매출 찾기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것처럼요.


NH뱅킹과 KB Pay - 디자인을 고려한 글쓰기


그다음으로는 하나의 디자인 요소로서 적합성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위 이미지의 실행중처럼 허락된 디자인 영역 안에 문구가 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은 실행 중이 맞지만 간결성을 위해 붙여 쓰는 셈인데 이미 수많은 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례입니다. 한편으로 문구의 배치 자체가 디자인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제 추측이지만 KB Pay는 시각적 완성도를 위해 헤드카피와 서브카피의 좌우폭을 맞춘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결제 조건에 다음에 줄을 바꿔서 따라가 아랫줄에 위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띄어쓰기도 이와 유사한 선택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 사례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결제 조건에 따라는 한 호흡에 읽을 때 훨씬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NH뱅킹 - 읽다 보면 숨이 찬 문구들


다음으로는 위 KB Pay 사례에서 제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읽는 리듬을 통제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제가 금융 관련 앱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한데, 서비스의 특성상 상당히 긴 문구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앱이 거의 모든 단어를 붙여 쓰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건 옳고 그름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긴 하지만 저는 읽는 리듬을 생각해서 적당히 띄어 쓰는 방향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휴면/거래중지계좌조회가 아니라 휴면/거래중지 계좌조회와 같은 식으로요. 다만 그 아래 해지계좌조회계좌통합조회는 띄어 쓰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게 좋아 보입니다. 일관성을 해치는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관성은 다른 가치에 비해 후순위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다 보면 명확한 의미 전달, 사용성 개선 등 다른 목적을 위해 일관성을 포기해야 할 때가 많거든요.


NH뱅킹 - 우리 말고 다른 금융을 말하는 법


그래서 저는 일관성을 가장 마지막으로 고려합니다. 하지만 다른 입장도 있습니다. NH뱅킹을 포함한 수많은 금융회사가 자체 서비스 안에서 다른금융(또는 다른은행)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는 다른 회사를 의미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관련 기능에 대한 명확한 지칭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서비스 내 다양한 페이지에서 다른금융이란 표현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동일 기능은 동일 표현으로 국한하고 이를 사용자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선택이지만, 저라면 헤드카피는 다른금융으로 쓰더라도 서브카피는 다른 금융의 계좌에서 수수료 없이 이체하세요와 같이 띄어서 그리고 풀어서 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구나 절이 아니라 완성된 문장의 형태이므로 굳이 어색하게 붙여 쓸 필요 없이, 사용자가 이해하기 좋게 쓰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역시 정답은 없겠지만 어떤 선택이든 분명한 근거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띄어쓰기도 목적 달성을 위한 글쓰기의 수단 중 하나이고, 그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작은 영역일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고민을 한 이유는, 가끔 오래전에 쓴 글을 다시 보면서 왜 이렇게 썼는지 납득할 수 없을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도 명확한 기준 없이 감각에 의존해 글을 썼기 때문이겠죠. UX 라이팅은 오로지 나의 글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서비스의 일부라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제가 말하는 기준은 또 다른 경험에 의해서, 또는 나보다 더 많이 고민한 사람의 가르침에 의해서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요. 뛰어난 직관보다 체계와 규칙 안에서 누구나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오랜 제 관심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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