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ums Feb 15. 2016

이슬 한 방울 맺히는 것이 생화生花의 특권이다

재능이 없어도 어떻게든 써보고 싶은 이유

고등학교 때 어떤 문예공모전에 입상한 시를 우연히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나와 같은 나이의 여자아이가 쓴 작품이었다. 나는 이런 시를 쓸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그때 처음으로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누가 굳이 나를 찾아와서 인정해주지 않는 이상 재능이 없다고 믿기로 했다. 우스운 일이지만 그만큼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글짓기 공모전은커녕 교내 백일장조차 나가보지 않은 건 내 바닥이 드러날까 두려워서였다. 그러던 중 때마침 접한 그 시가 내 안에 합리화의 선을 분명하게 그어주었다.


재능이 없으면 덤비지 말자


물론 재능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나를 위해 글을 쓰던 시절도 있었다. 쓰지 않으면 못 배기던 때였다. 그때는 뭐가 그리 혼자 생각이 많았는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표현하고 싶은 감정이 둥실 떠오르곤 했다. 사춘기 소년에게 그 감정은 낯익지만 동시에 아주 부드럽고 탐스러운 것이어서, 호수에 얕은 파동이 일면 금붕어가 모이듯 감정의 주변으로 살아있는 단어가 달라붙고는 했다. 물론 내 느낌상 글을 쓰는 과정이 그러했다는 것이지 당연히 결과물이 대단치는 않았다. 그냥 내가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홀로 선다는 건
마른  들꽃처럼
숨죽여 벽에 기대는 것
작은 바람에도
바스러질 준비를 하고
빛과 향기를 주는 대신
더 긴 시간을 갖는 것


그래서 이런 시를 쓰기도 했다. 조악하기 그지없지만, 어쨌거나 그 시절의 나는 ‘홀로서기’라는 단어를 좋아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외롭고 싶어 했고 또 외로워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일종의 허세였다. 실제로 중학생 때, 국어 선생님께서 한 번은 나를 ‘외로운 사람’으로 지목한 적이 있었다. 항상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은 귀를 시끄럽게 해서 외로움을 극복한다는 것이 선생님의 주장이었다. 친구들은 다들 웃었지만 나는 딱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진정 외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은연중에 만족스럽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중2병을 꽤 중증으로 앓은 셈인데, 그래도 그때는 듣고, 보고, 읽고, 무엇보다 쓰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즐거웠던 것 같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한 이후, 나는 이전처럼 자기 안으로 빠져드는 습관을 고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내 안에 불현 듯 찾아오는 자잘한 감정의 파편굳이 글로 표현해내는 행위가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나는 재능이 없으니까. 대신 남을 위한 글을 쓰기로 했다. 글쓰기가 취미였던 경험도 재주라면 재주인 것인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부터 꽤 오랜 시간 다른 사람의 글을 대신 쓰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홀로 서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머리가 자라고 나니, 홀로 선다는 것이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치 않음을, 혼자가 되어도 괜찮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 속에 스며들어 한 사람 몫을 해냈을 때 오히려 홀로 섰다고 말할 수 있었다. 누구든 관계 안에서 살아가니까. 나는 단단한 벽에 붙어서 사람들의 말과 표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러나 한편으로 내 개성은 남에게 모두 주어버리면서 다른 이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얻었다. 내가 그들에게 공헌했다고 느낄 때마다 참 다행이라고 여겼다.


러다보니 언제부터인가, 누군가 내게 원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쓰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다른 사람의 이름이나 권위를 빌리지 않고 내 이야기를 쓰는 일이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건 꽤나 고통스러워서, 예컨대 하고싶은 말이 생각한대로 입밖으로 나오지 않을 때처럼 조바심이 나고 스스로가 한심해지는 경험이었다.


차라리 다른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친구의 자기소개서를 봐주고, 인터넷 중개를 통해 모르는 사람의 자기소개서를 첨삭하면서 나는 수많은 이들의 삶을 훔쳐보곤 했다. 그때마다 내가 알게 모르게 느낀 질투는, 그들 모두가 생동감이 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해왔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었을 뿐, 그들에게는 날 것으로 펄떡이는 경험이 있었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한 시간이 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정말 마른 꽃이 되어버린 것 같아 두려웠다. 내가 게으른 탓이 가장 컸고, 그 다음으로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했다. 재능 타령이라니. 남들은 그런 것 없이도 어떻게든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가던데.


그래서 오래 전에 쓴 글을 뒤적이면서 생각한다. 나의 빛과 향기는 어디로 갔을까. 어쩌면 살아있는 꽃잎에 이슬 한 방울 맺히고 굴러 떨어지는 것이 생동감이다. 오그라든다는 말로 하잘 것 없이 치부하곤 했지만, 파삭하게 말라버린 뒤로는 가질 수 없는 사소한 감각들이 나를 더 섬세하게 다듬어준다. 그걸 조금 일찍 깨달았다면, 나는 내 빛과 향기를 더 소중하게 생각했을까. 다시 되찾고 싶다. 누군가 원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요즈음에는 글을 쓰는 일이 정말 즐겁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남들에게 내가 써낸 자잘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건 치부를 드러내는 일과 같이 무섭고 또 어렵다. 그래도 꽤나 설레는 일이다. 살아있는 꽃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당연하다. 바람에 바스라질 걱정은 마른 꽃만 하는 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새파란 녀석입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