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쓸모 - 곽아람
#공부의위로
누가 언제까지 뭘 하라는 압박 같은 게 없었는데도, 스스로 불안을 만들어 종종거리느라 이 과목 좋다더라, 저 과목 재밌더라 하는 수강신청을 마음껏 못 해봤다. 그 여파는 졸업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서야 ‘타는 목마름’으로 돌아와, 이토록 게걸스럽게 읽는 사람으로 살게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책 읽는 내내 아이고 배야 싶게 부럽고, 조금 슬프기도 했다.
“그 낡고 허름한 지상의 강의실에서 우리는 천상의 언어를 배우고 있었고, 그 언어는 대부분 수강생들에게 삶의 잉여였지만 분명 ‘위안’이었다. 세상은 우리에게 ‘쓸모’를 요구하지만 유용한 것만이 반드시 의미 있지는 않으며 실용만이 답은 아니라는 그런, 위로.”
작가의 치열하고 촘촘한 젊음의 날들이 내 마음까지 그 시절로 돌아가게 했다. 불안함, 미래 이런 단어들을 내려놓고,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조금 더 탐닉할 수 있었다면. 그게 바로 딱 그 시절 캠퍼스에서만 가능한 일이었음을 알았다면. 책 읽는 일주일 내내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듯 말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학교에 다시 가고 싶어.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완전히 외워버려 자기 것이 된 이미지, ‘시대의 얼굴’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어떤 시대를 표상하는 이미지들에 대한 데이터가 체계적으로 뇌 속에 축적되어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작품을 누리는 경험의 밀도를 향상시키고, 작품을 남에게 설명할 때의 깊이를 다르게 한다.”
예술부터 외국어까지, 작가가 사랑하는 것들이 그야말로 나의 취향이었고, 모범생의 타이틀이 부끄러웠다는 경험까지도 너무 비슷했다. 이 책을 읽고 비슷한 흥분을 느끼는 이들의 리뷰까지 여러 개 읽고 나니, 저 먼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기질을 가진 종족(?)이 있지 않았을까 싶고.(하하) 그렇게 온기와 자매애까지 느꼈던 시간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꾸준하고 성실하게 책장을 넘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낯선 책과 안면을 트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포기하지 않고 읽어나가면서 그 책의 언어에 익숙해지고 나면 어느 순간, 제법 숙련된 서퍼가 파도에 자연스레 몸을 맡기듯 능숙하게 책장을 넘기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치열하게 읽고 쓰는 사람, 누가 뭐래도 나는 이 시간이 제일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을 이 책을 계기로 조금 더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배울 기회를 찾아 부지런히 헤매고, 열심히 읽고 써야겠다. 언어 공부도 더 해야지.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가리지 않고, 더 신나게 읽어 재껴야지.
덧) 그 오래전 수업 필기 자료를 아직도 온전한 상태로 갖고 있다는 게 제일 놀라웠다. 그 노트들의 실물이 너무도 궁금하다!
덧 2) 작가님의 민법 총론에 버금가는 과목이 내게도 있다. 경영통계학. 내 성적표 유일한 C+.
“교양은 어떤 상황에서든 주눅 들지 않을 수 있는 힘이 된다.”
#곽아람 #민음사 #K가사랑한문장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