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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May 07. 2023

현업에서 컨설팅 온 지 1년의 소회

컨설팅회사로 이직을 한지도 이제 1년이 다 되어가, 지난 1년을 복기해보려고 한다. 처음 한 달간은 정식으로 프로젝트에 투입되지 않고 사무실에서 대기하며 교육을 듣거나 다른 프로젝트 지원을 나갔다. 첫 주에는 혼자 온라인 교육 같은 걸 들으며 조금은 초조해하기도 했다. 나한테 일을 안 시켜주면 어쩌지 하고(괜한 걱정) 두 번째 주에는 성남에 있는 고객사에 3주간 지원을 나갔다. 최종 보고 시즌에 일손이 모자라 장표 치는 작업을 했다. 고객사와 한 회의실에 근무하는 게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다들 친절했었다. 그다음 한 주는 본사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워라밸이 박살 나는 극악무도한 프로젝트였는데,, 그랬다.



1년, 글로벌 고객사 2곳의 프로젝트


그렇게 한 달이 흐르고 정식으로 첫 프로젝트에 투입이 되었다. 수요 예측 데이터를 분석하고 인사이트 보고서를 쓰는 일이었는데, 내 업무는 데이터 분석과 대시보드 제작이었다. 분기별로 보고서가 나가는데 5개월간 2개 분기 보고서 작업을 했다.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꽤 컨설팅스러운 프로젝트였다. 전문가 인터뷰도 진행하고, 나름대로 스토리라인을 만들어 제언을 하기도 했다. 근무 환경이 혹독한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9시에 출근해 대개는 6-7시쯤 퇴근을 했고, 바쁜 시즌에는 9-10시 정도까지 야근을 했던 것 같다. PM이 주말 근무를 좋아해서 집에서 주말 근무는 종종 했었다. 전략 프로젝트를 하는 팀과 협업을 해서 그쪽에서 일하는 방식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글로벌 시장의 흐름 속에 다음 분기 고객사의 제품군은 어느 정도의 수요가 되는지를 예측하는 프로젝트다. 우리가 직접 예측을 하지는 않고, 시장조사기관의 데이터를 받아 검증을 하고 이를 정제해 고객사에 전달한다. 그러다 보니 시장조사기관 데이터에 대한 신뢰가 언제나 쟁점이었다. IMF와 OECD에서 발표한 경제성장률, 인플레이션율 등을 함께 살펴봤다. 두루 살펴봐서 대체 왜 이렇게 숫자가 나왔는지를 설명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수십 년간 수요 전망을 해온 업체 입장에서는 속된 말로 '겐또'에 해당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업무상 비밀이기에 공개하기를 꺼리기도 한다. 제품군에 따라 사용하는 시장조사기관도 다르다. 기준이 다르니 산출 방법도 다르고, 이를 잘 정리해서 보여주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에 들어온 지도 5개월째다. 첫 번째 프로젝트가 거시적인 성격이라 고객사의 바깥에서 시장의 흐름을 전달하고, 컨설팅업체로서 제언을 하는 역할이었다면 두 번째 프로젝트는 고객사의 한가운데서 현업의 각 부서의 의견을 취합하고 프로젝트를 리딩하는 역할이다. 업무를 진행하는 방향이 정반대다.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다 느껴지는 부분은, 100개국 이상의 현지 법인을 둔 글로벌 본사에서 파일럿 런칭을 하고, 전체 국가로 Rollout 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언어뿐 아니라 모든 조건이 천차만별인 각 국가의 상황을 모두 고려하여 글로벌 표준을 만들고 이를 확산시키는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그러기에 더욱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이번 프로젝트는 고객사 사이트에 와서 근무 중이다. 회의실에 우리 팀이 상주하며 업무를 보는데, Project Management Office(PMO) 프로젝트라 현업과 긴밀하게 엮여서 일을 한다. 고객사 담당자는 실시간으로 메신저로 우리에게 업무 지시를 하고, 우리는 매주 주간회의에 참석해 업무 진행 현황을 공유한다. 컨설팅 업체로 파트너사라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파견업체에 가까운 느낌이다. 시키면, 한다. 현업에서 일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장기 프로젝트이다 보니 루틴한 업무들이 있고,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하다.

내용과 상관없는,, 귀여운 우리 밤이


다시 현업으로 갈까?


컨설팅업계는 이직이 활발한 시장이다. 빅 4라 불리는 회계법인의 컨설팅업체 4곳은 많은 직원들이 회전문처럼 돌고 돈다. 나 역시 그중 한 곳에 속해 있는 이 회사에 일하는 동안, 헤드헌터로부터 나머지 3곳의 회사로부터 지원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갈 수 있지만, 한 편으론 '굳이'이기도 하다. 처우에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나 일 자체는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컨설턴트라는 직무는 소속된 회사보다는 어느 고객사의 프로젝트를 하느냐가 훨씬 더 큰 차이를 불러온다.


컨설턴트는 크게 두 부류다. 첫 번째 부류는 컨설팅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성골'들은 이 업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다. 그만큼 컨설턴트로서는 기술적인 면에서 능력이 뛰어나고, 비슷한 나이대 다른 동료들에 비해 승진도 빠르다. 이들은 현업에 대한 갈망이 있기는 하지만 쉽사리 이직을 하지는 못한다. 첫 번째 현실적인 문제로 현업으로 이직했을 때 연봉을 맞춰주는 회사는 탑티어 대기업이나 금융권인데 입사하기가 쉽지는 않다. 또한 여기서 오래 일하면서 바깥에서 보았을 때 대기업이라는 곳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에, 환상이 전혀 없다. 몸이 편할 수는 있겠지만 그곳에 가서 엄청나게 나아질 거라는 기대치가 낮다.


두 번째는 나처럼 현업에서 대리~과장급 경력을 가지고 컨설팅으로 넘어온 경우다. 지난해까지 컨설팅 업계가 대호황을 맞으면서 이렇게 입사한 직원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현업에서의 경험이 있어 일하는 방법은 알지만, 컨설팅에서 요구되는 장표를 쳐본 적은 없기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고객을 대한다는 게 어떤 건지도 처음 경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내적 혼란을 많이 겪는다. 나 역시 그랬다. 고객사로만 있다가 협력사로서 고객사를 상대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처음에는 힘들었다. 지금도 쉽지는 않지만 적응해 가는 중이다. 현업에서 온 컨설턴트들은 이직도 비교적 더 쉽게 결정하는 것 같다. 1년가량 컨설팅을 경험해 봤는데 본인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 현업으로 돌아가는 케이스도 봤다.


내가 이 업계에 와서 가장 놀랐던 건 리더급 중에 성격파탄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현업에서는 여러 번 징계위에 올라갔을 법한 성희롱, 성추행,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위험한 발언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고인 물들이 많다. 그럼에도 리더급 인력들을 데려오는 일은 어려운 일이기에 징계를 받거나 내쳐지지 않고 계속해서 회사에 남아있는 것 같다. 사내에서 이런 사람들을 신고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글로벌 본사에도 신고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며 회사를 다니는 걸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내가 생각하는 컨설팅 최대의 장점


컨설팅 최고의 장점은 롤오프(Role off)를 바라보며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오는 걸 롤오프라고 하는데, 직장인에게 퇴사만큼이나 짜릿한 순간이다. 물론 프로젝트가 끝나지 않았는데 중도에 롤오프를 하는 경우도 많다. 첫째는 고객이 컨설턴트가 마음에 들지 않아 교체를 요청하는 경우. 생각보다 많다. 둘째는 팀의 다른 프로젝트로 배정되어 중도에 옮기게 되는 경우다. 어찌 됐든 대부분은 프로젝트는 끝이 정해져 있기에, 힘들어도 끝이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위안이 된다. 팀 내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있어도 프로젝트가 끝나면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엄/청/나/게 위안이 된다.


현업에서 팀을 옮긴다는 건 퇴사를 각오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팀 옮기기를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경우 몇 년간은 하위 고과가 깔릴 수도 있고, 팀장한테 찍혀서 회사 다니기 힘들어질 수 있다. 팀장이 마음에 안 들면 내가 떠나야 한다. 하지만 컨설팅에서는 진짜 죽도록 힘들면 파트너에게 SOS를 칠 수 있다. 구출해 달라고 하면 꺼내준다. 물론 그게 매번 가능한 건 아니지만, 인력 이동이 잦은 동네이기에 사람이 교체되는 것이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컨설턴트 역시 많이 힘들어도 끝이 정해져 있기에 꺼내달라고 하기보단 버티는 경우가 많다. 나도 롤오프 날짜를 핸드폰 디데이 앱에 등록해 두고 일하고 있다....


컨설팅 회사라는 건 거대한 인력 사무소다. 인력은 언제나 대체 가능하다. 때문에 일반 회사보다 휴직도 자유로운 편이다. 어차피 무급 휴직 기간에는 월급을 안 주면 그만이고, 그동안 비슷한 인력을 프로젝트에 넣어두면 된다.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라는 건 없다. 거대한 왕국에서 작은 병정 하나가 되어 효율적으로 기능하다 쓰임이 다하면 빠져나온다. 이런 세계관이 나는 마음에 든다. 사람에 따라서는 다를 수 있겠지만,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고 프로젝트 기간 중에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내고, 롤오프를 하고, 1-2주 정도 쉰 다음 또 다른 고객사에서 프로젝트를 한다는 점이 좋다. 매 프로젝트가 나의 커리어 패스가 되기에 이력서도 자주 업데이트 하게 되고, 그만큼 다른 회사로 갈 수 있는 기회도 넓은 편이다.


혹시 현업에서 컨설팅으로 이직을 고민하던 중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우선은 와보라고 얘기할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별로 소용이 없다. 겪어봐야 알 수 있는 세계다. 나한테 맞는지 아닌지는 부딪혀 봐야 알 수 있다. 현업에서 회사를 잘 다니다 컨설팅으로 올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험심이 강하고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일 테니 주변에서 아무리 뜯어말려도 결국은 갈 거라고 생각한다. (내 얘기하는 중) 인터넷에서 컨설팅에 대해 검색해 보면 좋은 말은 하나도 없다. 워라밸 박살 나고 고객사가 시키는 일을 죄다 해내야 하고 등등. 이런 말을 보고도 그들은 결국 온다. 그리고 깨닫는다. 아! 이게 그 얘기였구나! 이걸 견딜 수 있으면 여기에 남는 거고, 아니면 그만 두면 된다. 인생은 길다. 시행착오를 하면 조금 돌아서 갈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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