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태현 Nov 19. 2018

갈라파고스의 노을

-굴업도

개머리능선에 올라서니 비경이 펼쳐졌다. 푸른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막 붓질을 끝낸 그림 같았다. 섬이란 하나가 아닌 여럿이 함께 어울려야 더 아름답다. 문갑도, 백아도, 울도 같은 나름의 이름이 있지만 각자의 이름으로 빛나는 것이 아니다. 가깝고 먼 거리를 유지하며 오묘한 구도를 이룰 때 더 빛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말이다. 그것들이 잘 어우러져 있을 때 우리는 ‘멋있다’, ‘아름답다’라고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여념 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는 것이다.     

  이미 가을에서 겨울로 옮겨가고 있는 개머리능선의 마른 풀들이 스산했다. 이슬에 반짝이는 수크령과 억새 물결이 장관이라 했는데 지금은 다 씨앗을 떨구고 빈 대궁만 남아있다. 절정이란 정말 순간이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게 자연이다. 여름에 왔으면 좋았을 걸 하면서 몇 번이고 후회를 했다. 온통 초록으로 뒤덮인 능선 위에서 조망하는 바다는 또 다른 그림일 터. 능선 위에서 온 가슴을 열어 맞는 바람과 일몰은 나를 세상의 구석에서 번쩍 들어 올려 공중에 띄웠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공중에 붕 뜬 자세로 일상을 잊고 시름을 잊고 관조의 달콤함을 맛보았을 것이다. 때를 못 맞춘 것이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    

  사실 굴업도에 가는 걸 포기하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시도를 했지만 성수기에는 배표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잊고 있다가 아내가 섬에 가고 싶다고 하길래 인터넷 접속을 했더니 마침 비어있는 주말에 표가 있었다. 예매를 하고 쾌재를 불렀다. 인천에서 덕적도까지 쾌속선으로 한 시간 남짓, 그리고 덕적도에서 굴업도까지 차도선으로 한 시간 남짓, 두 번의 배를 갈아타고서야 도착했다. ‘한국의 갈라파고스’라고 했으니 기대가 무척 컸다. 그러나 배에서 내리자마다 여느 섬들과 다르지 않아서 실망했다. 민박집 픽업 차량을 타고 가면서도 쓰레기 더미와 정돈되지 않은 길들이 먼저 눈에 띄었다. ‘갈라파고스’라는데... 거북이도 있어야 하고, 물범도 있어야 하고, 입이 쩍 벌어지는 풍경도 있어야 하는데...     

  나는 태평양에 떠 있는 게 아니었다. 서해안에 있는 거였다. 시선을 바꾸자 모든 게 다시 보였다. 동해안보다 더 부드러운 모래가 깔린 단단한 백사장과 반짝이는 물결 너머 신기루처럼 떠 있는 군도. 사람의 흔적 또한 느껴지지 않는 큰말해변은 어느 곳과 견줄 수 없는 호젓함과 깨끗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 해변을 걸어 개머리능선에 올라서서 바라보는 풍경은 속이 확 트이는 소화제 같았다. 백패커(backpacker) 성지로 소문이 나면서부터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지만 입소문이 나기 전이었다면 정말 혼자서만 간직한 채 곶감 빼먹듯 가끔 달력고픈 풍경이었다. 아마도 오기 어려운 굴업도에 몇 번씩이나 온 사람들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능선을 밟고 서면 사람이 순해진다. 발아래 모든 것을 두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벼워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길을 걸어 바다와 맞닿은 곳까지 걸어가면 나비처럼 가벼울 수밖에 없다. 완만한 능선을 지나고 소사나무 군락을 지나서 막바지 언덕을 오르자 그야말로 민둥한 언덕이 바다로 빨려 들어갈 듯 근사한 자태를 드러냈다. 사람들이 그곳에 텐트를 치고 여유롭게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른바 백패커들이었다. 선착장에서 큼지막한 배낭을 메고 서둘러 걸어가던 그들인 것 같고, 민박집 트럭에 배낭을 싣고 앞서가던 그들 같기도 했다. 모두들 그곳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일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 일몰만큼 아름다운 곳이 없다고 했다. 나 역시도 동쪽 연평산, 덕물산으로 먼저 갈까 아니면 일몰을 보러 개머리능선으로 갈까 망설이다 능선 쪽을 택했다. 언제 한번 느긋하게 앉아 일몰을 본 적이 없었다. 나에겐 드문 경험이었고 그래서 좋은 선택이라 믿었다.    

  점심을 일찍 먹고 온 탓에 개머리능선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1시 30분쯤이었다. 일몰 시간까지는 네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늘 바쁘게 걷기만 해서 모처럼 한가롭게 앉아 있으려니 좀이 쑤셨다. 좀 더 아래로 내려가 보고 바람을 피해 언덕 옆구리 쪽으로 돌아도 가보았다. 그 덕에 사슴도 보고, 촛대 바위와 매 바위도 보았다. 어떤 이는 굴업도에는 자연과 관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있다고 했다. 백사장, 사슴, 갯벌, 무인도, 해안사구, 해안절벽, 주상절리, 해식와, 초원, 습지, 희귀식물 등. 아닌 게 아니라 해안을 따라 가파르게 선 절벽들과 그 절벽을 이루고 있는 주상절리는 눈길 닿는 곳마다 있었다. 그러나 해는 게으름 피우는 아이처럼 더디게 내려오고 있었다. 잘도 가던 시간이 기다림 앞에선 한없이 느렸다. 구름도 판지처럼 점점 두꺼워져 태양을 가리기 시작했다. 일몰을 보자고 왔는데 못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낭패감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구름 속에서 태양이 드러나더니 거대한 한 줄기 빛을 쏟아냈다. 은빛 멸치 떼가 떠오르는 것처럼 바다가 한 순간 번득였다. 친구들과 즐겁게 사진을 찍던 여학생들이 그 빛줄기에 갇혀 내 앵글에 잡혔다. 내 입에서 낮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것을 받아썼다. 그리고 아내에게 들려주었다.  

  

  오늘 하루도 저물고/ 바다도 어두워진다/ 사람들아 돌아가자/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다정하게 웃음 지며/ 따뜻하게 손을 잡고/ 사람들아 돌아가자/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며칠 전 고등학교 동창의 남편이 하늘나라로 갔다. 아직 새파란 오십대인데... 가족들에게 변변한 인사도 남기지 못한 채 아니 그보다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누가 예견을 했겠는가. 운명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가혹하고 방심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통속적이어서 가슴 한켠이 저려오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삶이란 그럴 것이다. 모든 슬픔이 나를 비켜갈 것 같지만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돌아가는 것은 행복한 하루를 완성하는 일일 것이다.      

  내 노래가 유치하면 어떻고 노래 같지 않으면 어떤가. 나는 무료한 기다림 속에서 보석 같은 말을 불러냈고 그것으로 영원히 잊히지 않을 순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해가 떨어지며 사방이 붉게 물들 때 나의 얼굴 또한 붉게 물들어 긴 기다림에 마침표를 찍었다. 노을이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여유를 갖고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는 것, 그 시간까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게 다가왔다. 백패커들은 거기서 밤을 맞을 것이고 가로등 하나 없는 광활한 초원에 누워 무수히 쏟아지는 별을 올려다볼 것이다. 별을 헤며, 은하수를 건너며 무슨 생각을 할까. 아니 무슨 생각이 들까. 나는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일들에 대해, 그들에 대해 경이로운 마음이 들었다. 확실한 소확행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 역시나 큰말해변에서 별구경 하려던 계획이었으니 오늘밤에 부디 별이 쏟아지길 빌었다. 그러나 아쉬운 일이었다. 잔뜩 낀 구름 때문에 달무리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으니.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섬의 동쪽인 연평산, 덕물산 쪽을 향해 걸었다. 목기미해변, 붉은모래해변, 코끼리 바위가 주요 명소였다. 선착장에서 보았던 해변이 목기미해변이었다. 극세사 모래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게 파도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 모래들로 사구가 만들어지고 사빈이 형성 되어 바다를 가르고 있는 독특한 지형이었다. 파도에 밀려온 어구들이며 부유물들이 산재해 있어 인상이 흐려졌지만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을 수밖에. 옛날에는 민어 파시가 열릴 만큼 북적거렸는데 지금은 여덟 가구만 살고 있단다. 농사나 고기잡이도 없이 모두 민박을 주업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환경 정화 같은 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망가지는 건 쉬운 일이고 보존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사람의 발길이 많아질수록 망가지기 쉽고 그 반대일수록 보존이 잘 되는 일은 너무도 분명한 이치다. 이렇게 아름다운 해변과 사구가 잘 보존 됐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연평산, 덕물산에서 개머리능선 쪽을 바라보는 풍경 또한 다를 바 없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언덕하며, 수형을 잡아놓은 분재처럼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군락을 이루고 사는 소사나무들, 가는 곳마다 널려있는 꽃사슴의 흔적들이 이곳이 갈라파고스임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여름철이었으면 이름 모를 식물들도 천혜의 경관에 이국적인 환상을 더했을 것이다.     

  갈라파고스, 아름다움이란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마음에 품게 되는 이미지다. 언제든 다시 재생해보고 싶은.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