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
1.
요즘 중국 언론에 노출되는 중국 공식 서열 2위인 리커창 총리의 얼굴을 보면 심각할 정도로 다크서클이 진하게 보인다.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매즈 미켈슨이 연기한 케실리우스 수준으로 심한데) 한 마디로 어느 정도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지가 훤히 보인다고나 할까?
반면 공식적으로는 은퇴를 해서 중남해 깊숙한 원로원에나 들어가야 할 왕치산은 부주석으로 돌아와서 얼굴이 환해졌다. 양회(전인대) 때 관례를 깨고 7인 상무위원들 틈에 끼어서 등장하더니 이제는 대 놓고 복귀를 했고 회춘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시진핑도 그렇고 왕치산도 그렇고 피부관리 비법이 궁금하다)
이 상황은 총리의 권한은 축소가 되었고 부주석이 사실상의 2인자가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차이는 단지 한 사람은 현 시진핑 주석의 열렬한 지지자인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라이벌이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일 뿐이다. (시진핑의 리더십, 왕치산의 역할론으로 분석하는 기사가 한국에서 많이 나오던데 단언컨대 그건 아니다)
2.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사실상의 종신집권을 선언한) 시진핑의 인기가 올라갔다고 한국 언론에서는 분석하던데 이에 대한 내 생각도 '글쎄요'이다. 사실 시진핑은 마지막까지 미국에 관세를 두들겨 맞지 않으려고 대단한 노력을 했다.
중국의 경제정책의 주무부처는 재경부다. 그리고 재경부는 국무원 총리 관활이다. 즉 리커창 총리가 경제 관련한 정책의 책임자인 셈인데 중국은 실제 공식적 채널이 아닌 비공식적 채널을 통해 미국과 관세협상을 시도했다.
바로 중앙재경영도소조라는 곳을 통해서 말이다.
3.
소조라는 것은 일종의 주석 직할조직이고, 마오쩌뚱 시대에 만들어졌다. 모든 권력을 독점했던 시대에 각 부처가 있지만 일종의 감시와 직접적인 영향력 행사를 위한 것과 다름없다. 적당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공산주의가 마구 확장해 가던 전쟁 시절, 지휘관(장군) 옆에 정치국 위원이 붙어 감시하던 것이 종전 후 국가행정을 관리(감시) 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고나 할까?
마오쩌뚱 문화 대혁명 시대에 특히 활성화된 이 소조 제도는 덩샤오핑 시대부터 (존재는 남아 있지만 활용되지 않는) 유명무실화되었었다.
4.
그랬던 이 소조가 시진핑 시대에 들어서서 다시금 적극 활용되기 시작했다. 각 부처별로 주석이 직접 임명한 사람들이 소조의 주임으로 발령받아 행정에 직접적인 (감시와) 관여를 한 것이다.
미국과의 철강관세 협상을 위해서 중앙재경영도소조의 책임자인 '류학'이라는 사람이 직접 미국에 갔다. 사실은 트럼프를 직접 만나라는 엄명을 받고 갔으나 트럼프가 끝내 만나주지 않아 무려 한 달간이나 호텔에서 대기하다가 왔다는 후문이 있다. (트럼프가 보면 볼수록 영리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명분이건 실리이건 확실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5.
내 관점은 이렇다.
시진핑은 사실상의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피하기 위해 류학을 보내 협상을 시도하려고 했다. 다만 본국에서의 영구집권을 추구하는 주석의 체면상 재경부가 굴욕협상을 하면 본인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아지니 표면적으로는 (중국 내 여론용으로) 미국과 대등한 관계에서의 강경 협상을 하고, 뒤에서는 무언가 다른 협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내용이든 명분이든) '미국이 만족하지 않아 잘 되지 않은 것이다'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면 중국 내 여론을 위해서라도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한다'라고 선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미디어에서는 중국 언론을 통한 선전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도 제대로 된 경제학자들이나 기업들 입장에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그걸 표현할 수 없으니 더 죽을 맛이다. (속으로만 전전긍긍하는 리커창의 결과물인 다크서클만큼이나 그들도 안습이긴 하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중국 전문기자, 중국 관련 연구소들이 사실상의 중국 정부 선전기관인 중국 미디어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오기보다는 좀 더 다양한 시각의 분석이 있었으면 좋겠다.
6.
이런 가운데 한국의 미국과의 FTA 협상 결과는 정말 놀랍다. 만약 중국이 이 정도 수준의 결과를 얻어냈다면 아마 진심으로 난리가 났을 것이다. 중국 친구가 한국의 미국과의 FTA 결과에 대해 진심으로 놀라워하고 '엄치척'하면서 축하해 주었다.
강준만 교수의 <한국근대사산책>이라는 책을 보면 한국 근대사에 대해 정말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정말 암 걸릴 것 같은 답답함이 밀려오는데 '청일전쟁' 시절은 특히 끔찍할 정도로 답답하다. 청나라의 내정간섭은 상상초월이었고 일본, 러시아, 미국, 프랑스가 각각 조선에서 한몫 챙기려고 지들끼리 싸움을 한다. 약소국의 비애라고만 볼 수 없는 것이 이 열강에 아부해서 개인의 영달을 챙기려는 조선의 관료들 덕분에 조선의 국력은 빠르게 소진되어가고 백성들은 더욱더 피폐해졌다.
당장 지난 정권이 오버랩되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북한이 우리를 둘러싸고 각각의 한 몫을 챙기려 들던 것은 청일전쟁 때와 딱히 다를 바 없었다. 만약 확고한 역사관과 국가관이 없는 무능한 지도자 밑에서라면 결국 구한말 관료들처럼 주변국에 붙어 일신의 사욕과 영달만을 챙기는 이들만 있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MB처럼 본인이 모든 것을 꼼꼼하게 직접 챙기던가...) 그러면 한국도 필리핀이나 남미처럼 급속도로 무너져 갔을지도 모르겠다. ㄷㄷ
그런 면에서 현재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하늘이 대한민국의 국운을 끝내지 않도록 안배한 것이다'라는 생각을 또 한 번 하게 되다. 또 다른 중국 친구들은 '9년간 국가경영이 그렇게 엉망이었는데 무너지지 않은 한국의 저력 자체가 대단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해 주기도 한다. 어느 쪽이건 정말 다행이다.
주변 강대국의 지도자가 하필 트럼프, 시진핑, 푸틴, 아베, 김정은이 있다는 것이 처음에는 대단히 두렵기만 했는데 우리의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최악이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최선이 될 수도 있다는 이 묘한 입장 변화 앞에서 '새옹지마'의 고사를 통해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어쨌든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