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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일 May 21. 2019

구글의 화웨이 차단의 숨은 뜻

중미 무역전쟁에 미치는 영향



1.
구글, 인텔, 퀄컴 등이 화웨이에 공급하던 소프트웨어와 부품공급을 전격적으로 중단했다. 물론 기업의 독자적인 의지라기 보다는 미국정부 더 정확하게는 트럼프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이다. 얼마전까지 트럼프에게 ‘미국이 원해도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공급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호기있게 외쳤던 화웨이 런정페이 회장 입장에서는 날벼락을 맞은 셈이 되었다.


물론 트럼프가 먼저 시비를 걸었으니 거기에 대응한 셈이고 트럼프의 막말에 똑같이 막말로 되받아 친 것이니 속은 후련할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이건 싸움이 되지 않는 '시비거리'에 불과하다. '당랑거철' '이란격석' 어떤 말을 가져다 비유해도 다 통한다.


2.
2019년 1분기 화웨이의 글로벌 시장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19%로 삼성전자(23.1%)에 이어 2등이다.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의 출하량이 작년 1분기 대비 6.6%나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화웨이만 무려 50%나 상승했다. 이 기간 애플은 30%나 감소했다.


전 세계 1위인 삼성전자와의 점유율 격차가 작년 1분기 11.7% 차이가 났는데 올해 4.1% 수준으로 좁혀진 것이다. 즉 화웨이는 한참 약진중이었다.


3.
이 좋은 흐름에서 구글의 안드로이드 사용공급 중단은 화웨이에게는 일반적인 악재를 넘어 '기업의 존폐' 위기 수준의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중국 내수용 스마트폰에는 당장 별다른 문제가 없어도 말이다.


안드로이드는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이고 화웨이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자유롭게 커스터마이징 해서 쓸 수 있다. 별도 계약이 필요한 GMS 인증에 해당되는 구글 검색, 지메일, 구글 맵, 유투브, 구글 플레이스토어는 원래부터 중국 정부에서 막아 놓았고, 중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독자적인 앱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으니 역시 별 문제가 없다.


4.
다만 화웨이의 해외 버전은 저 조치가 해결되지 않으면 '거의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 될 것이다. 화웨이의 지역별 시장 점유율을 보면 중국 35.5%, 유럽 28.3%, 남미 15.6%, 중동 20.6%이다. 단순하게 공급가 200불짜리 스마트폰의 출하량이 1억대면 연간 200억 달러의 매출이 날라가는 것이다.


애초 중미 무역분쟁이 있고 트럼프와 미국 정부의 각종 스파이웨어 의심으로 두들겨 맞고 있었지만 화웨이는 점유율이 그렇게 높지 않은 미국내 수출에만 영향이 있고 다른 지역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을 했지만 미국 정부의 영향을 받은 구글의 이번 강력한 제재 조치는 당장 화웨이의 스마트폰 사업에 심각한 위기를 불러왔다.

의도적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구글은 중국시장에서 쫓겨난 것을 트럼프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처럼 생색을 내어 가면서 제대로 복수하는 일타쌍피 아차차 일거양득을 누리는 셈인데 이 문제가 해결이 되어도 중국정부는 구글에게 책임을 묻기도 애매해 졌다.


5.
구글의 소프트웨어공급만큼 인텔, 퀄컴, 브로드컴 등의 부품공급 중단도 대단히 심각하다. 이는 단말기 사업의 문제뿐만 아니라 화웨이가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통신장비쪽 사업에 직격탄을 때린 셈이기 때문이다.


통신장비와 단말기 등 화웨이에 들어가는 부품류 중에서 미국기술이 들어간 것은 사실상 수출금지가 된 셈이라 통신장비, 국내외 단말기 양쪽에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는 전 세계 5G 시장의 선점과 제패를 노리는 화웨이와 중국정부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뼈아픈 일격이 아닐 수 없다. (번외이지만 LGU+는 어떻게 하려나?)


6.
당장 신제품을 출시하지 않는다면 화웨이는 구글의 GMS 인증에 따른 소프트웨어의 중단 이슈는 버틸 시간이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단말기와 통신 장비에 들어갈 부품은 약 3개월분의 비축 분량이 있다고 한다. 즉 화웨이는 3개월 이내에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별다른 타격없이 지나갈 수 있지만 만약 3개월 동안 별다른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면 연간 1천억 달러 매출을 올리고 있는 초거대 기업 화웨이도 점점 고사되어 갈 수 밖에 없는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7.
게다가 이 문제의 해결은 절대 화웨이가 단독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이 문제는 오직 중국정부가 전면적이고, 전향적으로 나서야만 해결이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추측 가능하겠지만 이 문제는 그냥 화웨이의 문제가 아닌 중국과 미국의 '무역분쟁의 연장선상'이기도 하다.


8.
내 개인적으로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본 바 중국 혹은 중국인이 가장 잘하는 협상의 방식은 우리에게는 ‘만만디'로 알려진 '시간끌기 전략’이다. 또한 (지금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계약을 하고 이행을 하지 않는 필살기'도 가끔씩 사용된다.


시작은 다 들어줄 것처럼 협상에 돌입하지만 아주 조금씩 빈틈을 찾아 들어가면서 작은 양보부터 얻어내기 시작하는데 협상이 끝날 즈음이면 원안과는 매우 달라지는 결과물이 나오는 ‘협상의 기술’이 중국이 가장 잘하는 방식이다.


혹은 중국내 국내법을 우선시 하거나 여론의 동향을 핑계삼아 국제법이나 조약이 무시된 적도 많은 편이다. 물론 이는 중국이 국력이 강하고 시장이 큰 국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이기도 하다.


9.
하지만 중국이 초강대국 미국을 대상으로도 그런 협상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 (미국 혹은 트럼프에 비해) 자신들이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고 둘째 충분한 내수시장이 있기 때문에 사소한 경제적 제재는 별다른 타격없이 '견딜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80년대 '플라자 합의'로 서독과 일본이 미국에 굴복했던 이유는 미국의 위협도 있었겠지만 실제 그 결과로 일본이 아직까지도 회복이 어려운 수준의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일본은 중국만큼의 큰 내수시장이 없고 중국만큼의 강한 국력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독은 통일 독일 이후 EU 울타리속에서 일본에 비해 타격없이 경제적 성장의 기회를 얻었는데 이 또한 EU 시장의 크기에서 비롯되었다.


10.
이러한 중국의 자신감은 중미간의 무역전쟁 초기에는 트럼프의 ‘관세폭탄위협’ 등에 지도부가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곧 원래의 협상 스타일을 찾기 시작하면서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결국 시간에 쫓기고 (왜냐하면 미국민들도 중국과의 무역의존도가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여론의 압박에 시달리는 트럼프가 적당한 수준으로 ‘중미간의 무역불균형을 해소하는 수준’의 체면치레로 협상을 타결하고 ‘재선을 노리는 정치적 행보로 갈 것이다’는 쪽의 관측이 많았다.


11.
그런데 트럼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또라이였다. 부시가 커피라면 트럼프는 T.O.P…. 흔히 세상에서 가장 상대하기 힘든 사람은 두 가지 부류인데 ‘미친 놈’과 ‘잃을 것이 없는 놈’이다. 트럼프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췄다. 전자에 대해서는 별 이견이 없을 것이고 후자의 측면으로 봐도 ‘정치 후원금을 받지 않아도 되는 부자’인데다가 언론과는 수시로 싸울 정도로 사이가 안좋다. 트위터로 미국의 모든 중요한 정치적 이슈를 발표하는 관종에다가 눈치를 보거나 무서운 대상이 거의 없는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다.


(인정하기 싫은 사람도 많겠지만) 심지어 똑똑하기까지 하다. 잃을 것이 없는 똑똑한 또라이(인 척 하는 사람)…이게 내가 생각하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이다.


12.
중국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상대하기 힘든 가장 까다로운 상대를 만난 것이다. 원래 스타일인 ‘만만디’도 통하지 않고 ‘변칙적인 방법’도 통하지 않으며 기억력은 비상해서 처음에 이야기 되었던 아젠다를 하나도 까먹지 않고 리마인드 시켜가면서, 그 와중에 욕심은 많아 협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상호간의 양보(전문적 용어로 밀.당.)라는 것도 일절 없다. 물론 이것도 미국이 여전히 중국보다는 '힘의 우위'가 있기에 가능하지만 말이다.


협상이 처음보다 늘어지는 듯 하자 트럼프는 전격적인 관세폭탄투하에 이어 화웨이라는 중국을 대표하는 거대기업을 ‘거의 말려 죽이겠다’는 심보로 밀어 붙이면서 ‘드루와~드루와’를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트럼프~


13.
현재 중국의 상황은 다시 불거진 무역분쟁 관련한 내용들은 철저한 언론통제를 통해 막고 있던 중이었다. 전반적인 논조는 ‘미국에게 당하는 만큼 우리도 되돌려 주고 있다. 우리는 미국에 비해 약하지 않다’는 논조로 적당히 왜곡된 기사를 내보내다가 이번 화웨이의 제재 조치에는 크게 당황하는 모습이다. ZTE때와는 비교도 안되는 수준의 큰 충격이 느껴진다.


14.
중국 정부는 최근 몇 개월 동안 ‘흑사회를 때려 잡자’라는 캠페인에 열중하는 중이다. 이를테면 노태우 정부 시절 있었던 ‘범죄와의 전쟁’과 흡사한 범국가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중인데 이 상황을 대부분의 인민들은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다. 범 국가적인 전쟁은 외부에서 한참인데 내부 흑사회와의 싸움에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으니 무언가 아는 사람들은 한숨짓고 있고,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만 열심히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 바람에 중국 전역의 유흥가가 찬바람을 맞고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현상이다)


국가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외부와의 전쟁을 도모하는 경우는 역사적으로 흔해도 외부와의 문제를 잠재우기 위해 내부의 적을 만드는 방식은 특이하지만 또 익숙하기도 하다. 우리도 ‘빨갱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아직도 통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15.
여기서 또 하나 지켜볼 관심있는 모습은 ‘대만의 입장’이다. 퀄컴 등에서 부품공급이 막히면 화웨이 입장에서는 TSMC에 의존해야 하는데 과연 대만은 중국과 미국의 입장중에서 어느쪽에 설 것인가? 팍스콘 회장은 샤프를 인수하고 대만 총통 되겠다고 선언하자마자 중미전쟁이 본격화 되었으니 이것을 난감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혹은 꽃놀이패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16.
화웨이가 무너지는가 마는가의 문제는 단순히 한 기업의 흥망성쇠를 넘어 중미간의 무역전쟁 그리고 그 이면에 있는 초거대 양대 강국 지도자의 정치적인 입장까지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일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화웨이 부품의 비축분량이 있는 3개월과 여기에 단말기 신제품 출시 문제, 기존 단말기 업데이트 등을 감안하면 역시 앞으로의 3개월이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시간을 큰 무기로 활용하던 중국의 입장에서는 카운트다운을 하면서 협상을 해야 하는 현 상황이 당연히 마뜩치 않다. 또한 '잃을 것이 없는 (똑똑한) 또라이 트럼프'가 '잃을 것이 많은 지도자 시진핑'에 비해서도 역시 유리해 보인다.


17.
이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내 생각의 결론을 유추하자면 중국과 미국의 무역협상은 앞으로 3개월의 시간이 대단히 중요한 시기이자 어쩌면 협상의 전환점이 될 것 같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3개월 동안 (아마도 미국측 원안이 상당부분 반영될 가능성이 높겠지만) 적절한 타협을 통해 협상이 타결되는 것이다. 지적재산권보호나 강제기술이전 같은 조항을 없애는 것이 명문화 된다면 현재 중국에 나간 혹은 나갈 한국기업에도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싸움이 장기화 된다면 중국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아울러 우리 경제에도 대단히 큰 악재가 될 것이다. 나는 전자를 예측하고 있고 실제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이렇게 긴 글을 썼다. 요약하면 화웨이가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되는 데드라인에 해당하는 향후 3개월이 중미무역 협상타결에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18.
우리 입장에서는 어떨까? 비록 중국이 근 20여년간 국제무역질서에 어긋나는 약속과 저작권, 라이선스 등을 무시해가며 ‘꿀 빠는 성장’을 해 왔고, 이제는 그것을 토해 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순리’에 맞는 것 같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우리도 그 기간동안 함께 '꿀 빠는 성장'을 해 왔고, 그만큼 중국경제에 의존도가 높은 만큼 일방적으로 중국이 무너지는 것도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초강대국 한 곳의 일방독주보다는 양국견제체재가 좋다는 것은 어쩌면 수천년동안 강대국 틈바구니라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고생한 우리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중국에서 일하고 있는 내 개인적 입장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19.
그 외 마이너한 생각으로는 
- 삼성은 화웨이가 위기에 빠진 상태에서 얼마나 글로벌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 오포, 비보, 샤오미 등 중국 내수경쟁을 하고 있으면서 글로벌 저가시장에서도 경쟁중인 중국업체들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을지 혹은 다음 타켓은 자신들이 될 수 있으니 떨고 있을지 궁금하다.
- 대만은 차이완을 선택할까? 아니면 미국기업의 OEM을 선택할까?


3개월 후에 이 글이 성지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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