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랑 Sep 15. 2021

직장에서 - 방향을 잃은 느낌이 들 때

'우울함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목적이다'

누구나 언젠간 죽는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출근해서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회사를 나서는 중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회사 앞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는데 근조화환 2개를 지게에 걸쳐맨 오토바이가 무심하게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얼굴 모를 이들이 저 근조화환의 주인일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져버렸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젊은 나날 가운데 죽음을 생각할 일은 거의 없지만 사실 오늘도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 나도 언젠가는 저 달려가는 근조화환의 주인공이 되겠지 그런데 나는 지금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괜히 담백하게 달려가는 오토바이의 뒷모습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인생의 목표가 뭐에요?

어느날 회사 선배가  대뜸 "OO씨는 인생의 목표가 뭐에요? 난 내 인생의 목표를 모르겠어"라고 물었다. 식후 커피 메뉴를 골라야 할 타이밍에 갑자기 튀어나온 심오한 질문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보단 전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물어와서 당황하기도 했다. 선배는 나보다 10년 일찍 회사에 입사해서 승승장구했고 치열하고 오랜 경쟁에서 살아남아 누구라도 부러워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경제적으로도 부유했다.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인생의 목표를 모르겠다고 방황하는 듯한 질문을 하다니 의아했다. 내가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묻자 최근에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왔는데 자신이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입사 1년차가 입사 10년차의 인생 상담을 해주려니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여간 어려워서 횡설수설하다 상담은 끝이 났다. 그런데 회사 선배의 그 질문은 나에게도 깨달음을 남겼는데, 그것은 충분히 성취할만큼 성취했다고 생각되는 40대 혹은 50대도 나와 다를 바 없이 죽음 앞에 섰을 때 자신의 인생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바쁜 나머지 인식하지 못했던 죽음의 존재가 사뭇 가까이 느껴질 때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은 단순히 더 오래 살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인 것이다. 이 질문은 곧,


 '나는 지금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나?'



마시멜로 이야기의 기만

마시멜로 이야기. 유년 시절 유혹을 이기는 것의 대명사. 이 이야기 때문에 마시멜로를 먹을 때마다 왜인지 모를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이 이야기를 비롯한 현대의 수많은 우화는 우리에게 지금의 유혹을 이겨내야 나중에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꼭 기다려야만 하나? 일을 할 때에는 불행할 수 밖에 없으니 퇴근하길(혹은 은퇴하길) 기다린 다음에야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 글쎄, 25년이 지나면 그 때에도 내가 지금처럼 마시멜로를 좋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지금 마시멜로를 먹으면 덧나나?




직장에 연연하지 마세요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인생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직장에서 행복하면 그냥 인생이 행복한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 직장에서 행복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그는 행복의 열쇠를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직장에 연연하지 마세요'의 캐시 헬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울함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목적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말이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내가 직장을 다니면서 우울하다면 그것은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나만의 목적이 없어서가 아닐까? 캐시 헬러는 '직장은 우리에게 구경꾼이 되라고 말하는 시스템의 또 다른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살아갑니다. 나는 당신이 당신의 꿈을 이루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남들과 똑같은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볼지라도 그 업무에 나만의 목표가 있을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보단 평범한 꿈의 장소

누군가는 주인이 아닌데 어떻게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냐고 반문한다. 내가 일개 팀의 팀원으로써 열심히 한다고 해서 대주주나 대표이사만큼의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팀원으로서의 일이 나의 꿈이 될 수 있겠냐고 말이다. 그런데 반드시 회사나 조직의 주인이 되어야만 별개의 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남이 수임해온 사건을 맡아 처리하지만 나중에는 그 사건이 내 글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좋은 글쓰기를 하는 것이 꿈이고, 직장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글감을 발견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이 없으면 매일 길에 나가 미친 사람처럼 사람들을 붙잡고 그들이 인생사를 인터뷰해야할지도 모르지만 직장이 있으면 사람들이 그들의 인생사를 들고 미친듯이 많이 나에게 찾아온다. 


무시하기엔 너무 무거운 타인의 기대

그런데 직장에서 자신의 꿈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나의 꿈은 거의 항상 멀고 흐릿하고 추상적인 반면 타인의 기대는 너무나 가깝고 명확하며 구체적이기 때문에, 마음 속 우선순위는 항상 타인의 기대를 충족하는 것이 된다. 


"OO씨, 내일 오전 10시까지 A파일 검토해서 전체 회신해주세요". 저녁 5시 정도에 이메일을 받으면 오전 10시까지 파일을 완벽하게 검토한 다음에 논리적으로 정확한 검토 결과를 오타 하나 없이 작성해서 회람해야 한다는 타인의 기대가 발생하게 된다. 이는 오전 10시까지는 '나'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타인의 기대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나지만 나의 꿈은 내가 계속해서 가꾸어나가지 않으면 추상적인 형태에 머무르게 된다. 너무나 멀게 느껴져서 가끔은 '꿈이라는 것이 이론적으로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사실은 허상에 불과하거나 존재하더라도 억수로 운좋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다들 그냥 이렇게 꿈 없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나의 꿈을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나의 관심에 좀 더 귀기울여보기로 했다. 마시멜로우를 먹고 싶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먹어보기로 했다. 다른 맛의 마시멜로우가 궁금해지면 비싼 값과 시간을 들여 사서 먹어보기로 했다. 글쓰기에 대한 인터넷 강의도 수강해보고 평소에 입어보고 싶었던 특이한 색의 구두가 있으면 그냥 주문해보기로 했다. 음식점에 가서는 매일 먹는 똑같은 음식 대신 일부러 다른 메뉴를 도전해보기도 했다. 관심있는 분야의 책을 주저 없이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누군가에겐 꿈이 신의 계시처럼 한 장면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신의 사도가 아닌 이상 살아온 경험이 자신을 그 자리에 데려갈 것이다. 나는 학부를 졸업 할 때 내가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될 것이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내가 만난 사람들과 내가 읽은 책 내가 배운 수업들이 어느 순간 나를 로스쿨로 인도하게 되었다. 그 때  그 때의 시도들이 모여서 흥미를 이루고 흥미는 인생에 있어 중요한 선택을 가르는데 충분한 1g의 무게를 더하게 된다. 


타인의 기대를 무시하는 것은 쉽지 않고, 또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하지만 자신의 작은 기대를 조금씩 충족하면서 사는 태도도 중요한 것 같다. 나의 작은 마시멜로우를 매주 남겨두도록 하자. 직장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도착한 택배를 뜯어볼 때'라는 것은 직장인이라면 전부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택배 안에 기다리던 물건이 있기 때문인 것 보단 그 택배가 회사란 공간에서 유일하게 나만을 위한 것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작은 공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직장에 그 택배보다 아주 조금더 나를 위한 공간을 만들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에서 - 비난에 마음이 괴로울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